손 붙들고 발리로 떠나는 마음
삶에서 가장 좋았던 시기가 언제냐고, 혹은 가장 좋았던 여행이 언제였느냐고 묻는다면 매번 손에 꼽히는 ‘꿈만 같은’ 과거가 있다. 20대 초반 캘리포니아에서의 3개월. 그 시간은 언제나 '다신 못 올 날들'로 남아 있었다. 우리가 언제 또 그렇게 '긴 여행을', '걱정 없이', '함께', 할 수가 있겠어.
세 가지 단서가 모두 충족되기엔 '걱정 없이'라는 대목이 영 걸리지만, 십여 년이 훌쩍 지난 시점에 스무 살 무렵 못지않게 중요한, 또 한 번의 방학을 보내고 돌아왔다. 남들이 새 울타리 꾸리기 바쁠 때, 서로에게로 돌아온. 또래들이 안정을 꾀할 때 불안한 자유시간을 선택한. 청개구리 자매의 갑자기 발리 한 달.
오로지 '내려놓기'라는 하나의 마음과 '언니에게 좋은 시간을 만들어주기'라는 목표를 들고 떠난 여행. 오히려 모르던 나를 만나고, 삶을 더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지키고 싶었는지, 나는 무엇을 내려놓지 못하는지 오래 쥐고 있던 고민들이 빠르게 선명해지는 경험을 했다. 이게 '멀리서 보기'의 마법일까. 내려놓을 자리에 채워 넣고 싶은 새것도 빼놓지 않고 몇 가지 챙겨 되뇌어 본다. 스스로 세우고 싶은 삶의 지침들을 다짐처럼 기록해 본다. '이렇게 한 챕터가 정리되고 또 새로운 삶을 시작하나 보다' 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둘이 떠난 발리의 기록을 유난으로 남겨보고 싶다. 싸이월드와 함께 날아간 십오 년 전 그날들과는 달리, 이번만큼은 여기저기에 다양한 모양으로 남겨두고 싶다. 이것은 여행기의 겉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공지능의 정돈된 정보로 채워지지 않을 ‘마음의 기록’에 가깝겠다. 내 성실한 걸음과 마음의 흔적이 휴식을 꿈꾸는 이들에겐 위로로, 불안한 영혼에게는 공감 혹은 안도로 닿기를. 미래의 나에게 든든한 안주거리가 되어주길 기대하면서.
그러니까 이것은 좀 유난한 두 사람이 저마다의 무게를 내려놓거나, 내려놓지 못한 채 발리로 떠나게 된 일. 여러 날 여러 장면을 헤집고 다니며 먹고 걷다가 아주 작은 걸음만큼 변화하게 된 이야기다. 내 영혼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미워하면서 딱 한 걸음만큼 성장하고 싶었던 시간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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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발리였냐면
오랜만에 이태리나 로마는 어때? 조만간 가려 벼르던 바르셀로나를 거쳐 몰타 섬에 갈까? 웰니스 라이프의 본진이라는 하와이, 언니가 한 시절을 보낸 태국, 공동의 추억이 담긴 LA 등 여러 후보들을 제치고 발리가 선택되었다. 신들마저 머물 만큼 아름답다는 그곳. 그 땅에서 피로한 영혼을 달래고 심신의 에너지를 회복할 희망을 품었다. 나야 어디라도 괜찮았고 오히려 한 곳에 오래 머무는 여행을 선호하는 쪽이지만, 이번만큼은 회사에 오래 몸담고 있던 언니에게 다양한 그림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여러 도시를 걸어보자고. 다양한 풍경을 만나고 새 기운을 받자고.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곳들과 모르던 곳들을 섞어 발리의 몇몇 도시를 유람하는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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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혹시 T야????
나는 엄청난 파워 F로서 T를 무척 어려워하는데, 우리 언니가 T라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상상도 못 한 사실. 심지어 J라네? 응 나는 완전 P지. 예견된 미래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여행 준비를 하는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 서로서로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가뜩이나 마음이 바쁜 시기였다. 잘해주고 싶은데 자꾸 화가 나네… 이게 아닌데... 우리 여행은 어떻게 될까. 우리… 함께 떠나도 되는 거 맞지?
몰라, 일단 내려놓자. 내가 잘해 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