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가야(Bodh Gaya) 깨달음의 도시
인도는 종교적으로도 참 흥미로운 나라다. 인도에 N개의 도시가 있고, 어떤 도시들은 도시마다의 컬러를 가지고 있다면, 또 어떤 도시들은 그 도시마다의 종교를 가지고 있다. 인도 여행을 하다보면 좋든 싫든 힌두교, 이슬람교, 불교, 자이나교와 같은 다양한 종교들을 만나게끔 되어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접하기 힘든 종교들이라서 다양한 종교 경험을 할 수 있다. 인도는 불교의 발상지이기도 해서 불교의 4대 성지 중에서- 네팔에 위치한 룸비니를 제외하면- 사르나트, 보드가야, 쿠시나가르가 인도에 위치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보드가야는 부처가 정각을 이룬 곳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도시들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찾아갔지만, 또 어떤 도시들은 특별한 이유가 없이 단순히 "이번에 가지 않으면 언제 또 와보겠어"라는 마음으로 방문했던 곳도 있었다. 나에게 보드가야는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하필 내가 방문했던 시기가 초파일 즈음이었던 터라 어마어마하게 많은 불자들을 행렬과 스님들을 마주해야 했다.
보드가야는 불교의 성지 중에서도 깊은 의미가 있는 장소인 만큼 불교를 여러 나라의 사원들이 들어서 있었다. 일본, 중국, 태국, 스리랑카 등 많은 나라들의 사원들이 각국의 건축양식을 따라 지어져 있었다. 화려한 느낌의 사원으로부터 단정한 느낌까지 각국의 건축양식의 차이를 엿볼 수 있는 재미도 있었다. 그 중에는 한국의 사원도 있었다. 동남아시아의 화려한 건축 양식에 비해서 꽤나 단정한 느낌을 주는 사원이었다.
나는 여행을 하면서 이런 저런 음식점과 까페를 방문하면서 좋은 장소를 발견하는 편은 아니었다. 마음에 드는 도시, 마을, 음식점, 까페를 발견하면 한 장소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여행 초기에 도시를 보던 나의 시선은 어느덧 사람에게 옮겨가고 있었고, 이곳 저곳을 구경하기보다는 이런 저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즐거웠다. 보드가야에서도 마음에 드는 카페를 정해서 한가롭게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거기서 롭상 텐파를 만났다.
그는 자신을 일본계 독일인이라고 소개했다. 자신은 세계적인 젠(Zen) 마스터로 독일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고 했다. 스님치고는 참 뺀질거리게 생긴데다가 주변에 맛좋은 음식점과 카페를 줄줄이 읊어대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참 희안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곤했다.
나는 그에게 불경에 보면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말이 있는데, 왜 불자들은 부처상 앞에 가서 비는지에 대해 질문했었다. 이른바 살불살조(殺佛殺祖)의 화두였다. 부처가 되는 길은 누군가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다. 부처에게 절을 한들 깨달음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고, 들판에 들꽃에게 절을 해도 깨달음이 있으면 부처가 되는 것이다. 정각은 다른 사람의 길을 따라 가거나, 어떤 대상에 절을 한다고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사원을 짓고, 부처상을 만드는 것은 한낱 부질없는 종교의 체계를 세우는 것이 아닌가? 참된 깨달음으로부터 멀어져서 관습과 사회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이런 심오한 질문들을 롭상 텐파에게 물었다. 대학시절 읽었던 도올 김용옥 선생의 『불교란 무엇인가』를 떠올리며, 이런 저런 질문들을 쏟아냈다. 그는 "매우 스마트한 질문이다"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친구의 말이 대부분 맞네만서도 인간은 연약한 존재가 아닌가? 우리는 습관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대상이 없다면, 자신을 관조하기가 어려운 법이라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부처상을 만들어두고 자신을 닦는 연습을 하는 것이지. 우리 모두가 경지에 오른 존재는 아니지 않은가?"
진솔한 답변이었지만, 내 의문을 전부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당시 나는 심한 기침 감기를 앓고 있었다. 오뉴월에는 개도 걸리지 않는다는 감기를 인도라는 나라의 무더위 속에서 앓고 있었다. 더워서 선풍기나 냉방기를 켜면 기침이 나와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선풍기나 냉방기를 끄면 더워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내 자신의 기침소리를 듣는 것이 너무나도 괴로웠다. 두어달을 넘기고 있었다. 그랬던 나에게 어느날 롭상 텐파가 말했다. "허니 워터! 허니 워터 굿 포 유" 마땅한 약도 없는 터라 그의 말대로 작은 통에 담긴 정체 모를 꿀을 하나 구매해서 물에 섞어서 자주 마시기 시작했다. 의심에 가득찬 도마와 같았던 나에게 롭상 텐파의 조언은 적절했다. 얼마 가지 않아 두어달 넘게 앓아왔던 기침이 잦아들었다. 롭상 텐파는 내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사람들이 한산해 보이는 날을 택해서 마하보디 사원을 방문했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알려진 보리수 나무가 있었고, 그 주변에도 다른 커다란 보리수 나무들이 줄지어 있었다. 과연 이 나무가 부처가 앉아 있던 그 나무인가에 대해 또 의심을 했다. 사원 주변에는 부처가 대각을 이루었다는 나무에서 떨어진 나무잎을 판매하고 있었다. 땅바닥에 무수하게 떨어져 있는 나무잎을 주워서 판매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기묘했지만, 그 나무잎을 돈을 주고 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나무 아래 앉았고, 떨어지는 나무잎들을 보면서 깨달았다. "상술에는 끝이 없고, 세상에는 봉이 김선달이 참으로 많구나." 하염없이 떨어지는 나무잎들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보리수 나무잎은 내 마음 속에서 떨어지는 것이니, 그래 아무 보리수 나무잎이면 어떠하랴.
그저 이 곳을 기억할 수 있는 나무잎 아무거나 하나 주워가면 족하리라.
순간 나무잎을 많이 주워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거나 혹은 인터넷으로 판매를 해볼까도 생각해보았지만 한낱 미망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땅바닥에 떨어진 잎사귀 하나를 주워 들었다. 책 사이에 살포시 넣어두면 시간이 지나 멋진 모습으로 남아 있겠지.
오늘 그 나무잎을 꺼내 본다. 이 나무잎은 여전히 내 마음 속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삿된 욕심들로 가득하니 그 나무 아래 앉았던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만은 그래도 추억 하나는 남겼으니 그것으로도 족하다. 어쨌거나 나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이는 무엇인가를 기억하고 관조하기 힘든, 그저 그런 경지의 사람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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