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30.
프리랜서는 대부분 '을'이다. 그런데 '항상' 을인 것만은 아니다. 가끔 '갑'이 되는 경우도 생기는데, 나에게는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플랫폼 어플이 '띵똥' 소리를 울리면서 끊임없이 푸시(push) 기능을 통해 메시지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마감일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의뢰인은 제발 살려달라고 했다. ebook으로 판매되지 않는 책이어서 전철로 1시간이 훨씬 넘는 거리를 '지금' '당장' 달려가 책을 전달해주겠다고도 했다. 너무 무리라고 몇 번이고 고사했지만, 사진으로 책을 촬영해서 보내드릴 테니 기초 원고만이라도 작성해달라고 거듭거듭 부탁했다. 자꾸 찾아오는 유비를 보면서 제갈 공명이 느꼈던 심정이 이런 심정이었을까? 무조건. 웬만하면. 다 쓰는. 프리랜서 작가가 오죽했으면 거절을 했을까?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오늘을 넘길 수 없다'는 그의 말에 측은지심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검색을 해도 블로그 책 리뷰에서도, 유튜브 리뷰에서도 단 한 줄의 정보를 찾기 힘든, 이 시대에 정녕 존재하기 힘든 책이었다. 나는 의뢰인에게 니가 이겼으니 책을 읽지 않고 서평을 쓰는 방법을 전수해주겠다고 했다.
이건 업계의 비밀이라 함부로 누설하면 안 될 것 같은데... 누설한다고 다 따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말해보도록 하자. 책을 읽지 않고 서평을 쓰는 방법은 사실 상당히 다양하다.
서평을 쓰는 대신 교수님에게 간곡한 호소와 눈물을 담아 편지를 써보도록 하자. 왜 서평을 쓰지 못했는지에 대해 구구절절이 이유를 달고, 교수님에 대한 존경심을 화려만 수사학적 표현을 마구 남용하면서 진심으로 표현하면 된다. 일단 쓸 수 있다는 점과 제출은 해볼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편안한 옷으로 환복 하고,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닥터 스트레인처럼 제3의 눈을 떠보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주문을 자유롭게 외쳐보자. 단, 부모님이나 가족들이 이상하게 쳐다볼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만일 부모님이나 가족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는다면, 그게 더 심각한 문제다. 자신의 평소 행실을 심각하게 반성해보아야 한다.
방법은 두 번째와 매우 흡사하지만 다르다. 두 번째 방법이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라면, 세 번째는 상상력을 발휘해보는 것이다. 이럴 경우, 최소한 머리말, 추천사, 목차가 있으면 된다. A4 용지 1-2장의 분량인 경우 내용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 머리말을 읽어보면, 저자가 하고 싶은 가장 핵심적인 이야기와 책의 키워드가 나온다. 그 핵심 키워드 혹은 문장을 원고의 중심에 놓고, 목차를 따라 저자가 했을 만한 말들을 내 상상력으로 조합해 나간다. 잘 안되면, 주문을 한 두어 번 외워준다. 그러면 글이 써진다. 말미에는 추천사에 등장하는 저자에 대한 평가를 찬양 일색으로 편집하여 얹어준다. 그리고 그 찬양 일색인 부분을 반대로 뒤집으면, 이 책의 한계와 전망이 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이 책은 삶의 여정에 대해 가이드를 상세하게 제공해주는 탁월한 책이다"를 되치기 해보자. "이 책은 삶의 여정에 대한 훌륭한 가이드를 제공해주지만, 한편으로 저자의 지나치게 상세하고 친절한 가이드는 오히려 독자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로 정리할 수 있는 것이다. 어때?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
사실 어제 마감을 한 26페이지 번역본 원고도 그랬다. 완전한 번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문장을 읽어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이런 경우, 나에게 원어 텍스트가 있다면 그 부분만 대조해보면 되겠지만, 만일 불완전한 번역본만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방법은 바로 원본 문장은 어떤 것이었을까를 상상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불완전한 번역 문장으로부터 본래 문장이 이러했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영어문장을 역으로 구성해낸다. 그리고 구성해낸 영어문장을 다시 한글로 번역해본다. 어때? 쉽지?
아니? 그런 게 정말 가능한 거냐고? 옛말에 이르기를 독서백편 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 하였으니, 그 어떤 글이라도 백번을 읽으면 뜻이 자연스럽게 통하게 되어 있다. 뜻이 안 통하면 상상의 나래 끝에 뭔가 지어내기라도 할 수 있단 말이다. 이게 말이 되도록 해주는 것은 그동안 읽고 써온 '경험'이다. 엄청나게 쌓여온 이 경험, 이 보정값이 없으면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원고는 엉뚱한 결과를 초래한다. 그럴 것 같으면 차라리 교수님께 편지를 쓰는 게 나은 선택이다.
그리고 이 보정값을 가지고 있을 정도의 경험이 있다면, 그는 이미 책 한 권 읽고 서평 2-3장 쓰는 정도의 원고는 쉽게 써 내려갈 수 있는 작가일 것이다.
나는 책이 없어도 쓸 수는 있다.
왜냐하면.
덧붙임, 이 글은 책을 읽지 않고 서평을 쓰는 신기 묘산을 통해 불량한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양산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니라, 사람들이 간과하는 추천사-머리말-핵심문장을 통해 서평을 구성하는 기본 구조를 구성하는 방법에 대한 글인 동시에, 읽고 쓰는 경험이 많이 쌓이면 얻을 수 있는 유익에 관한 글이니 재미로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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