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02.
작가는 자신의 작품, '글'을 판다. 하지만 프리랜서 작가는 자신의 '시간'을 판다. 프리랜서 작가 자신도 자신의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작품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이 원고가 얼마나 값어치 있는 글인가를 생각하기 이전에 이 원고를 작성하기 위해 얼마의 시간이 들어갈지를 생각해서 원고료를 책정한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플랫폼에서 원고료를 1,000자 단위로 매겨놓은 것은 아마 1,000자를 쓰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기준으로 수치화한 것일 테다.
하지만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만일 시나, 회화작품에 대한 칼럼을 의뢰받은 경우 1,000자를 써내기 위한 시간과 노력은 어쩌면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서평을 1,000자로 쓰는 것에 비해 훨씬 큰 것일 수 있다. 논리적인 글쓰기에 비해 예술에 관한 글은 특별한 감각과 상상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내게는 얼마 전 써주었던 한 싱어송 라이터의 앨범 소개글이 그런 것이었다. 따뜻한 느낌으로 1,000자 정도를 부탁했던 그는 원고료로 20,000원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싱어송 라이터니 가난한 아티스트가 아닐까 하는 마음에 흔쾌히 받아들였지만-누가 누굴 걱정하는지 쯧-, 나는 실제로는 1,000자를 써내기 위해 이틀이 넘는 시간 동안 그의 노래를 들으며 쓰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과연 나는 그 시간을 가치 있게 사용한 것일까? 한 아티스트의 작업에 참여했으니 그의 음악에 내 지분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만족하면 되는 것일까? 아마 그 싱어송 라이터도 자신의 음악의 가치를 사람들이 알아봐 주길 간절하게 바랄 것이다.
이틀을 쥐어짜 낸 그 글에 대해 "너무나 마음에 들어요"라는 메시지를 받고 나서, 마음 한편으로 그러면 되었다고 되뇌었지만, 나는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내 통장에는 15,900원 정도가 찍혀 있었다.
나의 시간은 한 없이 가볍고 위태로워서 작은 바람에도 이리저리 흔들린다.
어제 늦은 밤 한 의뢰인에게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한 대안학교에 제출할 서류 중 특정한 도서에 대한 서평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양육태도를 점검하기 위한 절차인데, 그 원고를 다른 사람이 대신 써주는 것이 의미가 있는 일일까?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무엇보다 '성과'가 중요하고, '결과'가 중요하니 그분에게는 자녀의 '입학'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일 테다. 잠시 고민을 하는 동안에도 메시지를 끊임없이 밀려온다. 자신이 고쳐서 잘 제출할 테니 초고라도 써달라는 간곡한 요청이었다.
그 책은 시중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책도 아니었다. 동네 도서관에서 검색해보았으나 집에서 아주 멀리 있는 도서관에 단 한 권이 있을 뿐이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책을 택배로 보내드릴 테니 12월 8일까지 책을 반환해주시면 된다고 했다. 나는 최대한 합리적으로 생각했다. A4 용지 2장 분량이니 3,000자(A4용지 한 장 분량은 대략 1,500자 내외) 일터다. 책을 빌리기 위해 도서관까지 다녀오는 교통비까지 합산하면 40,000원 정도가 적당해 보였다. 다녀오는 시간은 족히 2시간은 넘게 걸릴 것이고, 책을 읽는 데는 1시간 반 정도, 글을 쓰는데 1시간이다. 도합 4-5시간을 소요해야만 이 원고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보내고 받는 왕복 택배비를 생각해도 원고료에 교통비를 추가하는 비용과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책을 빠르게 손에 넣을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합리적이었다.
되돌아온 대답은 "30,000원에 해주시면 안 될까요?"였다. 나는 그 순간 메시지 창에 아주 긴 글을 순식간에 써 내려갔다. 아마 분노에 차있었던 것 같다. 그 내용의 핵심은 아마 이런 것이었으리라. "30,000원이면 플랫폼 수수료 20% 제하고 저에게는 24,000원이 입금된답니다. 선생님 같으시면 도서관까지 직접 다녀와야 하는 데다가 4-5시간을 사용해야 하는 일에 누군가가 24,000원을 주겠다고 하면 하시겠습니까?" 이 분노는 내 시간을 한없이 가벼운 것으로 여기는 누군가에 대한 분노였다.
하지만, 작은 한숨을 뱉어내며 "그러마"라고 대답했다. 들어온 원고가 터무니없이 적어서 그 의뢰를 꼭 받아야 했던 것도 아니었다. 기존 원고도 많이 밀려 있었지만, 그냥 그저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나는 작가는 아니니까. 나는 그저 프리랜서 작가이니까.
하지만 그 말을 내뱉은 순간, 내 시간은 후회와 함께 한 없이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작가'다운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일 테다. 자신의 시간이 값어치 있게 사용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또 자신의 글이 작품으로 인정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권의 책을 내야 나의 글은 '작품'으로 대우를 받게 될 것이고, 나의 시간이 존중받게 될 테니까...
문제는 나는 구태여 프리랜서 작가가 되겠다고 꿈꾼 적도 없지만, 작가가 되겠다는 마음도 딱히 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내 시간의 한없이 가벼움에 대해 잠시 화가 나 있을 뿐이다.
#프리랜서의시간, #프리랜서의마음, #시간의가벼움, #한없이가벼움, #내시간은29시간이라서값어치가떨어져,#프리랜서작가의글은작품이아니라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