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과 당연함의 사이에 대해서 생각해볼까 합니다.
아쉬움은 언제나 소중함을 깨닫게 합니다. 부족함은 소중함이란 가치를 느끼게 하니, 늘 부족함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지, 없을 땐 아쉽다가 소유하면 귀중함을 잃게 되는 가 봅니다.
연인관계에도 데이트를 하고 헤어질 때는 그렇게 아쉽다가도 결혼하고 2-3년이 지나면 권태로움이 어느새 부부의 생활 속 곳곳에 녹아있지요. 배우자의 어투나 표정, 미울 땐 쩝쩝대며 먹는 소리조차 꼴 보기 싫어지는 것이 배우자에 대한 미움인 듯 합니다. 그래서 이젠 벗어나고 싶지요.
배우자가 출장이나, 모임이라도 가면 왠지 홀가분하고 자유인이 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많은 부부들이 결혼하고 얼마지 않아 이러한 자유가 주는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여자는 남편 없으니, 아이들 간단하게 밥 챙겨 먹여 재우고 드라마에 열공을 하지요. 남자들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혼자서 축구라도 보면서 맥주한캔에 자유를 만끽합니다.
이혼은 어떨까요?
이혼을 결심할 정도라면 얼마의 구속과 고통을 경험한 걸까요? 버려진다는 불안보다, 구속이란 고통이 주는 자유가 더 절실한 걸까요? 이혼을 원하는 분들은 자유를 꿈꾸지만 사실은 자신은 스스로 심리적 사슬로 자신의 마음을 꽁꽁 옮아 매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자유를 꿈꾸지만 알고 보면 스스로 자신을 구속하고 옥죄며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어떤 젊은 아내는 책임감이 너무 강한나머지 집안일과 직장 일에 너무나 충실하여 본인의 직분이상으로 감당한 나머지 지쳐서 배우자에게 위로를 기대하지만 그 배우자도 역시 책임감에 넘친 나머지 부부는 서로를 위로할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왜 우린 책임감에 사명감은 다하면서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이토록 무관심할까요? 마치 세상 사람들이 성공을 위해서는 불철주야로 일을 열심히 하면서 믿음에는 무심한 것처럼 말이죠.
배우자가 구속한 것이 아니라, 우린 스스로 만든 기준에 구속되어 있든 것은 아닐까요? 배우자에 대한 사랑도 내가 만든 허상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내 만든 허상이 아니라고 불만을 토로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 떠나려는 것이 이혼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우리는 기도 안에서 자신의 마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내 위주로 살고 싶어 하는지, 내가 얼마나 내 습관대로 살고자 하는지 말입니다. 배우자가 틀렸다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이혼이라도 불사하려 하지만 세상 그 어디에도 내 마음을 채워줄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배우자를 떠난다 해도 자유는 없습니다. 마치 인간이 우주를 향해 꿈꾸며 우주선에 몸을 실어보지만 한발 내딛는 것도 어려울만치 우주는 우리에게 낯선세상이지요.
이혼으로 자유를 꿈꾸지 마세요. '이혼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가요? 내 이기심을 채우고 싶은 것은 아닌가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평화요. 사랑입니다. 또한 그 사랑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리의 헌신이란 양식이 필요하지요. 헌신 해줄 사람은 찾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이기심입니다.
배우자를 위해 헌신해본 적이 있나요? 또 자신의 내적인 성장을 위해서 헌신해 본적이 있나요? 배우자에게 헌신을 기대하는 마음은 쉽잖아요. 또 내 욕망을 충족하기는 쉽다는 걸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배우자를 위해 조건 없이 나를 내어주고 내 마음의 치유와 성장을 위해 조건 없이 헌신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이혼을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사랑을 원하지만 그곳엔 욕망이라는 이기심의 그림자가 있을 따름입니다.
박노해부부가족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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