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결혼 이야기> 리뷰 by 믹서
나는 영화를 한번 이상 잘 보지 않는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한번 본 걸 또 보는 건 시간 낭비처럼 여겨져서다. 그런데 작년에 굉장히 재밌게 본 <결혼 이야기>를 다시 보면서 반성했다. 시간 낭비가 아니었다. 오히려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면서 영화를 더 깊이 있게 보게 되었으니 '영화 재관람은 시간 낭비'란 말은 취소해야겠다.
<결혼 이야기>를 처음 혼자 봤을 때는 매우 재밌었다. 이혼하는 얘긴데 우울한 거 아니냐고 오빠가 물었을 때도 "아니야, 되게 유쾌한데!"라고 대답했었다. 오빠랑 같이 보고 싶었던 영환데, 나 혼자 봐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영화 관련 팟캐스트도 찾아 듣고, 각종 리뷰들을 보면서 마음을 달랬다.
그러다 우연히 오늘 오빠와 같이 <결혼 이야기>를 봤다. 사실 오늘은 그리 좋은 날이 아니었다. 어젯밤부터 크게 싸우고, 오늘도 싸우고 거의 말을 안 했다. 싸우면 늘 힘들지만 이번에는 좀 더 힘들었다. 지쳤다고 해야 하나. 변화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고, 서로에 대해 점점 관용이 없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작은 불씨가 금방 큰 불로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턱까지 찰랑찰랑하게 차오른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으며 잠잠해진다 싶으면 다시 일렁인다. 서로의 마음을 궁금해하고 화해를 시도하기보다는 각자의 세계에 더 빠져들고, 그것은 더 공고해지는 것 같다. 그러다가 어째 저째 다시 말을 하고 일상을 회복해 간다.
뭐 이런 여러 생각을 하다가 영화를 보는데 첫 장면부터 눈물이 났다. 거의 영화 내내 눈물이 계속 났는데 주인공들이 울 때 거의 같이 울었던 것 같다. 이번에 볼 때는 특별히 자세히 보려고 한 것도 아닌데 너무 많은 것들이 보였다. 좋은 영화는 두 번 세 번 열 번 보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확실히 들었다
1. 니콜(스칼렛 요한슨 분)이 영화에서 처음 슬프게 우는 장면
찰리에게 자신의 연기를 몇 가지 지적받고 아무렇지 않게 방으로 들어가다가 운다. 숨죽여 운다. 그동안 살면서 남편 몰래 얼마나 많이 울었을까.
2. 니콜이 이혼 전문 변호사 노라(로라 던 분)를 만나 처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
첫 질문을 받고 바로 운다. 니콜은 거의 바늘로 찌르면 퐉 터질 상태였던 거다. 근데, 자신의 상태도 잘 모르면서 원만하게 변호사 없이 좋게 이혼하려고 했던 거다. 이혼을 생각한 이유는,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는 남편 찰리(아담 드라이버 분)를 더는 참을 수 없어서였다. 단순히 사랑이 식어서 이혼하는 게 아니라고 니콜은 말한다. 노라도 이해한다. 그들의 사랑은 진행 중이었다. 서로 사랑하는 것과 상대로 인해 자신이 작아지는 건 별개 문제인 것이다.
이 부분이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처음 영화 봤을 때보다 크게 와닿았다. 그저께 인도 음식점에서 오빠랑 말다툼하며 울었던 기억이 갑자기 떠오른다. 오빠 입장에서는 별일 아니었겠지만, 대화 중에 내 의견이 묵살당한 기분이 들어 서럽게 울면서 싸웠었다. 니콜과 비슷한 지점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것 같다. 사람은 모두 그렇다.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서럽고 화가 난다.
니콜과 찰리가 서로의 변호사를 대동하고 처음 대화를 하는 장면을 보면, 니콜의 남편 찰리는 이런 부분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이해를 못 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아예 모른다. 10년간 함께 살면서 니콜이 이 부분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시도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찰리는 모른다. 아무리 같이 오래 살아도 모르는 건 끝까지 모르는 것 같다.
3. 찰리가 처음으로 우는 장면은 크게 싸울 때다.
니콜에게 심한 독설을 뱉고, 자신이 한 말에 놀라서 운다. 바로 니콜에게 미안하다고 했지만, 난 찰리의 눈물이 자기 연민처럼 보였다. 그때도 니콜은 위로해준다. 니콜이 좀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니콜은 그동안 그렇게 찰리를 위로해 주며 편안한 안식처 역할을 했겠구나 싶었다.
4. 마지막에, 아들과 함께 니콜이 찰리의 장점에 대해 쓴 문서를 읽으며 찰리가 두 번째 운다.
아들이 있어서 티를 못 냈지만 거의 오열 수준이었다고 본다. (아담 드라이버 연기 정말 잘했다고 생각함.) 그건 후회의 눈물일까, 자기 연민일까, 미안함의 눈물일까. 하나로 설명할 수 없겠지. 이때도 또 니콜은 그걸 보고 뒤에서 운다. 찰리를 안쓰럽게 바라보면서.
그 외 새롭게 보였던 장면은, 이혼 후 드디어 LA에서 지내게 된 찰리 소식을 듣고 니콜이 정말 벙쪄하는 모습이다. 영화 처음 봤을 때는 기억에 없던 장면이다. 타이밍이란 정말 인간의 힘으로 안 되는 것인가. 니콜이 LA에서 자신의 일도 하면서 찰리와 함께 지내고 싶어 했을 때는 맘대로 안 되던 일이, 이혼하고 나니 쉽게 이루어진 것이다. 진작 찰리가 LA에 왔다면 이들은 이혼하지 않았을까. 찰리가 LA에서 지내게 됐다는 말을 들은 그 순간 니콜의 벙찐 표정은 '아… 표정으로 말하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또 하나 새롭게 본 건, 영화 초반에 니콜의 마지막 뉴욕 공연이 끝나고 식당에서 사람들이 하는 얘기였다. “니콜과 찰리 말이야. 둘이 갈라서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 둘은 늘 함께였잖아.” 하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생각했다. 만약, 오빠랑 내가 이혼한다면 사람들이 저렇게 얘기할까… 물론,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점잖게 얘기하진 않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찰리의 노래, 그리고 가사. 마음이 서늘해졌다. 제목이 이혼 이야기가 아니고, 왜 결혼 이야기인지 알 것 같다.
영화 보고 바로 이렇게 리뷰를 길게 남기는 건 별로 없는 일인데, 영화 끝나고 미친 듯이 오열하고 바로 노트북을 켜고 글을 썼다. 다른 때 같았으면 오빠랑 영화 토론을 했겠지만, 오늘은 싸웠으니 영화를 함께 봤어도 이야기 나누지 않아서 이렇게 생생한 영화 리뷰를 남길 수 있다. 전에 썼던 에세이 생각이 난다. 모든 것은 명암이 있다.
Dean Jones - Being Alive
Someone to hold you too close
너를 꼭 안아줄 사람
Someone to hurt you too deep
너를 상처 입힐 사람
Someone to sit in your chair to ruin your sleep
너의 의자에 앉아 잠을 방해할 사람
Someone to need you too much
너를 너무나 필요로 할 사람
Someone to know you too well
너를 너무 잘 아는 사람
Someone to pull you up short to put you through hell
너를 지옥으로 이끌 사람
Someone you have to let in
너의 맘에 들 사람
Someone whose feelings you spare
너를 아껴줄 사람
Someone who, like it or not,
누군가는 좋든 싫든 간에
Will want you to share
너와 나누고 싶어 할 거야
A little, a lot.
뭐든지
Someone to crowd you with love
너를 사랑으로 채우는 사람
Someone to force you to care
너의 관심을 끌어내는 사람
Someone to make you come through
너의 마음을 얻어내는 사람
Who will always be there
항상 그 자리에 있을 누군가는
As frightened as you of being alive
너처럼 겁에 질린 채로 살아갈 거야
Being alive
살아가는 것에
Somebody to hold my too close
나를 꼭 안아줄 사람
Somebody to hurt my too deep
나를 상처 입힐 사람
Somebody to sit in your chair to ruin my sleep
나의 의자에 앉아 잠을 방해할 사람
And make me aware of being alive
살아있음을 일깨워주는 사람
Being alive
살아있음을
Somebody to need me too much
나를 너무나 필요로 할 사람
Somebody to know me too well
나를 너무 잘 아는 사람
Somebody to pull me up short to put you through hell
나를 지옥으로 이끌 사람
And give me support
그리고 나를 버텨줄 사람
For being alive
살 수 있도록
Make me alive
나를 살려줄 사람
Make me confused
나를 헤집고
Mock me with praise
칭찬으로 놀리고
Let me be used
나를 이용하고
Vary my days
나날을 뒤엎어
But alone is alone
하지만 혼자는 혼자일 뿐
Not alive
삶과 다르지
Somebody, crowd me with love
나를 사랑으로 채워줄 사람
Somebody, force me to care
나의 관심을 끌어낼 사람
Somebody, let me come through
나의 마음을 얻어낼 사람
I\'ll always be there
난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거야
As frightened as you
너처럼 겁에 질린 채로
To help us survive
우리가 살아남도록
Being alive
살아있도록
Being alive
살아있도록
Being alive
살아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