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꿈, 색깔, 캠핑) 에세이 by 믹서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한 이 명제는, 인간의 삶을 지배한다. 선택지는 늘 두 가지만 존재하고, 세상의 이치는 이분법적인 것만 같다. 어른이 되고 나이를 먹어 갈수록 선택에 대한 기회비용은 커지기만 한다. 인생의 변곡점에서 스스로 내린 결정에는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그건 네가 감수해야지”라는 말을 때때로 듣는다.
꿈과 현실의 간격은 점점 좁아지는 게 아니라, 넓어지기만 한다. 어렸을 때는 꿈을 꾸는 대로 꼭 실현될 것만 같았다. “커서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도 해맑게 대답할 수 있었다. 대통령, 의사, 판사가 되고 싶은 아이들은 성적에 관계없이 꿈을 꿀 수 있었던 때가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성적이 학창 시절을 잠식해 가면서 현실에 눈을 뜨는 순간, 꿈은 사라졌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었다. 꿈을 이루고 싶은 아이들은 방과 후 신나게 노는 것을 포기하고 독서실과 학원을 선택했다. 나도 후자를 택한 학생이었다.
대학에 가야만 사람 노릇한다고 배웠던 나는, 공부 이외의 것들은 다 포기하고 대학을 선택했다. 대학에 와서 맞이한 20대에는 몇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대학원을 갈 것이냐, 취업을 할 것이냐, 고시 공부를 할 것이냐. 위험 부담이 큰 고시 공부를 하기로 결정한 나는 5년 동안 또 공부 이외의 것들을 다 포기했다. 그리고 도전은 완전히 실패했다.
고시 실패의 대가는 컸다. 취업할 시기를 포기했으니 일반 회사에 들어가는 것은 꿈꿀 수도 없는 시점, 20대 후반이 되었다. 그때는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나는 완전히 다른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인도에서 자원봉사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아예 1년 동안 인도에 눌러살았다. 인도에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새롭게 찾게 됐고, 1년 뒤 한국에 돌아와 방송국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방송의 ‘방’자도 모른 채 방송 일을 하겠다는 결정에는 혹독한 결과가 뒤따랐다. 이미 20대 초반부터 방송을 시작한 사람들과 서른 살이 다 돼서 이 일을 시작한 나는 게임이 안 됐다. 한 3, 4년 동안은 촬영과 편집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내 인생은 왜 늘 이렇게 극단적일까’ 하는 생각에 지치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내 선택에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했다.
방송국 피디로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무렵, 결혼을 했다. 이번에는 내가 포기할 것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결혼했다고 해서 나의 일을 포기해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괜찮았다. 문제는 아이를 가졌을 때 시작됐다. 임신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간 열심히 준비하고 있던 프로그램을 포기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임신한 몸으로 무리하며 일할 수 없으니, 조금 덜 힘든 프로그램으로 옮겨가야 했다.
인생에서 처음 맞닥뜨린 상황에서 나는 판단력을 잃었다. 그동안 인생에서 뭔가 결정해 온 패턴과 달랐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법칙이 나 자신에게 통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계속 무리하게 일을 했고, 3개월 만에 아이를 잃었다. 물론 유산이 나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마음 깊숙이 자리한 죄책감과 트라우마는 나를 오랫동안 괴롭히고 있다.
그 이후로 결국 나는 일을 선택했고, 자연스럽게 아이에 대한 이슈는 멀어져 갔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지 않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한 대가가 분명 있었다. 양가 부모님께 걱정을 끼쳤고, 그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언제 이렇게 나의 꿈과 현실의 간격이 이토록 많이 벌어졌나. 돌아보니, 많은 여성이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아슬아슬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내 아이와의 행복, 일에 대한 성취감 이 둘은 영원히 공존할 수 없는 것인가. 하나를 선택했을 때, 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비극은 여기에서 절정을 맞는다.
내년이면 마흔이다. 아이를 낳기 점차 힘들어지는 나이, 육체가 되어 간다. 그러니, 이 비극은 절정에서 결말로 서서히 치닫는다. 시간이 지나면 애 낳으라는 주변의 잔소리도, 그럴 능력도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다’는 명제가 내 발목을 놔주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그 명제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 생각도 없다. 세상 이치가 이분법적인 것 같아도 자세히 보면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인생 스펙트럼은 꼼꼼하게 다양한 색깔로 존재한다. 나이가 들며 경험하고 발견하는 인생은 다양한 색을 내며, 켜켜이 쌓여간다. 내 결정으로 인해 감수해야 할 그 무엇조차, 실은 갖가지 색을 가진 빛이 비쳐 드리운 그림자일 뿐이다.
빛은 스펙트럼을 지나면 다양한 색을 보여준다. 그림자는 빛의 세기에 따라 더 어둡게 드리운다. 내 인생은 다양한 빛의 색과 어둠이 조화를 이루는 현실 세계다. 이 사실을 볼 때마다, 나는 ‘모든 일에 명과 암이 있다’는 명제에 휘둘리지 않는다.
나는 여러 인생 전환점을 지났다. 어떠한 선택을 했을 때 잃은 것도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살아내며 성장했다. 내 아픈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삶도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그러니까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말은, 인생 전체를 봤을 때 옳은 말이 아니다. 다양한 색깔로 이루어진 개개인의 삶을 너무 단순화했기 때문이다.
무더위로 고생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계절이 왔다. 내가 좋아하는 캠핑을 가기 딱 좋은 날씨다. 캠핑 가면 참 좋다.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을 만날 수 있고, 안락한 환경에서 벗어나 조금은 거친 환경을 경험한다. 그리고 도시에서는 보지 못했던 여러 색깔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캠핑 짐을 싸고 푸는 과정은 귀찮고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역시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는 걸까. 캠핑을 즐기기 위해서는 편안함을 포기하고 귀찮음을 택해야 하는 것인가. 이 명제들은 이 가을에도 나를 꼼꼼하게 괴롭힐 생각인가 보다. 그래도 난 다음 주에 캠핑을 떠날 준비를 할 것이다. 다양한 색을 만나러.
*notice
유유히유영은 유자까, 믹서, 멸종각 세 작가가 함께 글을 올리는 공간입니다. 최근 세 작가는 한 주에 하루, 시간을 정해놓고(약 1시간 반) 같이 글쓰기를 합니다. 무작위로 적은 16개 단어 중 3개를 뽑아 관련 글을 작성해요. 형식은 자유입니다. 같은 키워드가 주어지지만, 각자 다른 느낌으로 글을 쓰기에 다양한 글이 나옵니다. 앞으로 매주 키워드 단편집에 이날 쓴 글들을 올리겠습니다. 이번 키워드는 '꿈', '색깔', '캠핑'입니다. 일로 인정받기에 자기를 모두 갈아 넣어 왔던 작가 '믹서'의 에세이가 첫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