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불안, 인싸, 소설) 에세이 by 멸종각
우리가 가진 불안은 실재하는 것일까? 많은 이가 불안이란, 그저 오지 않은 미래를 살고 있는 자신의 관념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도 불안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의지의 문제인지도 묻고 싶다. 시시각각 닥쳐오는 미래의 나를 거부하고 밀쳐내는 일이 가능한지도 의심이 든다.
또 불안은 후회와 맞닿아 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얼마든지 분리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조금만 되짚어 봐도 어불성설이다. 후회는, 지나가버린 과거에 얽매여 있는 또 다른 자신의 관념이다. ‘지난날의 나’를 앎으로 ‘앞으로의 나’를 예지한다. 과거에 얽매인 후회는 미래의 나를 생각하게 하며, 지금의 나를 불안하게 한다.
그렇다면 언제나 현재에 뿌리내리고 산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과연 불안과 후회로부터 충분히 자유로운가? 아마 인터넷의 공간 그 어디를 훑어보더라도 고개를 저을 것이다.
특히 오늘날 ‘인싸’ 문화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는 ‘현재의 함정들’은 불안이나 후회보다 나을 게 없다. 단순히 지금을 산다는 말이 주는 그럴싸함은 온갖 사치스러운 욕망들이 덧칠되어 있을 뿐이다. 나를 만들어 온 근거들과 내가 만들어 갈 긍정적 요소들을 걷어차게 할 수도 있다. 차라리 불안과 후회는 우리 마지막 바닥을 인지하게 만들고 인간성을 담보하기라도 한다.
혹자는 이 글을 보며 이렇게 이야기할지 모르겠다.
“소설 쓰고 있네, XX새끼가... ”
명절 시즌 명작 영화의 명대사는 언제나 쓸모 있다. 과연 이번에도 그럴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당신이 할 이야기는 무엇인가. 현재에 대한 자신감이 과거와 불안을 이길 힘을 준다고 할 텐가? 그토록 자신감 넘치게 대중들을 향해 떠드는 그 모든 공허한 메들리들이 내가 쓰는 소설보다 유익할지 묻고 싶다.
한없이 긍정적이게만 디자인하는 '지금의 나'라는 건 어찌 보면 작금의 기득권 세력이 가진 오만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만든다. 잘해 왔고 잘하고 있으며 잘해나갈 것이다. 웃기고 있네, 그런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 전송까지는 누르지 못하고 지워버린 글 중에서
*notice
유유히유영은 유자까, 믹서, 멸종각 세 작가가 함께 글을 올리는 공간입니다. 최근 세 작가는 한 주에 하루, 시간을 정해놓고(약 1시간 반) 같이 글쓰기를 합니다. 무작위로 적은 16개 단어 중 3개를 뽑아 관련 글을 작성해요. 형식은 자유입니다. 같은 키워드가 주어지지만, 각자 다른 느낌으로 글을 쓰기에 다양한 글이 나옵니다. 앞으로 매주 키워드 단편집에 이날 쓴 글들을 올리겠습니다. 첫 키워드는 '불안', '인싸', '소설'입니다. 이번 글은 상실의 시대에서 희망을 꿈꾸다 좌절한 멸종각의 에세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