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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히유영 Aug 29. 2019

지각의 이유

키워드(불안, 인싸, 소설) 단편 소설  by 유자까

오늘도 뛴다. 아침에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 어젯밤, 술에 취해 잠이 들어 스마트폰 충전을 잊은 것이다. 부장에게 ‘내일도 지각하면 알아서 하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큰일이다. 날 위로해 준다는 친구들과 저녁 식사 때부터 불안하더라니. 10분 남았다. 다행히 이 마을버스만 놓치지 않으면 살 수 있다. 그러니 죽어라 뛰어야 한다.


술자리가 끝까지 기억나지 않는다. 설마 내가 계산을 다 한 건 아니겠지. 지각의 불안이 가시려는데, 등골이 오싹해진다. 그러다 이내 다시 수긍한다. ‘아마도 친구들 입을 막으려 또 내가 계산했겠지.’ 대학에서 국문을 전공하며 글쟁이로 살자는 꿈을 함께 키워 왔는데, 나는 글과 상관없이 살아간다. 만날 때면 늘 ‘배반자’라며, 내 안에 잠든 글쟁이를 깨우라고 권고한다.


“야, 한얼, 너 인마. 난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만은 ‘글밥’ 먹으며 살 줄 알았다. 네 소설 볼 때마다, 난 늘 절망했단 말이야. 그런데 지금 그 모습은 도대체 뭐냐. 취업해서 ‘인싸’ 직장인으로 사니까 좋냐? 넌 정말 그렇게 살면 안 될 놈이라고. 너 같은 놈이 글을 써야지. 아무리 애가 생겼다고 그걸 접어?”


어쩌겠나. 사실 내 글은...... 아니다. 어쨌든 이 입들을 막으려면 계속 술을 먹이는 방법밖에 없다. 어차피 다음에 볼 때도, 같은 이야기뿐이겠지만. 다들, 글로 먹고사는 길 열심히 걸으라고 응원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다행이다. 늦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리면서 생각했다.


‘글쟁이로의 삶을 포기하는 게 늦지 않아 다행인 걸까? 그냥 지각이 아니라 다행이다 싶은 건가?’


내 글이, 날 처음으로 돕는다 생각했던 건 자소설(?!)이 처음이었다. 지각쟁이라고 날 타박하는 부장이 넌 자소서 때문에 뽑혔다고 항상 타박하니 말이다. 내 글을 뽑아 준 문예전은 우리 회사가 처음이란 의미로 난 받아들인다. 나는 내 독자를 위해 오늘 몇 글자 적어서 제출할 생각이다. 기획서도 글은 글이니. 내 글을 읽을 유일한 독자, 부장이 만족해야 살 텐데.


*notice
유유히유영은 유자까, 믹서, 멸종각 세 작가가 함께 글을 올리는 공간입니다. 최근 세 작가는 한 주에 하루, 시간을 정해놓고(약 1시간 반) 같이 글쓰기를 합니다. 무작위로 적은 16개 단어 중 3개를 뽑아 관련 글을 작성해요. 형식은 자유입니다. 같은 키워드가 주어지지만, 각자 다른 느낌으로 글을 쓰기에 다양한 글이 나옵니다. 앞으로 매주 키워드 단편집에 이날 쓴 글들을 올리겠습니다. 첫 키워드는 '불안', '인싸', '소설'입니다. 이번 글은 유명 작가를 꿈꾸는 속물, 유자까의 단편 소설입니다.

키워드(불안, 인싸, 소설) 에세이 by 멸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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