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불안, 인싸, 소설) 단편 소설 by 유자까
오늘도 뛴다. 아침에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 어젯밤, 술에 취해 잠이 들어 스마트폰 충전을 잊은 것이다. 부장에게 ‘내일도 지각하면 알아서 하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큰일이다. 날 위로해 준다는 친구들과 저녁 식사 때부터 불안하더라니. 10분 남았다. 다행히 이 마을버스만 놓치지 않으면 살 수 있다. 그러니 죽어라 뛰어야 한다.
술자리가 끝까지 기억나지 않는다. 설마 내가 계산을 다 한 건 아니겠지. 지각의 불안이 가시려는데, 등골이 오싹해진다. 그러다 이내 다시 수긍한다. ‘아마도 친구들 입을 막으려 또 내가 계산했겠지.’ 대학에서 국문을 전공하며 글쟁이로 살자는 꿈을 함께 키워 왔는데, 나는 글과 상관없이 살아간다. 만날 때면 늘 ‘배반자’라며, 내 안에 잠든 글쟁이를 깨우라고 권고한다.
“야, 한얼, 너 인마. 난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만은 ‘글밥’ 먹으며 살 줄 알았다. 네 소설 볼 때마다, 난 늘 절망했단 말이야. 그런데 지금 그 모습은 도대체 뭐냐. 취업해서 ‘인싸’ 직장인으로 사니까 좋냐? 넌 정말 그렇게 살면 안 될 놈이라고. 너 같은 놈이 글을 써야지. 아무리 애가 생겼다고 그걸 접어?”
어쩌겠나. 사실 내 글은...... 아니다. 어쨌든 이 입들을 막으려면 계속 술을 먹이는 방법밖에 없다. 어차피 다음에 볼 때도, 같은 이야기뿐이겠지만. 다들, 글로 먹고사는 길 열심히 걸으라고 응원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다행이다. 늦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리면서 생각했다.
‘글쟁이로의 삶을 포기하는 게 늦지 않아 다행인 걸까? 그냥 지각이 아니라 다행이다 싶은 건가?’
내 글이, 날 처음으로 돕는다 생각했던 건 자소설(?!)이 처음이었다. 지각쟁이라고 날 타박하는 부장이 넌 자소서 때문에 뽑혔다고 항상 타박하니 말이다. 내 글을 뽑아 준 문예전은 우리 회사가 처음이란 의미로 난 받아들인다. 나는 내 독자를 위해 오늘 몇 글자 적어서 제출할 생각이다. 기획서도 글은 글이니. 내 글을 읽을 유일한 독자, 부장이 만족해야 살 텐데.
*notice
유유히유영은 유자까, 믹서, 멸종각 세 작가가 함께 글을 올리는 공간입니다. 최근 세 작가는 한 주에 하루, 시간을 정해놓고(약 1시간 반) 같이 글쓰기를 합니다. 무작위로 적은 16개 단어 중 3개를 뽑아 관련 글을 작성해요. 형식은 자유입니다. 같은 키워드가 주어지지만, 각자 다른 느낌으로 글을 쓰기에 다양한 글이 나옵니다. 앞으로 매주 키워드 단편집에 이날 쓴 글들을 올리겠습니다. 첫 키워드는 '불안', '인싸', '소설'입니다. 이번 글은 유명 작가를 꿈꾸는 속물, 유자까의 단편 소설입니다.
키워드(불안, 인싸, 소설) 에세이 by 멸종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