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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히유영 Sep 10. 2019

서점에서 느낀 첫 행복

키워드(서점, 대학, 행복) 단편 소설  by 유자까

“오늘 산 책은 언제 다 읽으려고? 지난번에 산 책도 다 안 읽었잖아.”


용필은 못마땅하다는 듯 인영을 다그쳤다. 


“책은 인테리어를 위한 최고의 디스플레이 아니겠어?” 


인영이 말했다. 용필은 이런 인영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짜증 섞인 질문에 웃어주며 답하는 인영에 오늘도 이길 수 없음을 알았다. 괜히 혼자 삐쭉댄 것 같아 민망할 따름이다. 용필이 이런 말을 할만 했다. 코에 바람 좀 넣자고, 일산에서 속초까지 3시간이나 달려왔다. 그런데 여기서도 서점을 찾다니. 


인영은 왜, 이토록 책을 좋아할까. 아니 책과 관련한 장소를 좋아한다고 해야 할까. 결혼 전에도 인영은 서점을 꼭 데이트 코스에 넣었다. 결혼 후에도 변하지 않는 걸 보고 용필은, ‘단순한 허세는 아니구나’라고 생각할 뿐이다. 용필은 서점이 그리 좋으냐고 물었다. 


“책이 가득한 장소에 있으면 정말 행복해.”


용필은 서점에 관심이 없었다. 대학 진학에 모든 걸 걸었던 시절, 문제집이나 사러 다녔던 장소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게다가 서점과 관련한 나쁜 기억마저 있다. 


고3 시절, 수능시험을 치루고 있었던 일이다. 용필은 평소보다 좋은 성적을 거뒀다. 모의고사 성적보다 점수가 잘 나온 정도가 아니었다. 그해 수능시험 평균 성적은, 작년보다 40점이나 떨어졌다. 용필은 20점이 올랐으니, 60점의 상승효과를 본 것이다. 


당시 말로 ‘인서울’ 대학에 진학한다는 꿈에 부풀었다. 점수에 맞춰 대학에 지원했다. 어머니는 반대했다.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수도권 대학에 가기를 권유했다. 물론 ‘성적뽕’을 맛본 용필 마음에 차지 않는 제안이었다. 늘 수도권 대학을 목표로 살았던 그가 인서울 대학으로 진학할 기회였다. 


용필은 그해 대입에서 큰 좌절을 맛보았다. 모두 낙방했다. 성적이 크게 낮아졌던 해라, 대다수가 하향 지원한 탓이었다. 


아들이 4년제 대학 입시에 모두 낙방했다는 소식에 어머니는 격노했다. "재수는 없다"고 외치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용필에게 집어 던졌다. 그리고 울면서 소리쳤다. 


“서점 가서 전문대학 원서 사와!”


어머니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용필은 어머니에게 모멸감을 느꼈다. 실망시켜드려 죄송한 마음마저 사그라졌다. 그렇게 서점은 용필에게 모멸감을 느끼게 한 장소로 남았다. 속초에서 서점을 보니, 97년 대입을 위해 찾았던 서점 생각이 나 더욱 씁쓸했다. 그곳에 더 있지 못하고, 서점 밖으로 나와 스마트폰으로 눈을 돌렸다. 저녁을 먹어야 하니, 맛집을 찾는 게 낫겠다는 마음으로. 


30분 쯤 지나자 인영이 계산을 마치고 나왔다. 그리고 용필에게 책을 안겨줬다. 무거우니 나눠 들자는 말과 함께.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용필에게 안겨진 책은 8권인데, 인영 손에는 2권만 들렸다. 


‘그렇지 않아도 열 받은 상황에, 지금 시츄에이션은 무엇?’이라는 생각이 ‘확’ 들었다. 용필은 더 없이 ‘쪼잔(?!)’한 말인 걸 알면서도 꼭 그렇게 이야기해야 했다.  


“자기야? 지금 뭐하는 거지? 나눠 들자며?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 안 들어?”
“뭐가 불공평해? 자기 손에 들린 책을 보라고.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 


책들을 유심히 살폈다. <초보 엄마 아빠를 위한 임신 출산 핸드북>, <아빠가 읽는 임신출산책> 등등. 초보 아빠들의 에세이도 있었다. 그동안 샀던 책들과는 전혀 다른 종류였다. 순간 용필은 뒤통수에 소름이 돋았다. 


“설마?”
“그래, 자기도 아빠 될 준비해야지. 우리 아기 5주래.” 


용필은 눈물을 흘리며 인영을 확 껴안았다. 


“인영아 고마워. 나 잘할게.”


인영은 용필을 토닥였다. 용필은 오늘 처음으로 서점에서 행복하다고 느꼈다. 




*notice
유유히유영은 유자까, 믹서, 멸종각 세 작가가 함께 글을 올리는 공간입니다. 최근 세 작가는 한 주에 하루, 시간을 정해놓고(약 1시간 반) 같이 글쓰기를 합니다. 무작위로 적은 16개 단어 중 3개를 뽑아 관련 글을 작성해요. 형식은 자유입니다. 같은 키워드가 주어지지만, 각자 다른 느낌으로 글을 쓰기에 다양한 글이 나옵니다. 앞으로 매주 키워드 단편집에 이날 쓴 글들을 올리겠습니다. 두 번째 키워드는 '대학', '행복', '서점'입니다. 이번 글은 유명 작가를 꿈꾸는 속물, 유자까의 단편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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