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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히유영 Oct 08. 2019

꿈? 길 위에 굴절된 아버지의 잔상

키워드(꿈, 색깔, 캠핑) 단편소설  by 멸종각

“빛의 입자가 유리를 통과할 때 생기는 잔상들을 이용할 줄 알아야 공간구상에서 가장...”


교수님의 지루한 강의에 ‘강의실은 왜 빛의 굴절 같은 걸 전혀 생각하지 않고 설계를 한 걸까?’라고 생각하며 기지개를 켰다. 처음 건축가를 꿈꾸며 공부를 시작했을 땐, 옅은 햇살마저 찬란하게 느껴질 만큼 이 눅눅한 강의실에도 애정이 샘솟았는데. 지금은 그 생각에 ‘풋’하고 웃는다. 나른하고 부스스할 따름이다.


게다가 오전 내내, 교양이라 쓰고 자기개발이라 읽는, 수업들의 ‘소양 팔이(?!)’를 빗발치는 총알처럼 받아내고 있자니, 전공 시간에 나른함 따윈 애교다. 몸서리치게 흘러나오는 잠, 잠... 잠. 잠을 통과해버리고 싶었다. 


나의 단잠, 응? 아버지?!


“뭐해 인마, 자일 똑바로 안 걸어? 밑에 쳐다보지 말랬지!”


응? 아버지? 절벽!!! 

꿈이구나!


“아버지, 여긴 어디예요? 아버지가 어떻게?”


“이 자식이, 숨 똑바로 안 쉴래? 암벽 탈 때 정신 자꾸 놓으면...”


“아니 이건 꿈이라니까요. 으다닷, 꿈인데 왜 미끄러져!”


“진아! 인마! 제동 잡고!” 


이건 꿈이다, 언젠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아버지와의 주말 등반. 죽는 줄 알았던 그날인데, 하필!


“봐라, 인마 얼마나 좋냐? 시원하지? 캬~”


아버진, 딴에는 꼭 진지한 이야길 하셔야겠다 싶을 때, 날 짊어지고 산을 찾으셨다. 아마 내가 옆 동네 반 친구, 그 누구였더라? 하여튼 그 녀석과 싸운 날이었던... 아니, 꿈인데. 뭘 추억하고 자빠진!


“텐트 치자, 아빤 저녁 준비하마.”


노을을 편안하게 즐기려면 할 일이 태산이다. 꿈이 이렇게 스킵이 안 될 필요가 있을까. 

그러니까 이건 단잠이 ‘아닌가 봉가’?


“넌 꿈이 뭐냐?”


그래, 뜬금없지만 아버지다운 질문이다. 별로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던 것 같다.


“그냥 구조대원만 아니면 돼요!”


차라리 한대 맞고 끝내지 주말 내내 나를 괴롭히나 싶어 퉁명스럽게 내뱉은 대답, 꿈에라도 다르게 흘러갈 수 있었을 텐데 이게 뭔가 싶다. 가위눌린 건가? 


“진아, 노을 좀 봐봐라 삐쭉 나와 있지 말고.” 


아! 언제나 울컥하는 빛깔이다.


“남자는 말이다...”


아! 언제나 욱하는 연설이다.


‘스킵! 스키이이~~입. 이런 꿈.’


그래서 그렇게 사신 아버지는!! 결국! 웁웁 빌어먹을 꿈에서도 한 마디가 안 새어나간다.


“진아, 넌 언제나 아빠의 꿈이고 가능성이야. 아빤, 널 믿고 응원한다. 옹졸한 모습 같은 건, 지는 해에 다 던져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거야.”


저런 말씀을 했던가? 영화랑 섞이는 것 같은...


“타임캡슐 묻자!”


어? 이건 기억난다. 왜 잊고 있었지? 


퍽!  


“아! 야이 ㅆ..”


“인마~ 밥 먹자. 언제까지 퍼 자기만 할 거야?"


아이 씨. 아프다. 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어디였더라? 기억이......


“야 어디가? 수업 아직 남았는데!” 


“꿈 깨러 간다~~”


친구 녀석 핀잔에 선문답을 하고, 나는 꿈과 이 길 위에 굴절된 아버지의 잔상을 쫓았다.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오셨던 게지. 내 나른함에 무언가 던져주고 싶으셨던 거겠지. 그 날의 그 땅속 어딘가에서 내게 말씀하고 싶었던 것이겠지.’




*notice

유유히유영은 유자까, 믹서, 멸종각 세 작가가 함께 글을 올리는 공간입니다. 최근 세 작가는 한 주에 하루, 시간을 정해놓고(약 1시간 반) 같이 글쓰기를 합니다. 무작위로 적은 16개 단어 중 3개를 뽑아 관련 글을 작성해요. 형식은 자유입니다. 같은 키워드가 주어지지만, 각자 다른 느낌으로 글을 쓰기에 다양한 글이 나옵니다. 앞으로 매주 키워드 단편집에 이날 쓴 글들을 올리겠습니다. 세 번째 키워드는 '꿈', '색깔', '캠핑'입니다. 이번 글은 상실의 시대에서 희망을 꿈꾸다 좌절한 멸종각의 단편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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