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꿈, 색깔, 캠핑) 단편소설 by 유자까
“팩 좀 잘 박지. 텐트가 헐렁이잖아.”
밖에 나와서도 잔소리다. 오랜만에 나온 캠핑인데, 그냥 즐겁게 지내면 안 되나. 이런 생각을 하는 찰나, 유미의 잔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희순은 손에 들고 있던 단조팩을 꽉 쥐었다. 지난 번 캠핑 때, 돌밭에 팩이 휘어서 이번에 새로 산 고가의 팩인데, 집어 던지고 싶은 기분이다. 이번이 유미와 마지막 캠핑이라는 생각으로 오기는 했는데. 과연 이런 감정을 잘 이겨내고 제대로 마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결혼한 지 3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희순은 이별을 결심하는 중이다. 아직 사랑한다 말하면서도, 느껴지는 이 감정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이번 캠핑에서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과연 유미와 어떻게 해야 할지 말이다. 그런데 초장부터 이게 무슨 짓인가. 자기가 직접 박던가. 매번 희순에게 미루기만 하고, 잔소리로 성질만 내다니. 희순은 ‘내가 지금 이런 마음을 먹게 된 게 이상하지 않아’라고 생각했다.
유미는 늘 마음이 상한다. 무언가 끝맺음이 늘 대충인 희순이 안타깝다. 연애할 때도 그랬다. 무언가를 준비해도 안 하느니 못하게 준비했다. 잘 생각해 보니, 처음 사귀기로 했던 날도 생각이 안 난다. 희순은 유미에게 좋아한다거나 사귀자고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다. 좋아한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계속 주변을 맴돌 뿐이었다. 처음에는 2살 정도 연상인 누나를 좋아해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넘어갔다. 그렇게 만나자고 한 것도 유미였다.
그렇게 약속을 잡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놀러 가고, 술도 마시다, 잠자리도 같이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가 생겨 결혼까지 하게 됐다. 아이가 생겨 결혼하게 되었는데, 프로포즈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아이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하지라고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만 보였다. 유미는 그날 희순을 보고 처음으로 큰 소리를 냈다.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안 지울 거면 결혼해야지.”
우유부단하던 희순은 낙태할 시기도 그냥 지나 보냈다. 뱃속 아기는 자라고, 그냥 양가 부모님 성화에 결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캠핑장에 도착해서 둘은 같이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그나마 캠핑 오는 차 안에서 딸 해나가 잠이 들었기 망정이었다. 유미는 지난 캠핑 때 희순이 텐트를 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해나를 보고 있으면 자기 혼자 할 수 있다고 큰소리는 다 쳤는데, 30분이 지나도록 텐트는 형체도 없다. 아직 멀었냐고 물으니, 희순은 “넌 아무것도 안 하면서 꼭 그런 식으로 이야기해야겠냐”고 큰소리를 쳤다. 그래서 함께 텐트를 치고 있다.
유미는 이번 캠핑을 통해 무언가 잘 해보자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바닥에 박힌 팩을 보니, 이번 캠핑에서도 아무런 진전이 없을 것 같이 느껴졌다. 희순은 그냥 이번에도 대충 박아 둔 팩처럼 다시 대충 넘어가려고 할 것이다. 며칠 전 꿈에서 희순이 당당하게 “이혼하자”고 말했던 모습이 떠올라 더 짜증난다. 가사도, 육아도, 심지어 돈벌이도 모두 유미가 주도하는 지긋지긋한 상황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다.
“팩 좀 잘 박지. 텐트가 헐렁이잖아.”
희순은 처음으로 마음을 먹었다. 유미와의 관계에서 무엇 하나 제대로 마음 먹고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오늘 밤에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혼하자. 그래야 서로 편해진다.’ 희순은 저녁을 먹고, 맥주를 비우며 이혼을 이야기하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직장 동기인 김 대리처럼 다시 미혼으로 돌아가 자유롭게 지내겠다는 생각에 즐거워졌다. 그렇게 생각하니, 푸르른 하늘처럼 마음도 밝아지는 느낌이다.
“유미야, 오늘 내 마음이 푸른색이 된 것 같아. 뭔가 기분이 좋아.”
희순은 유미를 조금 놀려줘야겠다는 생각으로 말했다. 유미는 멀리서 “뭐라는 거야”라고 답했다. 그 모습을 보니, 더 명확해진다. ‘그래, 오늘 꿈을 이루는 거야.’ 이런 생각으로 딸 해나를 보았다. 그런데도 마음이 평안했다. 결혼으로 이끌었던 해나가, 이혼하려는 아빠의 결단에 발목을 잡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 미안한 마음은 들었지만 큰 저항감은 없다. 이내 희순은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래, 유미도 맨날 말하잖아. 생각이 있으면, 바라는 게 있으면 당당하게 이야기하라고. 내 진짜 바람은 이혼이라고 밝히면 되. 유미가 바라는 것도 그것일 테니.”
*notice
유유히유영은 유자까, 믹서, 멸종각 세 작가가 함께 글을 올리는 공간입니다. 최근 세 작가는 한 주에 하루, 시간을 정해놓고(약 1시간 반) 같이 글쓰기를 합니다. 무작위로 적은 16개 단어 중 3개를 뽑아 관련 글을 작성해요. 형식은 자유입니다. 같은 키워드가 주어지지만, 각자 다른 느낌으로 글을 쓰기에 다양한 글이 나옵니다. 앞으로 매주 키워드 단편집에 이날 쓴 글들을 올리겠습니다. 네 번째 키워드는 '캠핑', '색깔', '꿈'입니다. 이번 글은 유명 작가를 꿈꾸지만, 글쓰기 자체에 만족한다고 말하는 속물, 유자까의 단편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