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어쩌다 딩크가 됐을까 (1) by 믹서
"삶의 경로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천천히 깊이 있게 탐색하다 보면, 우리가 왜 지금처럼 살고 있는지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엘런 L. 워커의 <아이 없는 완전한 삶> 중
어쩌다 아이 없는 삶을 살게 됐을까. 반추해 본다. 결혼 후 1년 정도 됐을 무렵 임신을 하고 유산을 했던 그때로 시계를 돌린다.
유산 후 2년간 미친 듯이 일했다. 그때 내 나이 서른여섯. 7년간 다니던 방송국에서 퇴사하고, 미국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1년간 뉴욕에서 기자로 살았다. 시아버님은 미국에서 아이 낳고 미국 시민권자 만들어 오라고 농담 삼아 말씀하시곤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혹시나 해서 인터넷으로 정보를 탐색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아이를 낳는 건, 보험 없이는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다. 아무래도 아이는 한국에 가서 낳아야지 싶었다.
그 당시에도 이미 30대 중반을 넘어섰기에 임신을 했어도 노산이었을 것이다. 1년 후 한국에 돌아왔을 때 서른일곱이었다. 직장 일은 점점 바빠지고, 새롭게 하고 싶은 일들도 생겼다. 아이 고민은 계속됐지만,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 보니 세월은 휙휙 지나갔다.
난 마흔이 기점이라고 생각했다. 아이 낳을 수 있는 마지노선이 바로 마흔이라는 나이라고 본 거다. 마흔이 몇 년 안 남은 시점에서 나의 커리어는 점점 발전해서 중단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38~39살을 지나면서는 남편에게 우울증과 뇌경색이 찾아오기도 했다. 아픈 오빠를 회복시키는 게 우선이었기에 아이 문제는 당분간 접어둘 수밖에 없었던 시기들을 지났다.
서른아홉이 끝나갈 때쯤 나는 회사 인간으로서의 삶을 종료했고, 남편과 함께 우리가 꿈꾸던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사업자 등록을 하고, 먹고사니즘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마흔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 없는 삶을 살기로 했다.
그런 생각이 든다. 누구나 살면서 아플 수도 있고, 이런저런 많은 일들이 있지 않은가. 그 누가 직장에서 힘들지 않은 사람이 있으며, 그 누가 바쁘지 않은가.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사람들은 아이를 낳고 살아간다. 물론 굉장히 힘들고 전쟁 같은 삶이겠지만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며 그 길을 간다. 하지만 우린 그 길을 가지 않은 것이다.
"세상 살면서 지금 이 순간에 꼭 해야 할 중요한 게 있고, 불확실하지만 미래를 위해 중요해질 수도 있는 일이 있는데 어떻게 보면 우린 미래 가치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포기한 것이 아닐까"
오빠는 이렇게 말했다. 미래의 일은 알 수가 없으니 어쩌면 아이 낳지 않은 걸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걸 쿨하게 인정한 셈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말에 수긍이 됐다. 나는 현재를 충실히 살아갈 뿐이다. 어차피 사람은 인생의 모든 길을 갈 수는 없다. 흘러가는 대로 우연히 살게 되는 부분도 있지만, 아이 문제에 있어서 나는 우연보다 선택을 선택했고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 (계속)
*관련 내용으로 영상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링크: https://youtu.be/fBOEazupoG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