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어쩌다 딩크가 됐을까 (2) by 믹서
아이 없는 삶을 택했다고 해서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다. 우리 부부도 그렇다. 오빠는 바깥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보고 자란 탓에, 직업이 있는 여성이 육아와 일을 동시에 잘 해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판단했다고 한다. 그런 오빠가 나에게 비출산에 대한 고민을 하게 했다. '아이 없는 삶'이라는 선택지도 있으니 꼭 아이를 낳겠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라고 말이다. 그런 오빠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한다.
"20년 후에 아이 없음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나도 그 시대의 아들이다 보니까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있어"
우리는 사회라는 큰 울타리 안에 살아가기에 완전히 독립적일 수 없다. 오빠 역시 주위 사람들과 시대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다고 고백했다. 비혼인 사람들은 꽤 있지만, 일단 결혼했으면 대부분 아이를 낳기에 그렇다. 하지만 오빠는 아이 낳는 건 전적으로 여성의 선택이고 여성의 몫이기에, 우리 출산결정은 여성인 내가 하길 바랐다고 강조했다. 나는 낳지 않기로 했지만, 여전히 불안했고 걱정도 많았다.
조카들을 유난히 예뻐하는 오빠를 보며 마음이 복잡하던 때가 있었다. 오빠는 본래 아이를 굉장히 좋아한다. 양가 조카들을 살뜰히 챙기고, 일단 만나면 최선을 다해 놀아주느라 에너지를 200% 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오빠에게 이렇게 묻곤 했다.
"오빠가 이렇게 애들을 좋아하는데 정말 아이 없이 살아도 되겠어? 후회하지 않겠어?"
그때마다 오빠는 아이 좋아하는 것과 우리 부부가 아이를 낳는 건 다른 문제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현재 초등학교 2학년인 조카 1호를 볼 때마다 유산으로 잃은 아이가 생각날 때가 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8년 전 유산되지 않았다면 우리 애도 지금쯤 학교를 갔겠구나' 하는 상상을 한다는 거다. 아이 없는 삶을 택했지만, 한편에는 질투심이나 부러움이 있다고 했다. 물론 육아의 고달픔을 생각하면 곧바로 제정신으로 돌아온다며 오빠는 껄껄 웃었다.
나에게도 그런 양가적 감정이 당연히 있다. 질투라고 표현하기에는 모자란, 그보다 더 복잡한 감정들이 내 안에 오밀조밀 모여 있다. 거기에 더해, 내 이기적인 마음도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한다. 나는 미래의 내가 걱정된다. 지금은 오빠와 내가 서로서로 돌봐주니 괜찮지만, 나중에 늙었을 때는 어떻게 될지 염려스럽다. 나 자신을 위해 아이를 낳는 건 극단의 이기심 때문이기에, 그런 마음이 슬그머니 들 때마다 단호히 뿌리치긴 한다. 하지만 30년, 40년 후의 내 모습을 그려보면 여전히 불안하고 가끔은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실은 나의 노후 걱정보다 더 심각한 고민은 따로 있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한 부분이다. 가장 어렵지만, 또 가장 가깝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엄마 아빠다. 어떨 때는 너무 좋고, 어떨 때는 너무 싫다. 그러나 싫건 좋건 그 관계 안에는 세상에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이 있기에, 아무리 엄마가 내게 상처 주는 말을 하고 내가 엄마에게 심한 말을 해도 어느 순간 그런 말들은 물거품이 되어 없어진다.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도 부모님이고,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도 부모님이다. 그런 극단의 감정을 느끼게 할 수 있는 건 이 세상에서 엄마 아빠뿐이다. 내게 좋은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알리고 싶고, 슬프고 힘들 때 완전히 기댈 수 있는 존재다. 감사하게도 나는 부모님과 그런 관계다. 내가 만약 자식을 낳았으면 그 자식과도 그런 관계가 됐을 텐데, 그런 관계가 이제 나에겐 없을 거란 생각을 했을 때 오묘한 감정이 든다.
이런 끈끈한 관계는 부모님이 내게 무한한 사랑과 에너지를 쏟았기 때문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특히 엄마는 나를 낳고 전적으로 날 키웠기 때문에 포기한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대부분 그랬으니까. 남자는 돈을 벌고, 여자는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게 당연했던 시대였다.
상상해 본다. 나는 어떨까. 내 모든 에너지를 쏟아서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한때 아이를 낳고 싶었던 시기에도 이런 생각까진 솔직히 하지 않았다. 나는 나의 인생을 살고, 아이는 그 자신의 인생을 살 거라고 그냥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런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지금 이 사회에서, 그리고 내 성향을 봤을 때 분명 나도 내 아이가 있으면 내 모든 걸 걸고 육아와 교육에 전념할 게 뻔하다. 아마 내 삶에서 나라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작아지지 않을까.
여성은 이 지점에서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 일과 자아를 거의 동일시하는 나 같은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하는 게 맞는 걸까. 우리 부부는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해 그 길을 가고 있지만, 흔들리고 또 흔들리며 가끔 멈추어 서기도 하는 것이다. (계속)
*관련 내용으로 영상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링크: https://youtu.be/fBOEazupoG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