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명절, 엄마, 여행) 단편 소설 by 유자까
“어머, 박 권사님. 못 오신다더니 어떻게 오셨어요?”
“김 권사님 축하해요. 그렇게 기도하던 아들이 드디어 결혼한다는데, 어떻게든 와야지요. 이쪽이 아드님?! 키도 크고 너무 멋지네. 축하해요.”
멀뚱히 섰던 영철은 활짝 웃으며, 양손으로 김 권사의 손을 잡았다.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철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엄마의 교회 손님이 생각보다 많이 찾았다. 그리고 모두 같은 말로 엄마와 인사한다. 그렇게 “기도하더니 드디어 결혼하네”라고 말이다.
‘엄마는 도대체 교회에서 뭐라고 하고 다닌 거람?’
영철은 엄마 교회 지인들과 인사하며 계속 이런 생각만 했다. 이런 마음이니, 인사가 불편할 수밖에. 뭐, 나이가 어린것도 아니고 42세에 하는 결혼이다. 미희를 만나 혼담이 오가기 전까지 ‘늘상 들었던 이야기기’도 하고. 그러니 어쩌겠는가?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해야 하는 시간이다. 그저 웃을 수밖에.
게다가 이런 생각도 잠시다. 첫 결혼은 원래 이런 것인지, 정신이 없다. 그저 인사만 했는데, 시간은 후다닥 흘러간다. 교회에서 늘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지금도 곧 지나가리라.’
영철과 미희의 결혼식은 추석을 한 주 앞두고 진행됐다. 어떤 의미로 영철의 마음은 홀가분했다. 명절 연휴를 끼고 신혼여행을 가야 해서 마음도 좋다. 37세를 넘기면서 추석과 설 연휴에는 친척들을 피해 항상 도피성 여행만 떠났던 까닭이다. 명절에 도피성 여행이 아닌, 여행을 떠난다니 믿기지 않는다. 거기에 미희와 함께하는 첫 해외여행이다. 마흔이 넘어 해외로 갈 때 이렇게 기대감이 큰 적이 없었다.
“아이고 형님, 오셨어요. 이렇게 먼 곳까지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아, 우리 똘똘이 결혼한다는데, 당연히 꼭 와야지. 내가 그동안 얼마나 걱정했는데.”
큰아버지가 오셨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 좋았던 큰아버지인데, 대학을 졸업하고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겠지만, 취업과 결혼 이야기 외에는 할 이야기가 없는 인물이다. 그냥 큰아버지니까 인사한다.
그러고 보니, 큰아버지가 많이 늙었다. 못 뵌 지 몇 년째 던가. 명절 때마다 여행을 다니면서 만나지 않았으니, 8년 만인 것 같다. 시간은 참 빠르다. 순간 큰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그동안 심려 끼쳐 죄송합니다. 잘 살게요.”
마음에도 없는 말로 웃으며 인사했다. 옆에 있던 엄마도 웃는다.
“제수씨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어. 그동안 섭섭했던 건 다 털어버립시다.”
“아주버님, 먼 길 와주셔서 감사해요.”
영철에게, 명절이면 여행을 가라고 했던 사람은 엄마였다. 영철의 엄마도 그런 소리가 듣기 싫었다. 걱정하는 듯한 말로 영철을 꾸짖는 친척들의 잔소리 말이다. 그러다 엄마는 친척들을 집에 오지 못하게 했다. 친척들 때문에 아들을 집에서 나가라고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영철의 아버지는 족보상 큰할아버지 아들로 입양됐다. 그래서 명절이면 다들 영철의 집에 모였다. 엄마는 둘째 며느리인데, 맏며느리처럼 집안 제사를 모셨다. 교회는 다녔지만, 아버지가 교회를 안 나가니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영철은 더 놀라고 미안했다. 명절이면 종교마저 잊고 살았던 엄마가 친척들에게 오지 말라고 했던 날 말이다. 덕분에 엄마는 아버지와도 격하게 싸웠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아들이 더 중요하다”고 소리 질렀다. 아버지는 아들을 탓하듯 이야기했지만, 엄마를 이기지 못했다. 가족 모임이 사라지고 영철은, 큰아버지가 엄마에게 섭섭한 소리를 많이 했다고만 들었다.
‘어차피 결혼 후에도 안 볼 큰아버지 아닌가. 오늘만 웃자.’
영철은 이런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웃었다.
*notice
유유히유영은 유자까, 믹서, 멸종각 세 작가가 함께 글을 올리는 공간입니다. 최근 세 작가는 한 주에 하루, 시간을 정해놓고(약 1시간 반) 같이 글쓰기를 합니다. 무작위로 적은 16개 단어 중 3개를 뽑아 관련 글을 작성해요. 형식은 자유입니다. 같은 키워드가 주어지지만, 각자 다른 느낌으로 글을 쓰기에 다양한 글이 나옵니다. 앞으로 매주 키워드 단편집에 이날 쓴 글들을 올리겠습니다. 세 번째 키워드는 '명절', '엄마', '여행'입니다. 이번 글은 유명 작가를 꿈꾸지만, 글쓰기 자체에 만족한다고 말하는 속물, 유자까의 단편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