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명절, 여행, 엄마) 단편 소설 by 멸종각
- 청년 실업 최악인데… 대기업 34%는 공채 계획조차 없어…
버스 시간을 기다리며, 스마트폰으로 기사들을 찾아보다 마냥 우울해졌다. 분명 취업 현황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누구누구는 어딜 갔더라 하는 소식도 들리는데. 내가 여태 고생해서 준비한 회사는, 아예 올해 하반기 공채가 없을 거라는 소식을 확인하니 허망하다.
차라리 응시해서 떨어지는 것은, 그나마 부족한 부분을 점검하는 계기라도 만들어줄 텐데. 이건 그냥 허송세월이다. 혹시 이러다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면 어떡하지. 이 문제를 해결할 묘책이 있을까. 아니면 다른 곳이라도 그냥 지원해 경험을 해봐야 하나? 복잡한, 아니 그저 혼란스럽기 만한 잡념들. 손에 잡히지 않는 취업 준비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해야 하나 싶어 막막하고 허탈하고...
... 배고프다.
나는 올해도 집에 내려가지 않을 예정이다. 아직 취업 준비생의 삶을 연명한 지 오래된 건 아니다. 딱히 방탕한 생활로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아니지만, 이상하게 부모님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
매번 큰소리는 큰소리대로 치면서 늘 아쉬울 때마다 벌려온 손이 부끄러워서? 엄친아들의 끊임없는 출세가도가 못내 짜증이 나서? 아니, 그냥 당신들의 부르튼 손 마디마디를 보는 게 너무 괴롭고, 깨끗하기 만한 내 손은 뭔가 이질감을 던져주는 것 같아서다.
나만, 나만 별 일없이 사는 것 같은, 나만 이러고도 멀쩡하게 사는 것만 같아서 정신이 아득해져 오는, 그 기분을 견딜 수 없다.
“2,000원이요~”
이젠 핫도그 하나도 부담스럽다. 이런 음식조차 마음 편히 사 먹지 못하는 것, 이것은 뼈저린 가난보다도 비린 냄새가 난다. 설탕이라도 양껏 묻혀 박탈감을 덮으려는 찰나 휴대폰이 울린다. 엄마 문자다.
‘나박김치 보냈다. 혼자 있어도 끼니 거르지 말고, 명절인데 밥은 꼭 챙겨 먹어.’
눈물은 나지 않았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엄마는 내가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그리고 부담스럽지 않은 명절 음식을 보냈다. 어떤 마음일까, 어떤 생각일까. 나는 이런 순간에도...
“어, 엄마! 주말에 갈 거야. 응? 아니 괜찮아, 엄만? 안 힘들어?”
내 마음의 빚으로라도 여행을 가는 편이 낫겠다. 표 사러 가자.
*notice
유유히유영은 유자까, 믹서, 멸종각 세 작가가 함께 글을 올리는 공간입니다. 최근 세 작가는 한 주에 하루, 시간을 정해놓고(약 1시간 반) 같이 글쓰기를 합니다. 무작위로 적은 16개 단어 중 3개를 뽑아 관련 글을 작성해요. 형식은 자유입니다. 같은 키워드가 주어지지만, 각자 다른 느낌으로 글을 쓰기에 다양한 글이 나옵니다. 앞으로 매주 키워드 단편집에 이날 쓴 글들을 올리겠습니다. 세 번째 키워드는 '명절', '여행', '엄마'입니다. 이번 글은 상실의 시대에서 희망을 꿈꾸다 좌절한 멸종각의 단편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