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로 어른 인증하게 된 순간들

더는 내가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by 멸종각

by 유유히유영

자, 과연 당신이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은 언제인가?


1. 산타가 거짓말이라는 걸 안 순간
2. 성인물을 처음 접한 순간
3. 군 입대


아! 이 중에는 없다? 뭐, 그럴 수 있다. 사람마다 자신의 유아성을 잃거나 거세당한 순간들이 제각각일 테니.


내 경우, 3가지 순간이 떠오른다. 아마도 지금의 ‘나’를 나로 존재하게 한 대표적 순간일 것이다. 첫 번째는 경제적인 독립을 ‘당했을 때’다. 먹고, 입고, 자는 모든 일이, 그 어떤 원조도 없이 이루어져야만 하는 때가 당도했다. 자의인지, 타의인지 알지 못하는 순간에 일어난 사건이다.


캥거루족이라는 말이 나오는 시대, 독립은 대개 결혼과 함께 이뤄지는 경우가 일반적일 테다. 물론 그중에서도 IMF를 조금 세게 맞은 이들은 그럴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거기에 형편이 더 어려워진 집들은 결혼조차 생각 못 하는 경우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가족들끼리 함께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친척집 같이 피신할 곳이 있었다면 모를까, 그런 사정도 허락되지 않는 사람들은 남한의 새로운 이산가족이 되기 일쑤였다. 내가 그랬다. 그러니 지/옥/고라는 헬조선의 아이콘을 옥고로 치러내는 동안, 내 안의 아이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었겠는가.


주거는 그런 식으로라도 해결을 한다지만, 때마다 바뀌어야 하는 옷차림과 끼니때마다 찾아드는 허기는 감출 수도 없었다. 하루에 아르바이트 세 개와 공부를 병행하면서 지내야 했던 대학 시절이었다. 그 기간의 일은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다.


두 번째는 배신당했을 때다. 대부분의 배신은 산타가 실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보다 더 충격적이다. 지인과 친지, 가족을 넘어 친구와 연인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배신의 대상은 물론 방법도 다양해졌다. 다양한 인간군상이 유대감과 친밀함만으로도 정신적인 부분에서 경제적인 부분까지 침범해 들어왔다. 그들과 좋은 관계는 위로를 주다가도 곧장 많은 것을 앗아갔다. 그들은 나를 속이고 버린다.


깨어지는 신뢰, 유린당한 삶, 빼앗긴 희망. 이런 경험은 거듭해서 당한다고 해서 적응이 되거나, 굳은살이 생기지 않는다. 실제 그 정도로 끝나지도 않는다. 매번 그 충격은 새롭고, 아프다. 순간순간마다 내 안의 아이는 죽임 당하고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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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강제적인 ‘돌봄 노동’이 시작될 때다. ‘뜬금포’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제아무리 세상 혼자 살겠다 각오하더라도 반드시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누구나 경험할 상황이다. 그리고 이 돌봄 노동은, 거부할 수 없는 책임감과 어리광 부릴 수 없는 의무감에 간신히 걸쳐진 채로, 오로지 혼자 힘으로 버텨야 하는 순간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아니면 부서질 것 같은 존재들의 면면 앞에서 나의 유아성은 갈 곳을 잃는다. 내가 아니면 유지되지 못할 존재들 앞에서 나의 유아성은 삭제된다. 그것이 감정적인 것이든 육체적인 것이든, 나는 버텨야 하고, 미리 알아야 하며, 쉴 때조차 편안할 수 없다. 내 안의 아이는 자신의 필요와 요구를 들이밀어 보기도 전에 어딘가로 떠밀려 간다.


다만 다행인 점은 이러한 상황과 사건, 역할은 고정적이진 않다는 것이다. 나도 누군가의 유아성을 망가트리고, 알아보지 못하고, 없애버릴 때가 얼마나 많겠는가. 우리는 그렇게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함께 알아 가는 존재들이다.


*notice

유유히유영은 유자까, 믹서, 멸종각 세 작가가 함께 글을 올리는 공간입니다. 세 작가는 한 주에 하루, 시간을 정해놓고 같이 글쓰기를 합니다. 키워드 단편선에 이어, 함께 공감할 한 주제를 정해 에세이를 쓴다고 해야 할까요. 같은 주제가 주어지지만, 각자 다른 느낌으로 글을 쓰기에 다양한 글이 나옵니다. 이번 주제는 '더는 내가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입니다. 첫 글은 시대에서 희망을 꿈꾸다 좌절한 멸종각의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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