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재받지 못하면 결제도 못 하는 남편

나를 안심하게 만드는 것들 by 유자까

by 유유히유영

우리 부부는 함께 일한다. 나는 기획, 영업, 촬영, 작가, 운전, 식사 준비를 담당한다. 아내는 연출, 편집, 청소를 맡았다. 하지만 10년 넘게 연출과 편집 중심으로 일한 아내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자기 일이다.(우리 과업 중 핵심 업무이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아내는 내게 “열심히 하는 건 알지만 더 열심히 하라”거나, 자신의 핵심 역할을 강조하곤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함께 일하면서 번 돈은 모두 아내가 관리한다. 공과금과 생활비, 카드 사용료도 모두 아내 명의 통장에서 나가니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내가 경험하는 허무함이랄까, 불안함이랄까 그런 감정들이다. 돈을 벌면서 내가 소비하고 싶은 데로 소비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불만일 수도 있겠다. 이유 모를 불만이 쌓여 가는 느낌이었다.


내 소비를 정의하자면 이렇다. 미래를 내다보고, 내가 만족할 꼭 필요한 영역에 돈을 쓴다. 물론 모든 소비를 이런 방식으로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소비의 큰 축을 담당하는 영역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주로 먹고 마시는 일과 힘든 주변 사람을 대접하는 용도가 있겠다.(가끔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기도 하지만)


아내는 이런 내 소비 패턴을 미덥지 못하게 여긴다. 연애하기 전, 힘든 일이 있던 아내도 혜택을 누렸으면서 말이다.(나를 만나 무언가 함께 먹고 마시며 이야기 나눌 땐 좋았다고 한다.) 결혼하니 본인 부담으로 돌아온 결제가 좋을 리 없다. 내가 누군가 대접하려고 하면, 아내는 한숨을 쉬며 한심하게 나를 바라본다. 자기 주제를 알라는 그 눈빛에 늘......


전자제품 구매도 중요한 요소다. 방송 일을 하다 보니, 카메라와 편집 장비에 관심이 많다. 아내가 방송국에서 일할 때, 언젠가 우리가 우리 일을 할 때 사용할 카메라를 장기 할부로 장만했다. 생소했던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가 처음 나왔을 때, 영상 전용 기종인 소니 a7s를 샀다. 현장 촬영을 위해 손떨림 방지 기능이 뛰어난 마이크로포서즈 기종도 구비했다.


스마트폰과 연결해 사용했던 소니 미러리스 카메라(QX1)와 소니 첫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a7s).

물론, 아내는 한심하게 나를 바라보며, 꽤 오랜 기간 잔소리를 퍼부었다.


오빠, 우리가 이 카메라를 쓸 일이 뭐가 얼마나 된다고 이런 걸 샀어? 도대체 얼마야? 정신 좀 차려!

허락‘보다’ 용서가 쉽다고 했던가. 어쨌든 아내 모르게 카메라 산 대가는 컸다. 매일 잔소리를 들으며, 죄인으로 지내야 했다. 용서 과정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풀프레임 카메라에 담긴 본인과 조카 모습을 볼 때마다 조금씩 마음이 풀렸던 것 같다. 지금은 그 장비들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내 소비가 밥벌이 도구가 된 후, 아내는 잔소리를 멈추었다.(허락‘보다’ 용서가 쉽다고 누가 말했던가.)


스마트폰도 빠지지 않는 요소다. 거의 1년마다 기종을 바꿨으니 욕먹는 건 당연지사. 결혼하고 나서 내 어머니가 아내에게 가장 먼저 충고한 말씀도 “절대 핸드폰 자주 못 바꾸게 해”였다. 한국에서 정발하지 않은 기종까지 직수입해서 사용할 정도였다. 물론 모두 할부였지만, 내가 만족한다는데 어떠하리. 이런 마음이었다.


장황하게 쓴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은 그런 소비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내에게 허락을 꼭 구해야만 무엇이든 살 수 있는 구조로 바뀌었다.(허락 없이 용서도 없다.) 허튼 소비 방지를 위해 결재를 받지 못하면 결제도 못 하게 되었다. 내게 소비하는 자율이 있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있다. 정말 인생 왜 사는 건지 모르겠다는 말이 수시로 나온다.


깨달음은 ‘결제의 자율’에 그치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통해 안정감을 찾았는지도 정확히 알았다. 나는 정체성을 무엇을 소비하는가에 두었다. 특히 내가 사용하는 물건을 통해 나를 표현하고, 그게 나라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했다. 스마트폰도, 다른 전자제품도 모두 나를 나타내는 도구였다.(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분야가 최대 관심사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을 대접하는 소비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이렇게 ‘나이스’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느끼고 싶어 했던 것이다.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행위가 자아에 큰 영향을 주었다. 누군가를 향한 ‘진심’과 ‘자아를 고무하는 마음’이 공존했다. 이 사실은 우울증으로 고생하던 시기, 1년 가까이 상담을 받으면서, 나를 성찰한 결과다.

결제할 수 있는 자율은 언제 생각해도 날 행복하게 한다!?

그렇다고 내게 안정감을 주던 소비를 완전히 멈추지는 않았다. 많이, 정말 많이 줄였을 뿐이다.(아내는 아직도 멀었다고 평하지만.) 지금도 새 스마트폰 소식이 나올 때마다 열심히 찾아본다. 삼성과 애플 제품이 아닌 제품을 더욱 사랑한다. 카메라도 다르지 않다. 새로 나온 장비들에 관심을 둔다. 바뀐 건 하나. 이제는 사지 않아도 안정감을 누린다는 사실이다.


최근 내 관심사가 다시 음악 쪽으로 기울고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반대로 할 수 없었던 음악에 욕심이 난다. 기타와 피아노는 교회에서 쳤던 가락으로 아주 조금 다루었는데, 최근에는 아코디언과 하모니카에 관심이 많이 간다. 노래는 여전히 잘하고 싶은 분야다. 그래서 아내에게 요구했다. 내 생일 선물로 하모니카를 한 대 사달라고.(아코디언은 너무 비싸다.)


매몰차게 거절당했지만, 다시 도전할 생각이다. 내가 아내에게 취미를 선물했듯, 이번에는 내게 취미를 선물해 보려고 한다. 내 안정감도 거기서 찾아보면 어떨까 싶어서다. 이것도 소비를 위한 변명이겠지? 이런 의심도 하면서 말이다. 그런 의미로 오늘도 비상금 통장에 돈을 넣어야겠다.


*notice 유유히유영은 유자까, 믹서, 멸종각 세 작가가 함께 글을 올리는 공간입니다. 세 작가는 한 주에 하루, 시간을 정해놓고 같이 글쓰기를 합니다. 키워드 단편선에 이어, 함께 공감할 한 주제를 정해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이번 주제는 '나를 안심하게 만드는 것들'입니다. 이번 글은 유명 작가를 꿈꾸지만, 글쓰기 자체에 만족한다고 말하는 속물, 유자까의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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