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침묵이 안정감을 주는 시대를 넘어서려면

나를 안심하게 만드는 것들 by 멸종각

by 유유히유영

세상은 우리를 안심할 수 없게 만든다. 입시, 취업, 결혼 등으로 대표되는 ‘때에 맞춰 사람 구실하고 살아야 한다’는 압박만큼 버거운 짐이 있을까. 어느 날, 이 압박을 인식하면 내가 지금 무엇을 가지지 못했는지, 무엇을 못 해내는지 끊임없이 곱씹는다. 다른 사람과 비교까지 한다면 사회적 압박은 불행함과 불안함으로 명확하게 인식된다.


소셜 미디어는 불행한 감정을 더 키운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를 이용해 사회적 압박과 불안, 부재의 메시지를 구체화하고 전파한다. ‘나만 없어’와 같은 메시지에 더 빠져들게 한다. 과거에도 미디어라는 매개체는 늘 강력하고 빠르게 개인을 잠식해 타인과 비교하게 조장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개개인이 어느 곳에서든 비교 대상으로 전락하게 하는 시대는 없었다.


그래서일까. 아이러니하게도 고독과 침묵이 도리어 사람을 안심하게 한다. 고립에 대한 두려움과 무료함만 버틴다면, 마음은 잠시나마 평안을 되찾는다. 속세에 지친 이들이 수도원에서 안식을 추구했던 것처럼, 우리 중 누군가는 지치다 못해 도시와 문명 자체를 등졌던 것처럼, 자발적 소외를 선택하는 짧은 시간이 오히려 정신적인 안녕을 담보해준다.

내 포스팅에 눌리는 좋아요는 관심받고 싶은 욕망을 채워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종종 우리를 비참하게 한다. 관계를 담보하기 위해 사람들은 ‘소유’라는 척도로 누군가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평가라는 관문을 통과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평판 관리’와 ‘기브 앤 테이크’ 등의 피곤한 관습에 얽매이면, 무엇을 위한 관계인지 알 수도 없다.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관심은 이미 나 자신으로부터도 탈락하여 사라지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 관심과 애정에 목말라 있으면서도, 누구에게도 공급받지 못하는 관계가 이어진다.


‘차라리 혼자가 편하다’라는 절규가 사회 곳곳에서 불특정 다수의 목소리를 빌어 울려 퍼지고 있다. 허나 이러한 유형의 소외는 앞서 말했던 고독과는 성격이 다르다. 분명히 자발적으로 고립되는 양상은 비슷하지만, 편안함은 그저 피로도에 의한 반사효과일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결되지 못하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과 결합해 자신이 혼자 버려졌음을 자각하기에 이른다.


이런 불안과 고통은 오로지 ‘나를 아끼는 타인’의 존재를 통해서만 해결된다. 그게 가족이나 친지일 수 있다. 하지만 가족과 친지가 더 고통일 수도 있는 사람에게 특정 관계는 지옥이다. 오히려 나와 아무런 연관이 없으면서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 나를 이해하고 품어줄 누군가가 안식을 줄 수 있다. 아니, 그런 존재만이 안식을 준다.


안식의 관계는 침묵과 고독으로 얻을 수 있는 편안함과는 전혀 다르다. 잠깐의 노력으로 이룰 수 없다. 친밀함을 유지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도 관계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상처를 안고 돌아서는 일이지만, 결국 해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내 침묵과 고독이 주는 잠깐의 편안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친밀한 관계로 나가기 위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아니, 안정감을 누리게 할 수 있는 각 개인을 둘러싼 공동체와 시스템은 과연 할 일이 없을까?

돈 많은 연예인들도 TV에서 떠드는 통에 이 메시지는 피할 길이 없다.

오늘날, 가장 위대한 신은 누구일까? 바로 ‘돈’이다. 이게 얼마나 강력한지 설명하는 데 할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영향력은 없다. 우선 돈이 없는 누군가는 일차원적으로 독립적 존재로 지내는 건 언감생심이다. 그냥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일정량으로 독립할 수 있는 심적 여력과 나를 아껴주는 존재의 위로가 있어도, 사실 소용없다.


5,000만 원이 가진 진짜 구매력은 화폐의 정의로 끝나는 게 아니다. 5,000만 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모든 일과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의 이 말에 나는 진심으로 통감한다. 맞다. 돈이 가진 진정한 힘은 내가 ‘가진 것만큼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온다. 이런 믿음을 가능케 하는 신이 현대사회에 돈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관계를 평가하고, 지탱하게 하는 동력도 돈이 가진 또 다른 힘에 기인한다. 결국 대다수의 관계 그 자체도 충분하지 못한 돈의 노예로 전락해 있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 이래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돈이란 신 앞에서 역설적으로 돌아서야 한다. 돈에서 떠나자거나, 세상을 초탈해야 한다는 추상적 이야기가 아니다. 적당히 안주하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성공을 추구하자는 반어법도 아니다. 우리가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 혼자 낙오되어 버려진 세상이 아니라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국가나 사회의 필요성을 재정립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우리 사회가 단순히 더 부강한 사회로 가는 것에 초점을 맞춘 시스템의 관성을 멈춰야 한다. 이제는 더 끔찍하지 않은 사회로 향해야 한다. 단순히 정부를 통한 대출 확대나 선별적 소외 계층 복지 등에서 답을 찾을 수 없다는 의미다.


물론 알고 있다. 이런 기대와 희망만으로는 나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안심할 수 없다. 그렇게 흘러가고 있지 않은 세상을 망연히 바라볼 때 느껴지는 절망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나를 안심시키는 것들로부터 과감히 일어서서 남을 안심시킬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어렵다. 때론 가장 비현실적 가치를 따른다고 조롱당할지 모른다. 실제로 상처투성이가 되어 삶이 위태로워질 게 뻔하다. 그렇지만 해답도 역시 뻔하다. 우리는, 내 생존과 안녕을 위해 다른 사람을 위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런 사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notice
유유히유영은 유자까, 믹서, 멸종각 세 작가가 함께 글을 올리는 공간입니다. 세 작가는 한 주에 하루, 시간을 정해놓고 같이 글쓰기를 합니다. 키워드 단편선에 이어, 함께 공감할 한 주제를 정해 에세이를 쓴다고 해야 할까요. 같은 주제가 주어지지만, 각자 다른 느낌으로 글을 쓰기에 다양한 글이 나옵니다. 이번 주제는 '나를 안심하게 만드는 것들'입니다. 이번 글은 시대에서 희망을 꿈꾸다 좌절한 멸종각의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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