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지옥> 리뷰 by 믹서
주말을 바쳐 <지옥>을 봤다. 한 마디로 정말 '가치 있게' 재미있었다. 지루할 틈도 딴생각할 틈도 전혀 없었다. 그리고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첫 장면부터 충격적이다. 정체 모를 괴물이 죽는 날짜와 시간을 예언받은 사람에게 찾아와 잔인하게 죽인다. 유아인(정진수 의장)은 새진리회라는 신흥 종교의 리더다. 세계 곳곳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이야기한 사람이다. 신의 심판이 시작됐으니 이제 열심히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몇 년 후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실제 나타나자 주목받는다.
평소에 그런 생각 많이 한다. 신의 존재에 대해, 크리스천으로서 내 믿음 없음에 대해 고민하며 '구약 시대처럼, 예수님이 살았던 시대처럼 직접적으로 뭔가 초월적인 현상이 나타나면 참 좋을 텐데. 그러면 하나님을 믿는 게 좀 더 쉬웠을 텐데... ' 하는 생각. 하긴, 그때도 모두가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건 아니었다. 안 믿는 사람은 또 안 믿었다.
<지옥>에서는 떡 하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펼쳐진다. 누가 봐도 초월적 존재가 행하는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 새진리회는 그걸 죄와 결부시킨다. ‘죄가 있으니 죽는다’는 진리가 실제로 나타나다니! 세상에 이렇게 명확한 신의 사인이 있을 수 있나. 솔직히 저런 일이 진짜 일어나면 나 같은 사람은 새진리회 광신도가 될 거다, 아마. 광신도가 된 나를 상상하니 괴물보다 더 끔찍하다.
아무튼 구약에서 나타난 하나님은 좀 무서웠다. 엄격하고, 믿음 없는 자는 그 자리에서 죽게 하고, 무수한 전쟁에서도 사람들이 정말 많이 죽게 내버려 두고 뭐 그랬다. 예수님 시대에는 그나마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키는 일들이 좀 부드러웠고, 감동적이었다. 사람을 살리고, 아픈 사람 낫게 하는 그런 일들이었다.
<지옥>에서 그리는 신의 심판은 매우 잔인하다. 구약 시대의 하나님이 떠올랐다. 직접적인 묘사가 그렇다는 거다. 은유로 보자면, 지금의 우리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신이 있긴 있나?' 할 정도로 현실은 잔인하다. 악인이 득세하고, 선인은 오히려 숨 죽이며 살아가야 한다. <지옥>에서처럼 사람을 찢어 죽이고, 태워 죽이지는 않지만 속이 타들어 가는 정도의 마음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새진리회 정진수 의장(유아인 분)은, 공포가 정의 실현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사실은 그도 20년 전, 죽게 된다는 예언을 받고 20년 동안 공포에 떨며 살았다. 그는 자기처럼 사람들도 공포를 느꼈으면 좋겠다며 그게 세상을 정의롭게 할 거라고 했다. 자신이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정의를 더 실현하며 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과연 그럴까? 기독교인들이 딱 그렇다. 주일에 교회 안 가거나 십일조 안 내면 벌 받을 것 같은 공포가 있다. 착하게 살지 않으면 천국 아닌 지옥 불에 떨어질 수 있다는 공포가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보통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으면 종교를 가지게 되는 것 같다. 그저 죽음에 대해 담백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내세를 꿈꾸지 않는다. 현실에 충실할 뿐이다. 그러면 지옥에 대한 공포도 없다. 살아가는 동안 감사하며 살아가는 거다. 휴...이렇게 말하면서도 참... 내 마음을 알 수가 없다.(기독교인이라는 뿌리 깊은 정체성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닌 듯 하다.)
종교인에게 신은 늘 일대일이다. 나에게 늘 집중해 있는 신을 믿으면 모든 일상이 하나님과 연계되어 있다. 크고 작은 인생의 선택들도 하나님의 개입 또는 섭리, 은혜로 귀결된다.
현실은 어떤가. 신은 나만의 신이 아니다. 게다가 <지옥>에서 말하는 것처럼 신은 무질서 하다고 느껴진다. 누구나 이유 없이 죽임 당할 수 있다. 죄가 있건 없건 말이다. 범죄 건 자연재해 건 불의의 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 그냥 랜덤이다. <지옥>에서 새진리회에 맞서는 소도의 리더(김현주 분)가 주장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리고 꼭 물리적인 죽음이 아니더라도, 이유 없이 닥치는 죽음 만큼 고통스러운 일들, 살면서 얼마나 많은가.
<지옥>을 보면서 또 하나의 악함을 보았는데, 유아인이 죽은 후 새진리회 2대 교주가 된 사람. 개인적으로 <지옥>에서 가장 최악이었다. 초자연적인 상황을 이용해서 교세를 넓히려는 인물이다.(극 중에서) 착하게 살아야 지옥 안 가는 세상이 왔는데도 그 와중에서 또 악한 행동을 하다니. 무섭지도 않은가 싶었다. 꼭 현실에 존재하는 나쁜 대형교회 담임목사 같은 느낌(목사가 다 그렇다는 건 아님).
<지옥>은 물론 드라마다. 현실이 아니다. <오징어 게임> 봤을 때도 든 생각인데, 극적인 요소를 잘 해석하면 지금 시대가 보이는 듯 하다. 지옥 같은 세상, 악한 세상, 지옥을 이용해서 정의를 실현하는 사회라니. 인간의 선의는 기대할 수 없다. 지옥에 대한 공포가 오히려 정의를 세운다. 아!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이 세상에 진짜 정의가 있나. 돈이 정의인 세상이다. 성경에서는 돈이 최고의 악이라 말하고 있다. 악이 팽배한 세상, 진짜 사람 찢어 죽이는 괴물이라도 나타나야 정의가 실현되려나. 하나님 믿는다는 기독교인들이 더 하나님 없는 것처럼 악하게 사는 게 현실 아닌가. 저래서 어디 천국 가겠나 싶은 목사들도 많고 말이다. 하나님이 괴물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나님을 좀 무서워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