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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히유영 Nov 23. 2021

미디어가 만드는 조금 부족한 지옥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지옥> 1~3회 리뷰 by 유자까

notice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람이 초자연적 재해로 죽음을 맞이할 때, 사회는 그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지옥>은 시청자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드라마는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한 순간을 1~3회에 그렸고, 사건 이후 종교와 사회 이야기를 4~6회에 담았다. 본 리뷰는 1~3회를 대상으로 다루도록 하겠다.
넷플릭스가 작품에 별말 안 하기로 유명하다. 이 부분은 원작과 거의 비슷하게 구성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원작을 재미있게 봤던 독자라면 총점 5점 만점에 4점을 주지 않을까 싶다.(1~3회까지 그렇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시청 시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6회까지 시간이 잘 지나가니, 안 본 사람은 봐도 무방하다.

먼저, 1~3회 내용은 이렇다. 이 세상에 ‘천사’의 고지가 내린다. 원작에서는 사람 얼굴을 한 존재가 눈물을 흘리며 알리는데, 드라마에선 괴물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OOO, 너는 몇 월 며칠 몇 시에 죽는다. 그리고 지옥에 간다’는 형식이다. 고지를 받은 사람들은 고릴라를 닮은 커다란 세 천사들잔인하게 죽인다. 신의 사자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그들은 사람을 괴롭히다 불같은 섬광으로 태워 죽인다.


경찰이 사건을 수사하지만, 무엇 하나 나오지 않는다. 10여 년 전부터 이런 고지를 알리던 새진리회와 그 단체 의장 정진수(유아인)가 그때를 맞아 사람들에게 알려진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죽는 사건을 두려워하게 된다. 이후, 박정자(김신록)가 고지를 받는다. 정진수는 박정자에게 30억 원을 주겠다며, 생중계를 제안한다. 가난했던 박정자는 이 돈을 자신의 아이들이 잘 받도록 변호사 민혜진(김현주)을 찾아간다. 결국, 시연 라이브 중계는 성공하고, 이 사건으로 사회는 대전환을 맞는다.  


정진수가 20년 전 고지를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안 변호사 민혜진은, 증거가 될 파일을 얻기 위해 ‘미래종교’라는 잡지를 펴낸 목사 김정칠(이동희)에게 달려간다. 그러나 김정칠은 그 사실을 숨기고, 민혜진을 죽이는 대가로 새진리회를 이어받는다. 그리고 민혜진은 화살촉이라 불리는 무리에게 죽임 당한다. 이후, 정진수는 경찰관인 진경훈(양익준)에게 모든 사실을 말하고 아무도 모르게 ‘시연’ 당한다. 


이야기의 뼈대는 간단하다. 고지가 내리고, 인간 세상은 혼란에 빠진다. 하지만 20년 전 고지를 받은 사람이, 고지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고지의 의미는 찾지 못하지만, 인간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메시지를 찾아서 끼워 맞춘다. 그들이 선하지 못해 고지를 받았다고 말이다. 이 내용을 중심으로 기억에 남는 부분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지옥도 미디어로 보는 시대


첫 피해자가 ‘시연’당하는 장면에서, 피해자는 끔찍한 고통을 당하고 죽는다. 그런데 경찰의 과학수사에서는 아무 증거도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불에 탄 시신에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무엇인가만 나온다. 사람들은 충격을 받게 된다. 어찌 해석해야 할지 모를 죽음 앞에서 당혹스럽다. 새로운 현상이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을 경우, 종교적 해석이 우세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알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을 해석하는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이런 초자연적 현상이 생긴 시기, 미디어의 발달은 그야말로 독이다. 이 소식을 대부분이 미디어를 통해 접한다. 국내 첫 피해자 발생 이전부터 외국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데, 정진수는 이 사실을 발견하고 해석의 우위를 점한다. 이 해석을 미디어로 송출하고, 많은 사람이 이를 보게 된다. 이후 박정자가 고지를 받게 되고, 이걸 정진수가 의장으로 있던 새진리회가 생중계하기로 한다. 이 라이브 방송은 새진리회가 주도권을 쥘 수 있게 상황을 바꾼다.


많은 사람이 박정자의 시연에 모인다. 특히 국내 두 번째 시연으로 보이는 사건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던 시기였다. 방송국들도 생중계하기 위해 이 자리에 참석한다. 결국 박정자가 괴롭게 죽는 모습을 사람들이 보게 되는데,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그 자리에 있던 경찰관들마저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절하는 모습이 나오니, 충격은 그야말로 강력했다. 이 모습을 대다수의 사람이 TV 중계로 보게 된다. 

박정자 시연하는 모습을 모티브로 한 <지옥> 포스터.

이외에도 미디어에 갇혀 사는 우리의 모습이 많이 나타난다. 인터넷 방송도 중요한 요소로 나온다. 인터넷 방송을 통해 사람이 모이고, 누군가가 방송에서 선동한다. 이들은 ‘화살촉’이라 불리는 사람들로 등장하는데, 새로운 종교단체인 새진리회와도 굉장히 가까운 사이다. 이 사실을 경찰도 인터넷을 통해 알아본다. 여러 미디어가 켜켜이 쌓아 올린 정보가 있지만, 그 정보는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있을 뿐이다. 현실이라고 얼마나 다를까. 


감독은 이 미디어가 결국 지옥이 되어 돌아오는 세상을 보여준다. 초자연적 현상을 해석하는 권리를 가진 소수가 만들어가는 지옥이 어떤지 그린다. 우리는 그저 몇 사람이 해석한 진실로 세상을 본다. 우리의 <지옥>도 같은 현실이다. 결국 1~3회에서 보여주려고 한 감독의 메시지를 찾고 있다. 초자연적 현상에서 어떤 ‘의도’를 읽어내려고 노력하려는 자세처럼 아주 꼼꼼하게 읽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미디어를 통해 회자된다. 


하여튼, 정진수마저 형사인 진경훈에게 자신이 20년 전 고지받았다는 사실을 말하고, 그 앞에서 시연을 당해 죽는다. 그는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닥쳐을 때, 이 현상을 해석할 수 없는 현실을 지옥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는 이 사건들을 통해 ‘정의롭게 사는 것이 신의 의도’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그 역시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도 인정한다. 


그래서 정진수는 진경훈에게 제안한다. 자신의 시연을 기록하여 세상에 알리고 싶다면, 유일한 딸을 살인죄로 체포하여 세계가 원래대로 돌아가도록 하라고 말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딸을 지키기 위해 입 다물고 살 것을 종용한다. 유일한 딸은, 자신의 엄마를 죽였지만 심신 미약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세상으로 나온 범인을 정진수와 함께 태워 죽였다. 그리고 시신을 근처에 버려 시연의 증거로 놔두었다.(새진리회는 이 사건을 국내 두 번째 시연으로 기록한다.)


사람은 한 진실을 두고 여러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닐 수 있다. 보통 확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이 사건을 재생산하며, 심증을 더 많이 쌓는다. 이런 확증편향도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진 지옥이다. 그리고 사람은 드라마 <지옥>에서 일어난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현상이 일어나도, 위와 같은 단계를 거쳐 그 현상을 이해하려 한다. 미디어를 통해 옳다고 해석해 주는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더욱 기울인다. 그렇다. 지옥은 지금 여기에도 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유


아쉬운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개인적으로 ‘고지’와 ‘시연’이 불편했다. 사람이 알 수 없는 이유로 고지와 시연을 당한다니 드라마를 보는 내내 의아했다. 사람이 이유 없이 죽는다고 하지만, 보통 이유가 붙는다. 사고사·병사·자살 등으로 이야기되는 이유들이다. 재해에 의해 죽는 등 사고사에 비유되는데, 사고사의 경우 알 수 없는 순간 찾아오지만, 여기에 나오는 고지는 사람이 언제 죽는지 명확히 알려준다. 그리고 그 시간, 그 일이 일어난다. 신의 사자로 보이는 덩치 좋은 존재들이 등장해 괴롭히다가 불과 같은 섬광으로 죽게 한다. 그것도 굉장한 고통을 준다. 이유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한다.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다.


불편한 설정은 더 있다. 죽음의 고지 역시 사람마다 기간이 너무 다르다. 정진수는 20년 전에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에 비해 고지를 받는 조연은 대부분 1주일 안에 죽는다. 다음 편에 이야기하겠지만, 30초 안에 죽는 사람도 있었다. 이 부분은 감독이 편의에 맞춰, 나눈 느낌이 들었다. 주요 인물은 고지를 듣고 며칠 안에 죽고, 주요 인물은 수십 년에서 몇 년 안에 죽는다. 이건 감독인 연상호가 <반도>에서 보인, 자기 설정을 붕괴하도록 유도하는 연출법과 이어져 보인다. 이 의문이 풀리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연상호 머릿속에만 답이 있기 때문인도 모른다. 모두 신의 뜻대로니까. 감독의 이 부분도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런지도.


하지만 정진수도 마지막에 이 이야기를 한다. 


이유를 모르겠다. 연필 한 자루도 훔치지 않았다. 난 누구에게도 상처 준 적이 없다. 내가 죽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결국, 감독도 이 전제가 매우 불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않았을까. 핵심 인물에게만 이런 특권을 주었다. 이건 이야기를 설정할 때, 편의를 위해서 특권을 부여했다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매우 아쉽고, 드라마 연출에서 이래도 되나 싶은 부분이다. 요즘 스토리텔링 기법의 대세 인지도 모르지만.


다음 편은 4~6회 리뷰를 올리겠다. 4~6회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내일이나 모레 나머지 리뷰도 올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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