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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쌤 Sep 06. 2022

나는 한쿵말 쌤이다

나는 'TEACHER'다.  그러나 가르치지 않는다.

퇴직 후에 다문화센터에서 자원봉사로 한국어를 가르치게 되었다.

영문학을 전공하고 외국회사에 근무했던 경험이 좀 도움이 되려니 하고 시작한 일인데, 웬 걸 그 기대는 첫날부터 무너지고 말았다.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모여 있는 그들은 대부분 영어권이 아닌 아시아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영어는 한 마디도 쓸 수 없었다.  한국말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한국말의 의미를 한국말로 설명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손짓과 발짓, 몸개그를 사용해가며 간신히 수업을 마쳤지만 그 후로도 한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한 후에야  나름의 노하우를 터득하게 됐다.  수업이 제법 자리를 잡을 무렵 내 안에 새로운 열정이 생겨나고 있음을 느껴, 관련 공부를 하고 자격증도 갖추어 이제 나는 n연차 한국어 교원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OOO이에요.

지금은 주로 온라인으로 일대일 수업을 하고 있다. 생각지도 못한 한류 열풍에 한국어와 문화에 관심이 많아졌지만 가까이 한국어를 배울 곳이 없는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수업한다. 새로운 학생을 배정받아 처음으로 만나면 한국어 수준과 상관없이 꼭 하는 게 있다.  바로 '자기소개'


"안녕하세요, My name is Tina. I'm  a nurse. 반갑습니다."

"네, 반가워요, 티나 씨.  제 이름은 백OO이에요. 저는 한국말 선생님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새로운 학생을 만날 때마다 자기소개를 하다가 나의 이상한 버릇을 하나 발견하게 됐다.

영어로는  "I'm a Korean teacher" 혹은 "I'm teaching Korean."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말로는 줄곧 '저는 한국어 선생님이에요.'라고만 하지 "저는 한국말을 가르쳐요'라고는 절대 안 하는 거다. 왜 그럴까?


                                               '가르침'의 추억


습관처럼 어설픈 통찰과 자기 분석을 통해 발견한 것은, '가르치다'라는 말은 내게 부정적으로 각인돼 있어서 한사코  내가 하는 행위를 '가르치는 것'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이었다.   


"네가 지금 나를 가르치려 드는 거니?"

"오늘은 너희를 좀 가르쳐야겠다"


위의 두 말은 비교적 수평적이고 분방하게 자란 내가 성인이  된 후 약간의 충격으로 들었던 말들 중 하나다. 어떤 분위기에서 한 말인지는 쉽게 눈치챌 것이라 믿는다. 그때까지 나에게 있어서 '가르침'은 '지식이나 이치 따위를 깨닫게 하거나 익히게 하다'라는 중립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그릇된 버릇 따위를 고치어 바로잡다'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더해졌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가르쳐서는 절대 안 되고,  윗사람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 바로 '가르침'인 것이다. 나이를 더 먹고 확실한 어르신이 되어야 누구를 감히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누구를 가르치지 못했다. 가르침은 니에겐 일종의 트라우마다.

며느리도 몰라요


지금은 나도 가정과 사회에서 '어르신'이 되어 가고 있고 '한국말을 가르치는 것'이 주된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지 않고 있다. 아니, 못하고 있다. 사회가 너무 빨리 변하고 새로운 기술과 지식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 오히려 젊은 사람들에게 배울 것이 많아지고 있어서이다.  게다가 며느리도 모르는 '나만의 요리비법' 따위는 *스타그램이니 *tok 같은 신박한 매체에 자리를 내준 지 오래다. "오늘은 너희를 좀 가르쳐야겠다"는 영원히 내가 하지 못할 말이 되고 말았다.


한국어 수업은 어떤가? 한국어를 그들보다 월등히 잘하는 나는, 처음에는 정말 열심히 가르쳤다. 문법과 음운현상 등등 내 한국어 지식을 총동원해서 수업시간을 넘겨가며 열강 했던 기억이 새롭다, 시간을 거듭할수록 나는 말을 줄이고 그들의 서툰 한국말을 더 많이 들으려 하고 있다. 말해 보고 실수하면서 스스로 깨닫고 익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학습에 더 많은 도음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것도 다 '가르침'의 범위에 들어가는 일임에도, 나는 나의 행위가 '가르침' 이 아니라고  우겨 본다.




나는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I never teach. But...


나는 이제 기성세대에 속한다.  내가 간혹 '라때는 말이야~'라며 누군가를 가르친다 해도 큰 흠이 되지 않을 만큼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가르치기보다는 배우는 것을 더 즐기고 있다. 


나는 한국어 원어민 선생이다. 그러나 유창한 한국말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서툰 한국말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그들의 모습을 볼 때에 더 행복하다 . 'teacher'나 'tutor' 보다는 'mentor'로, '교사'나 '선생님'보다는 바른말이 아닐지언정 '쌤'이라는 친근한 호칭으로 불리는 것이 더 좋다.  


나는 앞으로도 가르치지 않겠다. 다만, 배우고자 하는 누군가의 곁에서 맘껏 실수하고 스스로 알아갈 수 있도록 지켜보고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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