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도(目睹)

유정의 무의식

by 김승예

유정은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 속 얼굴을 오래 들여다봤다.
눈 흰자에 잔금처럼 번진 핏줄이 기어오르는 것 같고, 입술은 이를 꽉 깨물었던 흔적이 남아 뜨겁게 욱신거렸다.
표정이 굳어 있는 줄은 알았지만, 어디부터 풀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시간이 한참 흘렀다는 걸 깨달았을 즈음, 창밖의 해는 건물 틈새에 걸려 저녁 빛을 방 안으로 흘렸다.
그 빛이 유정의 눈가를 스치자, 윤이 남아 있을 그 방이 떠올랐다.
햇살도 닿지 않는 음침한 공간, 늘 그 자리에 고여 있는 공기.
자신이 떠나온 뒤에도 그는 여전히 그 어둠 속에서 혼자 웅크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이미지만으로도 목이 타는 듯 답답해졌다.

손을 가만히 모아 쥐었다가 풀기를 몇 번.
유정은 결국 휴대전화를 켰다.
주저하는 숨이 길게 이어졌지만, 재생 버튼을 누른 순간 이미 되돌릴 수 없었다.


곧 방 안에 자신이면서도 자신이 아닌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영상 속 유정은 한참 동안 사람의 얼굴을 흉내만 내고 있는 듯했다.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떠다녔고, 어느 순간 흰자위가 위로 말려 올라가며 검은 동공이 밑바닥에 겨우 매달렸다.
그 흔들림은 생물의 떨림이라기보다, 껍데기만 남은 몸 안에서 다른 무언가가 손을 뻗어 조종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눈꺼풀은 경련하듯 가늘게 떨려 있었고, 조금만 더 뒤집히면 안쪽의 어둠이 아예 밖으로 쏟아질 것만 같았다.


입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공기가 갈라지며 터지는 마찰음, 숨 끝에 걸린 신음, 말의 형태를 막 갖추다 무너지는 파편들.
울음을 닮았지만 정작 눈에는 눈물이 없고, 분노처럼 뜨거운데 방향이 없었다.
마치 몸 안에 갇힌 다른 감정이 틈을 찾아 기어 나오는 기척 같아서, 화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유정의 등줄기를 식은땀이 타고 내려갔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입술을 놓아주지 않았다.
이를 조금 벌릴 때마다 찢겨 있던 살이 억지로 당겨져 진득하게 붙었다 끊어지고, 그 틈에서 짙은 색의 액체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한 번 씹을 때마다 입술의 결이 으깨어졌고, 그 진동이 턱끝과 목을 따라 올라와 얼굴 전체가 일그러지는 듯했다.
그 표정은 인간이 고통을 느낄 때 짓는 표정과도, 분노를 참을 때의 표정과도 달랐다.
딱 맞는 이름이 없는, 그러나 어디선가 오래전에 본 적 있는 듯한 낯선 기괴함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움직임이 끝났을 때, 입가에 슬며시 번지는 웃음이 화면에 걸렸다.
피와 침이 섞여 번들거리는 그 모양새 위로 얇은 웃음이 올라타자, 유정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쾌감이라 하기엔 허전하고, 슬픔이라 하기엔 무디고, 무언가 오래 묵혀둔 본능이 찢겨나온 자리에서 흘러나오는 잔열 같은 표정.
그 표정을 보는 순간, 유정은 그 웃음이 짐승의 숨통을 끊던 바로 그 찰나와 완전히 겹쳐졌다.


유정의 손끝이 덜컥 떨렸다.
휴대전화를 놓칠 듯 휘청거리면서, 반사적으로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차갑게 식은 기기 너머로 보이는 그 얼굴이, 너무도 엄마를 닮아 있었다.
닮지 않으려고, 닮는 순간 자신이 사라져버릴 것 같아 애써 밀어냈던 그림자.
그늘처럼 따라붙는 줄 알면서도 끝끝내 외면하고 싶었던 존재가, 기어이 화면 속 자신의 얼굴로 되살아났다.

엄마의 그림자가 겹쳐지는 순간, 유정은 속이 텅 비어내린 것처럼 휘청거렸다.
몸 안 어딘가에 매달려 있던 중심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 듯했고, 심장은 허공에 남겨진 채 덜컹거렸다.
알아차리지 못한 틈새를 타고, 오래된 공포가 검은 물결처럼 스며들어왔다.
그 공포는 피부 바깥에서 밀려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유정의 뼈속 깊이 깃들어 있던 무언가가 깨어나는 기척이었다.
감히 외면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유전처럼 따라붙는 운명의 실밥이 풀리는 감각.

짐승에게 겨누었던 칼끝이 번개처럼 되살아났다.
이번엔 짐승을 향한 것이 아니라, 정확히 자신의 중심을 겨누고 있었다.
몸속에서 깨어난 이 알 수 없는 충동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엄마가 갔던 길을, 그 절망과 파괴로 얼룩진 시간을, 그대로 밟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끈적한 피처럼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유정의 뼛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순간, 유정은 숨조차 함부로 들이쉬지 못했다.
자신의 호흡조차 낯설고 위태롭게 느껴져, 조금만 더 깊이 숨을 들이쉬면 그 호흡 끝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자신의 목으로 새어나올 것만 같았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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