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의 변화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주공아파트로 이사한 것 외에도, 유정의 가정에는 또 다른 변화가 찾아왔다.
민선이 알코올 중독 치료모임에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모임은 매주 토요일 저녁, 시내 교회의 유아부 교실에서 열렸다.
청년 시절 알코올 의존증을 겪고 가까스로 이를 극복한 심 목사의 배려 덕분에, 이 모임은 회비 없이 운영됐다. 사모와 집사들은 매주 조촐한 다과상을 마련해두었고, 누군가가 2주 이상 금주에 성공하면 근처 고깃집에서 조용한 축하 자리를 갖기도 했다.
규율은 없었고 참석도 자율이었다. 참석 인원은 13명에서 15명가량으로, 명절이나 휴가철엔 5, 6명으로 줄기도 했다.
회원 대부분은 교인이거나 보건소 전단지를 보고 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직장 동료나 이웃의 조심스러운 권유로, 공동체에 대한 애정 어린 걱정으로 말없이 끌려오듯 앉게 된 이들이 많았다.
민선도 그중 한사람이었다.
민선은 교대로 돌아오는 점심시간을 컵라면으로 때우고, 화장실에서 이를 닦고 있었다.
그때, 은숙이 화장실 안으로 들어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자기야, 내가 이런 말 하면 좀 노여울 수도 있는데... 너무 기분 나쁘게 듣진 말구. 다 자기 잘되라고 하는 말이니까.”
“무슨 일이에요?”
민선이 칫솔질을 멈추며 물었다.
은숙은 말을 머뭇거리다가, 이내 작게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아니, 글쎄... 아직도 퇴근할 때마다 술을 사 가더라, 자기.”
그 말에 민선의 손이 멈칫했다.
“다름이 아니고... 내가 다니느 교회에서 알코올 의존자들 모아놓고 이야기 나누는 모임이 있거든. 술 줄이는 방법도 공유하고, 심리치료도 조금씩 하고. 나도 매주 사모님이랑 다과상 차리러 봉사 가는데, 자기도 한번 나가보면 어떨까 해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
민선은 칫솔을 헹구고 나서,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저는... 하느님 안 믿어요.”
“장소만 교회지, 종교 권유는 일절 없어. 거시 나오는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불자도 있고 무교도 있더라. 자기 걱정하는 그런 거 전혀 없으니까, 그냥 가볍게 나가 봐. 직장 밖에서 사람도 좀 만날 겸.”
은숙이 덧붙이자, 민선은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 저 요즘에는 술 마실 시간도 없어요. 예전보다 진짜 많이 줄었어요. 괜찮아요.”
직장까지 소개해 준 은숙의 호의를 민선은 차마 단칼에 거절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빚을 사교 모임 출석으로 갚을 마음도 없었다. 그건 고마움의 문제와는 전혀 다른 일이었다.
“자기가 속으로 무슨 생각하는지 나도 알아.
알코올 중독자들끼리 모여서 무슨 좋은 영향이 있겠냐, 그런 데서 남 얘기나 듣고 있을 시간에 차라리 혼자 있는 게 낫지, 싶을 거야. 나도 그랬거든. 처음에 거기 모임이 오히려 술판 아니냐는 의심도 했고. 근데 사람들이 그러더라.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속 얘기 나누다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풀린다고. 자기 나를 봐서라도, 그냥 한 번만. 속는 셈 치고 가 봐.”
은숙은 쉽게 물러날 수 없었다.
크리스천으로서, 동네 동생이 제 무덤을 파고드는 모습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민선은 그녀에게 ‘제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실천하기에 더없이 안성맞춤인 존재였다.
그리고 은숙은 믿었다. 민선도 언젠가, 자신처럼 따뜻한 관심에 감화되어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을 거라고.
민선은 이렇게까지 정성을 들이는 은숙의 청을 거절하는 자신이, 배은망덕한 사람처럼 느껴져 견딜 수 없었다.
결국, 입을 열었다.
“그럼... 말씀대로 한 번 나가 볼게요, 언니.”
민선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은숙의 얼굴이 환해지며 이전의 근엄한 표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진짜지? 자기 진짜 오는 거지? 와... 내가 오늘 이 얘기 꺼내길 잘했다!”
은숙은 화장실 바닥의 차가운 타일 위로 통통 뛰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실망 안 할 거야, 정말이야. 이게 하느님의 인도야, 우리 같이 새 삶을 사는 거야! 유정이도 이 소식 들으면 너무 기뻐하겠다.”
출근하지 않는 토요일.
민선이 늦잠에서 일어났을 때는 어느새 오후 세 시를 훌쩍 넘긴 뒤였다.
충분히 잤는데도 몸은 여전히 피곤했고, 머릿속에는 밤새 마신 술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 둔탁한 울림이 맴돌았다. 베개에서 머리를 떼는 순간, 침대는 파도 위의 뗏목처럼 요동했고 팔다리는 모래주머니를 찬 것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다.
여느 주말처럼 몇 시간을 더 침대 속에 숨어 있고 싶었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은숙과의 약속대로,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샤워를 마친 민선은 옷장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출근 외에는 외출할 일이 거의 없었기에, 이런 모임에 어떤 옷을 입어야 자연스러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문득,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유정의 옷장이 떠올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을 열어보았다. 하지만 몇 년째 유정에게 옷 한 벌 사준 기억이 없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랐다.
결국 평소 출근할 때 입던 목폴라 니트에 패딩 점퍼를 걸치고, 바지만 청바지로 갈아입은 채 집을 나섰다.
모임이 열리는 시내 교회는 30분쯤 걸어가면 닿을 거리였다. 버스를 탈 수도 있었지만, 처음 가는 자리라는 긴장감 때문인지 걸어가며 생각을 추스르고 싶었다.
겨울바람은 호흡하는 내내 차갑게 목을 스치며 몸 안의 숨까지 얼려버릴 듯했다. 민선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콧물을 닦고, 교회로 향했다.
주일이 아닌 교회는 낯설 만큼 고요했다.
겨울의 찬 기운이 오래된 벽 틈새로 스며들어, 사람의 체취를 잃어버린 공간 전체가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민선의 발걸음이 텅 빈 복도를 울리며 계단을 오르자, 그제야 희미한 말소리와 노란 형광등 불빛이 새어 나왔다.
다과상을 정리하던 은숙은 민선을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달려와, 건물 전체가 반응할 만큼 큰 목소리로 반겼다.
“어머, 자기 왔구나! 춥지? 어떻게 왔어? 진짜 너무 잘 왔다.”
“버스 타고 왔어요.”
민선은 짧게 대답했다.
사실은 걸어왔지만, 은숙의 과한 반응을 굳이 더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낯선 공간 앞에서조차 마음을 정리할 겨를 없이 스스로를 다잡아야 하는 일이 아직은 버거웠다.
은숙의 옆에는 중년의 여자가 말없이 서 있었다.
여자는 은숙이 민선을 반기느라 자신을 소개할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 여긴 듯, 잠시 눈빛을 반짝이며 틈을 기다렸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흐르자, 그녀의 표정에 알 수 없는 소외감이 스멀스멀 번져갔다. 마치 둘 사이에 투명인간처럼 서 있는 자신을 스스로도 우스워하는 듯했다.
결국 그녀는 은숙의 옆구리를 살짝 찔렀고, 그제야 은숙은 민선을 향해 돌아섰다.
“아, 자기. 여기 계신 분은 우리 사모님이셔. 우리 교회 보물이지.”
사모는 굳었던 얼굴을 풀며 민선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가워요. 밖이 많이 춥죠? 안으로 들어오세요, 다과 챙겨가시고요.”
사모는 마치 ‘소개’를 하나의 직무처럼 수행하는 사람 같았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말투, 정해진 각도로 올린 미소, 허리를 숙인 채로도 상대를 재빠르게 훑는 눈동자. 민선은 그 짧은 순간에, 사모의 몸짓이 환대와 판단을 거의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잘 훈련된 영업직처럼 ‘목사의 아내’라는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무엇 하나 날것이 없는, 지나치게 정제된 사모의 태도는 민선에게 오래전부터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종교인 위선’과 자연스레 겹쳐졌다.
그런 사모를 아무 의문 없이 받아들이는 은숙을 바라보며, 민선은 그녀가 얼마나 의심을 모르는 사람인지 새삼 느꼈다.
‘은숙 언니는 늘 조금 들떠 있고, 말도 많고, 때때로 과하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누군가를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 사람.’
그런 점 때문에 민선은 그 곁에 머물 수 있었다.
민선이 유아부 교실 문턱을 조심스레 넘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회원들이 하나둘씩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민선은 가장 뒤편에 앉아, 조용히, 물속에서 수면 위를 바라보듯 사람들의 출입을 지켜보았다.
해장이 덜 된 듯 벌겋게 오른 얼굴들, 외투 단추를 당장이라도 튕겨낼 것처럼 앞으로 굽은 드럼통 같은 배들.
그 몸뚱이들이 아이들을 위해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교실을 지나치자, 이 공간과 그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지 새삼스럽게 느껴졌고, 민선은 그 부조화가 주는 기묘한 우스움에 잠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모임은 흔히들 말하는 집단 치료와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굴러갔다.
대부분의 모임이 둥글게 앉아 차례로 내면을 꺼내놓는 데 비해, 이곳은 내향적인 이들을 배려한다는 명목 아래 학교 교실처럼 책상을 두 줄로 배치했고, 20분마다 짝을 바꿔가며 1:1 대화를 나누는 형식을 취했다. 진행자는 그저 짧은 대화 주제를 던지고, 시간이 되면 종을 치는 것으로 역할을 마쳤다. 그 외의 개입은 없었다.
민선처럼 여럿 앞에 자신을 내보이는 일이 아직은 어색하고 버거운 사람들에게, 이런 방식은 마치 숨을 곳을 마련해주는 듯한 안도감을 주었다.
회원들은 낯선 얼굴과 마주 앉아 서로의 하루를 더듬다가도, 문득 말이 스르르 얹히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모임이 끝난 뒤 조심스레 연락처를 주고받곤 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모임이 끝나면 자연스레 근처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고, ‘치유’라는 이름표는 점점 흐릿해졌다. 모임은 목적과는 다른 쪽으로 서서히 미끄러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모임은 참석자들에게 은근한 안도감을 제공했다.
음주 빈도가 줄지 않아도, 최소한 ‘뭔가 하고는 있다’는 자기 위안이 생겼고, 심 목사에게는 스스로가 만들어낸 공동체 헌신이라는 도덕적 만족감을, 명함 한 귀퉁이에 쓸 수 있는 경력을 얹어주었다. 사모는 일상 이야기를 가장해 모임의 근황을 슬며시 흘려놓으며, 자신과 남편의 헌신을 은근히 드러냈고, 그 말들은 교인들로부터 조용한 존경을 길어 올렸다.
결국 이 모임은 어느 누구도 손해 보지 않는 절묘한 구조물처럼 자리를 잡았고, 각자의 명분을 반들반들하게 닦아주는 장치로 기능했다.
이 방식이 실제로 도움이 되느냐는, 오래전에 중요성을 잃어버린 지점이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문제를 느끼더라도 단독으로 그 장막을 걷어 올린다는 건, 제 무덤을 파는 일과 다르지 않은 무모한 행동처럼 여겨졌다.
모임의 변화는, 회원들이나 목사 부부만이 아니라, 그 조직에 속한 적 없는 다른 한 사람에게도 또렷하게 포착되었다. 세상이 엄마와 윤,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만 이루어져 있던 유정에게, 엄마의 변화는 그 무엇보다 선명했다.
처음 한 달 동안, 유정은 매일같이 놀랐다.
예전에는 소주병이 서로 부딪혀 울리는 소리와 함께 복도를 비틀거리며 들어오던 엄마가, 어느 날부터인가 빈손으로, 혹은 손에 귤 한 봉지씩 들고 집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유정은 그것이 마치 집이라는 오래된 기관차가 마침내 정상 궤도에 다시 올라선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다. 작은 변화였지만, 긴 어둠의 터널 끝에서 비친 빛은 분명 희망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희망은, 엄마의 의지와 함께 조용히 원을 그리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엄마는 어느날에서 부턴가 다시 퇴근길에 술을 사 왔고, 심지어 알코올 중독자 모임에서 돌아오는 길조차 술 냄새를 풍기며 들어왔다.
유정은 이유를 밝히고 싶어 미칠 지경에 이르렀다.
‘대체 그 모임에서는 뭘 하는 걸까. 왜 술을 끊기 위한 모임에 다녀오고서도 취해오는 걸까.’
심지어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의심까지 피어올랐다.
혹시 그곳이 중독자들을 치유하는 곳이 아니라, 전국의 이름난 중독자들만 모아 만든 ‘명예의 전당’이 아닐까 하는 황당한 생각까지.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유정은 하나의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분명했지만, 감정까지 예전처럼 축축하고 어두운 자리로 돌아간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어딘가에서 햇빛 한 줄기가 엄마에게 들고 있었다.
몇 년 동안 철문처럼 걸어 잠갔던 입가에 어느 날부터인가 희미한 웃음이 걸렸고, 유정은 화를 내며 고함칠 때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엄마의 치아를 보았다.
그건 ‘엄마’라는 사람 안에 웃음이라는 것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작고 낯선 발견이었다.
물론 술은 여전히 엄마의 몸을 갉아먹고 있었지만, 그 모임이 엄마의 정서 어딘가에 작은 흔적을 남긴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유정은 그 모임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모임이 엄마를 조금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만큼은, 유정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나마 진정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