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 설명회

로고스와 누벨바그

by 김승예

동아리 설명회가 막을 올렸다.
이미 지원서를 내고 면접까지 마친 학생들은 객석에 앉아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더 고를 필요가 없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느긋함이 배어 있었다.
반면 아직 결정을 못 한 아이들은, 하나라도 놓칠세라 메모지 위에 장단점을 빼곡히 적으며 발표자를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선택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 사실만으로도 표정은 바빠 보였다.


여러 동아리의 발표가 지나고, 마침내 독서 토론 동아리의 차례가 돌아왔다.
유정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참여하지 않는 선택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적어도 자신의 성향을 덜 거스르는 곳을 골라야 했다. 불편함을 없앨 수 없다면, 최소화하는 수밖에 없었다.

회장은 토론 동아리 대표답게 또렷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 단어라도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듯, 음절마다 힘이 들어가 있었다. 목에는 핏대가 서 있었고, 자세는 지나치게 반듯했다.

“1학년 3반 후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2학년 5반의 반장이자, 상실고 유일 독서 토론 동아리 로고스의 14대 회장 김명주입니다.”

소개가 이어질수록, 말은 점점 목적지 하나만을 향해 달려갔다.
서울대 필독서, 생활기록부, 면접 대비.
회장의 언어는 독서를 즐기는 사람의 것이기보다, 효율을 계산하는 사람의 것이었다.
유정은 그 목소리를 듣는 동안, 묘한 피로가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마치 먹고 자는 일조차 목표를 위해 관리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유정은 자신이 로고스에 앉아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토론 시간 내내 입을 열지 못하고, 말없이 책장만 넘기다 끝나는 동아리 활동. 그때마다 동료들의 시선이 ‘왜 이렇게 무성의하냐’고 묻는 장면까지, 생각은 자연스럽게 그다음 장면으로 흘러갔다.

그 상상을 끝내자, 오히려 확신이 들었다. 로고스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확신이었다.
독서 토론 동아리가 사실은 책만 읽는 곳일 거라는, 담임의 말에 기대 품었던 기대가 얼마나 순진했는지도 함께 깨달았다.


유정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댄스 동아리나 친목 동아리 발표 때와 달리, 아이들의 시선은 무대가 아니라 서로를 향해 있었다.
누가 어디를 갈지, 어느 쪽이 더 나은 선택일지, 이미 마음은 다른 곳에서 계산을 시작한 듯했다.

다만 맨 앞자리에 앉은 몇몇 아이들만은 달랐다.
선생님의 질문에 늘 가장 먼저 손을 들던 얼굴들. 안경 너머의 눈빛이 반짝이며, 로고스에서 얻을 수 있는 성과를 조용히 저울질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이 설명회는 공연이 아니라 투자 설명회에 가까워 보였다.

독서 토론 동아리가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유정의 마음 한쪽에 조바심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제는 더 이상 설명회를 멀찍이서 구경하듯 볼 수 없었다. 선택은 다가오고 있었고, 피할 길은 보이지 않았다.

유정은 아직 발표하지 않은 동아리를 떠올렸다.
영화 감상 동아리.
말하지 않아도 괜찮고, 침묵이 무례로 오해받지 않는 곳이기를, 자신처럼 말보다 생각이 먼저 쌓이는 아이들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요새이기를, 유정은 속으로 조용히 바랐다.



영화 감상 동아리의 차례가 되자, 안경을 쓴 남학생이 잠시 교실 문 앞에서 숨을 고르고 안으로 들어왔다. 발을 디딜 때마다 바닥이 너무 크게 울리는 것 같아, 그는 걸음을 줄였다.
키는 컸고, 이마를 덮은 머리칼은 자연스러운 곱슬이 살아 있어 손질한 흔적과 손을 놓은 흔적이 동시에 보였다. 다른 남학생들이 교복 셔츠 차림으로 대충 발표를 넘기는 동안에도, 그는 조끼에 자켓까지 갖춰 입고 있었다. 괜히 더 눈에 띌까 봐 불안해하면서도, 대충 보이고 싶지는 않은 사람의 차림새였다.

손에는 색종이로 꾸민 하드보드지가 들려 있었다. 글씨는 큼직했고, 색의 배치는 조금 들쭉날쭉했다.
유정은 그 판자를 보는 순간, 말보다 준비에 기대는 사람의 마음이 먼저 떠올랐다. 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고, 그래서 다른 방법을 택한 사람. 그 사실이 설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전해졌다.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동아리원을 모으기 위해 준비했을 판자가 너무 성실해서, 오히려 서툴러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긴 다리를 접고 앉아 색종이를 하나하나 붙였을 모습을 떠올리자 웃음에는 이유 모를 따뜻함이 섞였다.


곧 또 다른 남학생이 뒤따라 들어왔다. 앞선 학생보다 한참 작았고, 표정은 비슷하게 굳어 있었다. 그는 말없이 판자를 나누어 들고 옆에 섰다.

둘은 짧게 눈을 마주쳤고, 그 순간 유정은 그들이 꽤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자리에서 혼자 서지 않게 해 주는 사람의 존재 같은 것.

교탁 앞에 선 키 큰 남학생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고서야 입을 열었다.

“아… 안녕하세요. 저희는 상실고 영화 감상 동아리 누벨바그에서 왔습니다.”

목소리는 낮았고, 조심스러웠다. 이미 여러 교실을 돌았을 텐데도,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은 여전히 몸에 익지 않은 듯했다. 유정은 그가 문장 끝마다 숨을 고르는 걸 알아차렸다.

“저는 회장 김현이고요, 옆에 있는 친구는 부회장 임강빈입니다. 누벨바그는 프랑스에서 시작된 영화 운동의 이름으로, 새로운 물결이라는 뜻입니다.”

설명은 차분하게 이어졌다.
매주 영화 감상, 강제 토론 없음, 보고 싶은 영화는 합법적인 경로라면 자유롭게.
현은 ‘마음 편히’라는 말을 할 때 잠시 멈췄다. 그 말이 홍보 문구라기보다는, 스스로에게도 필요한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유정은 그 멈춤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설명회가 끝으로 갈수록 교실은 조금씩 풀어졌다.
이미 결정을 마친 아이들은 발표를 듣지 않았다.

“너 농구 동아리 들어간다며?”
“응. 회장 오빠가 괜찮아.”

잡담이 커질수록 현의 목소리는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누군가는 지원자도 없을 텐데 면접을 본다며 웃었다.
현은 듣지 못한 척 끝까지 말을 마쳤지만, 판자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유정은 괜히 공책에 메모를 했다.
실제로 적을 말은 없었지만, 적어도 보고 있다는 흔적은 남기고 싶었다. 그 마음이 동아리를 향한 관심인지, 발표자를 향한 연민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설명이 끝났을 때, 유정은 비로소 숨을 내쉬었다. 가슴 한쪽에 걸려 있던 것이 조금 느슨해지는 느낌이었다.
독서 토론 동아리에 이어, 영화 감상 동아리마저 맞지 않았다면 자신은 끝내 어디에도 발을 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누벨바그가 영화 감상만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이 좋았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능동적으로 나서지 않아도 되는 자리.
무엇보다 현의 태도가 마음에 남았다. ‘누가 오겠어’라는 생각을 숨기지 못하면서도, 그래도 설명을 포기하지 않는 얼굴. 유정은 그 얼굴에서, 자주 자신이 보는 표정을 발견했다.

유정의 마음은 누벨바그로 이미 기울어있었다.

물론 아직 모르는 것들도 많았다.

다른 부원들은 어떤 사람들일지, 그 공간이 정말로 조용히 머물 수 있는 곳일지.

하지만 불안은 아까보다 분명히 낮아져 있었다.


그날 하교 후, 유정은 윤을 만났다.

“오빠, 나 동아리 꼭 들어야 한대.”

“응. 그래서 골랐어?”

“영화 감상.”

윤은 잠시 유정을 보더니 웃었다.
“그럼 됐네. 네가 제일 덜 괴로운 거잖아.”

유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걱정은 남아 있었지만, 윤의 말은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덜 괴로운 선택이라는 표현이,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유정은 침대에 누워 2학년 7반 교실 앞에서 신청서를 건네는 장면을 떠올렸다.
그 장면이 확정되면, 적어도 이 고민은 끝날 것이다.

유정은 그 생각을 붙잡은 채 잠들었다.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는 그것이 적어도 잠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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