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 첫 날.
보통 수요일은 일주일의 무게가 가장 아래로 쏠리는 날이었다. 월요일의 긴장도, 화요일의 관성도 빠져나간 자리에는 눅진한 피로만 남아, 공기처럼 교실 바닥에 가라앉았다.
그런데 동아리 첫날인 오늘만큼은 달랐다.
아침부터 교실 안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기대가 얇은 막처럼 깔려 있었고, 학생들은 종이 울리기만을 기다리며 책장 위를 미끄러졌다. 칠판에 부딪혀 튀어 오르는 분필 가루마저 성급해 보였다.
유정의 뒷자리에 앉은 학생은 몸을 최대한 웅크린 채 서랍을 열었다. 파우더가 뚜껑을 열 때 나는 마찰음, 립밤이 손바닥에서 한 바퀴 돌아 나오는 둔탁한 감촉. 조심스러운 손놀림이 이어졌다. 동아리 시간에 만날 얼굴들을 의식한 준비였다. 쉬는 시간에 꾸미기엔 부족하니, 만만한 교사가 맡은 수업 시간을 골랐다는 계산이 훤히 보였다.
작게 부딪히는 플라스틱 소리가 유정의 신경을 톡톡 두드렸다. 그 소리마다 어깨가 아주 조금씩 굳었지만, 유정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선생님이 알아채 꾸중하기 전까지, 그 소리는 교실의 배경음처럼 계속될 터였다.
마침내 동아리 시간이 되자 복도는 순식간에 뒤섞였다.
명찰 색이 다른 학생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며 소음이 부풀었다. 웃음과 발소리,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엉겨 붙어, 바닥에서부터 열이 올라왔다. 유정은 현을 다시 보게 된다는 생각에 가슴 한쪽이 아주 살짝 들뜨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빠르게 고개를 든 감정은 불안이었다. 동아리실 안에 어떤 사람들이 있을지, 그들의 눈길이 자신을 어디에 꽂아 둘지. 입안이 바짝 말라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었다. 낯선 공간과 낯선 사람들은 언제나 유정을 한 치쯤 작게 만들었다. 그래서 종이 치기 직전까지 교실에 남아 있다가, 거의 마지막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들의 흐름에서 반 박자 늦게, 2학년 7반 교실로 향했다.
다른 동아리실 앞이 웅성거림으로 부풀어 있는 것과 달리, 누벨바그가 쓰는 교실은 유난히 고요했다.
문을 여는 순간, 시선이 먼저 날아와 유정의 몸에 꽂혔다. 창틀에 기대앉은 파란 명찰의 3학년 남학생들. 그들의 눈은 사람을 보는 눈이 아니라, 무엇이 들어오는지 재는 눈에 가까웠다. 유정을 보는 찰나, 기대가 접히는 소리가 표정에서 났다. “하, 진짜 별거 없네.” 낮게 흘린 말이 공기 중에서 식지 않은 채 남았다. 맞은편 여자 선배들이 그 표정을 훔쳐보더니, 유정을 보고는 상황을 이해했다는 듯 귓속말을 나눴다.
웃음이 공처럼 튀어 올랐다가, 다시 바닥으로 굴렀다. “아, 진짜 웃기지 좀 말라고.” 말보다 먼저 웃음이 유정을 훑고 지나갔다.
교탁 앞에서는 현이 노트북을 만지고 있었다. 파일을 여닫는 손놀림이 느리고 정확했다. 화면이 가장 잘 보이는 앞자리는 3학년들이 차지했고, 그 뒤로 2학년 부원들이 줄을 맞췄다. 자연스럽게 밀려난 1학년 신입들은 화면과 가장 먼 3분단에 모여 앉았다. 유정은 망설임 없이 맨 뒷자리를 골랐다.
노란 명찰을 단 1학년은 유정을 포함해 단 세 명.
누구도 이 동아리에 들어오며 무엇을 꿈꾸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저 다른 선택지들보다 덜 아플 것 같아서, 덜 드러날 것 같아서. 세 사람 모두 고개를 낮춘 채, 선배들의 기세와 교실의 온도를 가늠하고 있었다.
곧 불이 꺼지고, 어둠 속에서 화면이 켜졌다. 첫 상영작은 <400번의 구타>. 흑백의 입자가 교실 벽에 번지며, 현이 이 동아리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고 싶은지 말없이 드러냈다. 스무 분쯤 지나자 처음엔 수다를 떨던 선배들마저 책상에 엎드려 잠들었다. 흑백 화면은 빠른 자극에 길들여진 시선을 오래 붙잡지 못했다. 유정 앞자리에 앉은 1학년 둘은 자리를 좁혀 낮은 목소리로 잡담을 섞었고, 강빈은 밀린 학원 숙제를 꺼내 고개를 숙였다. 영화의 시간은 교실의 시간과 어긋나 있었다.
결국 영화를 제대로 보고 있는 사람은 유정과 현, 둘만 남았다.
유정은 화면을 따라가다 말고, 장면이 바뀔 때마다 대각선 앞에 앉은 현을 훔쳐보았다.
가슴이 이유 없이 빠르게 뛰었다. 심장이 박자를 앞질러 치며, 손끝으로 열이 몰려왔다. 정면은 아니어서 표정이 또렷하진 않았지만, 광대가 부드럽게 솟았다가 내려오는 순간, 귀가 아주 조금 들썩이는 순간이 보였다. 현은 긴 손가락을 입가에 대었다가,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천천히 쓸어 넘겼다. 그 동작 하나하나가 영화의 리듬과 맞물려, 유정의 호흡을 가늘게 만들었다.
교탁 위에 놓인 낡은 DVD 케이스를 보고서야 유정은 깨달았다. 이 영화는 현의 것이었고, 아마 여러 번 본 작품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처음 보는 장면처럼, 다음 컷을 기다리는 얼굴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집중이 유정의 몸에 옮겨붙었다. 등이 의자에 닿은 감각이 흐려지고, 발끝에 힘이 들어갔다.
‘무언가를 저렇게까지 좋아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유정은 자신이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종류의 확신을 떠올렸다. 현이 차곡차곡 쌓아온 취향의 시간들. 그 안으로, 소리 나지 않게 문을 밀고 들어가 같은 장면을 같은 속도로 숨 쉬며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