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과의 만남
현과 만나기로 한 날, 유정은 눈을 뜨자마자 몸을 일으켰다.
무더위에 눌려 깨어나는 대신, 오늘이라는 사실이 먼저 의식을 끌어당겼다.
잠기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심장이 쓸데없이 빨리 뛰었고, 그 리듬이 그대로 몸을 밀어 화장실로 향하게 했다.
샤워기 아래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는 시원했지만, 그보다 먼저 몸속에서 열이 차오르고 있다는 걸 유정은 알고 있었다.
물이 등을 타고 흘러내릴수록 생각은 또렷해졌고, 또렷해질수록 마음은 산만해졌다. 옷을 갈아입는 동안 살갗에는 금세 땀이 맺혀 옷감이 들러붙었다.
평소 같았으면 불쾌했을 그 감각이 오늘은 묘하게 견딜 만했다.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며 유정은 잠깐 멈췄다.
하얀 티셔츠와 연한 청바지.
과하지도, 눈에 띄지도 않는 차림이었지만, 그 선택을 하기까지 마음속에서는 수차례의 망설임이 오갔다. 땀이 도드라질 색을 피하고, 괜히 자신 없어 보일 어두운 색을 제외하고 남은 결과였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옷이라기보다는, 오늘의 자신을 스스로 납득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 같았다.
집을 나서기 전, 유정은 출근한 엄마의 방에 들어갔다.
화장대 위에 놓인 향수병을 집어 들고 잠시 망설이다가, 팔 안쪽에 아주 약하게 뿌렸다. 이전까지는 이해하지 못했던 냄새였다. 자연에도 없는 향으로 자신을 꾸미는 행위가 어색하고 불필요하게 느껴졌었다. 그러나 씻은 몸, 낯선 옷, 그리고 이 향이 겹쳐지자, 유정은 처음으로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건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기보다, 오늘의 자신이 평소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각인시키는 행위였다.
문을 열고 나오자, 정오의 태양이 숨 막히는 열기로 내려앉았다. 아스팔트 위에서 공기가 일그러지고 있었고, 거리는 유난히 비어 있었다.
유정은 캔버스 가방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채 버스를 기다렸다.
그 고요 속에서 들리는 건 심장 소리와, 자꾸만 현을 떠올리는 생각뿐이었다.
학교에서 스치듯 마주치던 얼굴, 메모지에 남겨진 짧은 문장들. 그 모든 것이 오늘이라는 하루 안에서 한꺼번에 몰려왔다. 버스에 오르자, 평소라면 신경을 긁었을 진동마저 오늘은 묘하게 온순하게 느껴졌다.
현과 학교 밖에서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글자로만 이어지던 관계가 실제의 얼굴과 목소리로 바뀌는 순간.
그가 자신을 실망스럽게 여기지는 않을지, 말 한마디 못 붙이고 어색한 침묵만 흐르지는 않을지, 수없이 떠오르는 걱정들이 있었지만, 그 모든 불안을 밀어내는 감정이 있었다.
지금, 당장, 그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영화관에 들어서자 어둑한 조명과 팝콘 냄새가 동시에 밀려왔다.
매표소 너머에서 현이 유정을 발견했다. 손을 흔드는 그의 얼굴은 밝았고, 그 밝음이 유정에게는 너무 직접적으로 닿았다.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머릿속으로 수없이 그려왔던 장면이었지만, 실제로 마주하니 몸이 먼저 굳어버렸다.
유정은 겨우 손을 들어 보이며 응답했다.
교복이 아닌 옷차림의 현은 낯설었다. 얼굴은 분명 익숙한데, 그 얼굴을 둘러싼 맥락이 완전히 달라진 탓이었다. 학교라는 배경이 사라지자 현은 더 현실적인 사람이 되었고, 그 현실감이 유정을 오히려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오는 길 덥지 않았어?”
현은 눈을 오래 마주치지 못한 채 말을 건넸다.
시선이 자꾸 허공으로 흘렀고, 말끝마다 조심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유정은 대답을 하면서도 자신의 목소리가 떨리지 않는지 신경을 곤두세웠다.
현이 주머니에서 꺼낸 영화 티켓은 살짝 구겨져 있었고, 그 사소한 흔적 하나에도 준비의 흔적이 보였다.
“재개봉한 영화야. 내가 좋아하는 영화인데… 이번엔 너랑 보고 싶었어.”
그 말이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유정의 마음속에서는 파문처럼 번졌다.
좌석에 앉자, 유정은 비로소 이 상황이 현실이라는 걸 실감했다.
현은 한 뼘도 안 되는 거리에서 숨 쉬고 있었고, 그 숨의 리듬이 유정에게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혹시라도 팔이 닿을까 봐 몸을 안쪽으로 잔뜩 웅크렸고, 침을 삼키는 소리조차 들킬까 봐 숨을 고르며 입 안의 감각을 억눌렀다.
광고가 흐르는 동안, 유정은 곁눈질로 현을 바라보았다. 스크린의 빛이 안경 렌즈에 반사되어 그의 얼굴 위를 스쳐 갔다.
색이 바뀔 때마다 표정도 미세하게 달라졌고, 유정은 그 변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시선이 마주쳤다.
잠깐의 당황. 그리고 현은 유정의 시선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아무렇지 않게 팝콘 통을 기울였다.
영화관을 나선 유정과 현은 자연스럽게 옆 건물로 발길을 옮겼다.
영화의 여운이 아직 몸에서 빠져나가지도 않았는데, 현은 망설임 없이 유리문을 밀어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서늘한 공기와 종이 냄새가 동시에 밀려들었다.
상실시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서점이었다.
카페와 문구류, 음반과 서적이 한 공간 안에서 느슨하게 섞여 있었고,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로 그 안을 부유하고 있었다. 유정에게 이곳은 시험 기간마다 문제집을 사러 들르던 장소였다. 필요한 것만 집어 들고 곧장 나가던 공간. 이렇게 목적 없이 걷게 될 줄은 몰랐다.
“여기, 내가 자주 오는 곳이야.”
현은 문을 잡은 채 말했다.
마치 자신이 오래 머물던 세계의 입구를 보여주듯 자연스러운 말투였다.
“선배, 책도 좋아해요?”
유정은 조금 늦게 반응했다. 영화를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책까지 이어질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응. 둘 다 좋아해.”
현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덧붙였다.
“도서관도 그렇고, 이런 데도 그렇고… 그냥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
그 말은 설명이라기보다 고백에 가까웠다. 유정은 그 ‘편해진다’는 말이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둘은 문구 코너를 지나 음반 코너로 향했다. 가수들의 얼굴이 크게 인쇄된 앨범들이 입구를 장악하고 있었고, 또래 학생들이 들떠서 그것을 집어 들고 있었다. 유정은 그 광경을 몇 번이나 스쳐 보았지만, 한 번도 안으로 들어온 적은 없었다. 늘 유리창 너머의 세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현은 그 화려한 가판대를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지나쳤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이 거의 닿지 않는 구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 작게 마련된 영화 DVD 코너가 있었다.
도서관 서가처럼 빽빽하게 꽂힌 케이스들.
몇몇은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고, 눈높이보다 한참 아래,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낮은 칸에는 오래된 서양 고전 영화들이 값표를 달고 조용히 진열되어 있었다.
현에게서 빌려 받았던 DVD들이, 유정 자신도 무심코 지나치던 바로 이곳에서 오고있었다.
“여기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지?”
현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남에게 들키지 않던 비밀을 공유할 때의 얼굴이었다.
“선배는 어쩌다 DVD를 모으게 된 거예요?”
유정은 그 표정을 놓치지 않고 물었다.
현은 잠시 고개를 기울였다. 생각을 고르는 사람처럼.
“어릴 때부터였어. 꼭 영화가 아니라도… 이야기 자체가 좋았어.”
말은 담담했지만, 그 사이에는 오래 묵혀둔 진심이 배어 있었다.
“보다 보면, 그냥 보고 끝내기엔 아까운 이야기들이 있잖아. 그래서 처음엔 영화관 티켓을 모았어. 근데 그건 결국 종이더라. 바래고, 남는 건 봤다는 흔적뿐이고.”
현은 DVD 케이스 하나를 손끝으로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래서 이야기를, 영화 그 자체를 갖고 싶어졌어.”
잠시 숨을 고른 뒤, 그는 덧붙였다.
“그러다 보니까… 이제는 내가 만들고 싶어졌어. 내 이야기를.”
현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카메라로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거. 생각해보면 꽤 매력적이지 않아?”
유정은 그제야 알았다.
자신이 그동안 현을 얼마나 얕게 보고 있었는지.
낭만적인 취향을 가진 선배라고 생각했던 인물은, 지금 이 구석진 공간에서, 세상의 관심 바깥에서 조용히 자신의 세계를 키우고 있었다.
유정은 이 DVD 코너가 좋아졌다.
소비되지 못한 이야기들이 잠들어 있는 연못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연못 속으로 현은 오래전부터 발을 담그고 있었고, 자신은 이제야 그 물결에 발끝을 적신 셈이었다.
한 걸음 물러서서, 유정은 DVD를 고르는 현을 바라보았다.
케이스를 집어 들 때마다 반짝이는 눈빛에는, 언젠가 자신의 영화가 또 다른 누군가의 삶에 닿기를 바라는 소망이 섞여 있었다.
유정은 문득 생각했다.
지금 자신은, 어떤 예술가의 개화 이전을 함께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언젠가 현이 자신의 세계를 되돌아볼 때, 아주 작게라도, 그 기억 속에 자신이 남아 있기를. 세월을 건너 스크린 위에서 숨 쉬는 장면들 사이로, 현의 영화와 함께 살아 있는 자신을 상상하며, 유정은 조용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밖으로 나온 유정과 현은 인공호수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퇴근 시간의 공기가 호수 위에 얇게 내려앉아 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물가를 가로질렀고, 개의 목줄이 느슨하게 흔들리며 주인의 보폭을 따라갔다. 벤치에는 저녁을 급히 끝내고 다시 학원으로 돌아가기 전, 잠시라도 숨을 고르려는 학생들이 몸을 기대고 있었고, 그 옆에서는 부모 손을 잡은 아이들이 붕어에게 사료를 던지며 웃음을 흩뿌렸다.
부레옥잠은 연보라 꽃을 피운 채 저녁 햇살을 받아내다가, 하나둘 켜지는 가로등 불빛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빛이 물 위에 내려앉자, 그 주변으로 밀잠자리들이 모여들었다. 날갯짓은 가볍고, 그만큼 쉽게 흩어질 것처럼 보였다.
유정과 현은 그 사람들 사이에 섞여 걸음을 늦추었다.
작별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사람들처럼, 애꿎은 풍경에 시선을 두며 시간을 늘였다. 나란히 걷는 것이 처음이라 처음엔 필요 이상으로 벌어졌던 간격도, 어느새 이유 없이 줄어들어 어깨가 이따금 스쳤다. 스칠 때마다 유정은 숨을 들이켰다가 조금 늦게 내쉬었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걷고 싶었지만, 몸은 매번 반 박자씩 어긋났다.
말없이 이어지던 정적을 먼저 깬 건 유정이었다.
이 시간이 혹시 현에게는 부담이 아닐지, 자신 때문에 억지로 늘어진 건 아닐지, 그런 생각이 가슴을 조용히 눌렀다. 유정은 그 감정을 삼키듯 입을 열었다.
“그럼… 저희…”
하지만 말을 다 잇기도 전에 현이 반응했다.
유정이 집에 가고 싶어 한다고, 더는 붙잡히고 싶지 않다고 오해한 얼굴이었다. 현은 유정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듯 자연스럽게 말을 가로챘다.
“그래. 슬슬 가자. 시간도 꽤 됐네.”
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할 틈은 있었지만, 붙잡고 싶은 마음이 들킨다면 오히려 더 초라해질 것 같았다. 현은 메고 있던 가방에서 DVD가 든 비닐봉지를 꺼내 유정에게 건넸고, 유정도 다 보고 온 DVD를 조심스레 내밀었다. 학교에서처럼 ‘다음 주 수요일’이라는 기약이 없는 교환이었다. 손이 스치는 순간, 둘은 동시에 힘을 빼며 물건을 놓았다.
정류장으로 향하던 길, 유정은 가방에서 DVD 케이스를 꺼내 조심스럽게 열었다.
안에는 포도 맛 풍선껌과 함께 작은 쪽지가 들어 있었다.
‘너만 괜찮으면 다음 주에도 만나자.’
짧은 문장이었지만, 유정은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유정은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애써 삼키며 버스에 올랐다.
창밖으로 호수의 불빛이 멀어졌고, 사람들의 얼굴은 어둠 속에서 빠르게 흘러갔다. 하지만 끝내 울음을 눌러두지 못했다.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 벨을 누르고 내렸다. 집까지는 아직 한참이 남아 있었다.
유정은 열 개가 넘는 정류장을 걸어가며, 왜 이렇게 완벽한 하루의 끝에서 슬퍼지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행복은 늘 이렇게,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가 자신의 삶을 스치고 지나갔다. 기구함에 익숙한 삶은 기쁨을 오래 붙잡는 법을 알지 못했고, 그 끝에 반드시 따라올 상실을 먼저 떠올리며 스스로를 움츠렸다. 아직 사라지지도 않은 순간을, 이미 잃어버린 것처럼 애도하고 있었다.
문득 유정은, 성공한 영화감독이 된 현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곁이 아닌,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그의 이름이 적힌 포스터를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을. 꿈이 달콤할수록, 깨어났을 때의 현실은 더 쓰게 남을 것이다.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유정은 애초부터 기대의 크기를 줄이려 했다. 다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처가 올 자리를 미리 비워두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