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의 울음
유정과 민선이 공유하던 견고한 일상에 처음으로 금이 간 것은, 유정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어느 주말 오후였다.
늦은 점심을 먹고 있던 참이었다. 밥상 위에는 아직 김이 남아 있었고, 텔레비전에서는 의미 없이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은숙 이모였다.
“유정아, 저기… 얼른 슈퍼로 와서 느이 엄마 좀 데리고 가라. 아우, 내가 못 살아 정말.”
수화기 너머로 괴성이 섞인 울음과 함께, 무언가가 가판대에서 쏟아지는 둔탁한 소리가 겹쳐 들려왔다. 엄마의 목소리라는 걸 인식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유정은 숟가락을 든 채 그대로 굳었다. 밥을 씹고 있던 턱이 멈췄고, 입 안에 남은 음식이 갑자기 이물처럼 느껴졌다.
“네… 이모.”
대답은 겨우 소리의 형태를 갖췄다. 유정은 숟가락을 밥 위에 꽂아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기운이 아직 남은 옷을 갈아입을 틈도 없었다. 외투를 걸치며 단추를 채우는 손이 자꾸 엇나갔다. 현관문을 나서면서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감히 상상하려 들지 않았다. 상상하는 순간,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슈퍼에 도착하자 계산대에 서 있던 직원이 유정을 힐끗 보고는, 아무 말 없이 은숙 이모를 부르러 갔다.
은숙 이모는 라면 코너 앞에 쪼그리고 앉아 바닥에 흩어진 봉지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손을 멈추고 일어나는 동작이 유난히 더뎠다. 이미 한 차례, 아니 여러 차례 상황을 수습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피로가 굳어버린 얼굴 위에, 유정을 보자마자 억지로 미소를 얹었다.
유정은 그 미소가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아차렸다. 곧 마주할 장면 앞에서, 조금이라도 덜 흔들리게 하려는 배려였다.
“어, 유정아. 금방 왔네.”
은숙 이모는 주위를 한번 둘러본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이모 따라와. 설명은… 곧 해 줄 테니까.”
유정은 당장 무슨 일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은숙 이모의 전에 없이 단단한 태도에 입을 다물었다. 말보다 먼저 발걸음이 뒤따랐다.
가게 맨 뒤편, 정육 코너 옆에 붙은 철문 앞에서 은숙 이모는 멈췄다.
문이 열리자, 오래된 옥상에서나 볼 법한 칠이 벗겨진 초록 페인트의 좁은 통로가 드러났다. 냉기와 함께, 울음소리가 밀려 나왔다.
여자의 울음이었다.
통로 끝에서부터 벽을 타고 번지며 울리는 소리. 마치 깊은 우물 속에서 한이 쌓여 올라오는 것처럼, 서늘하고 끈질겼다.
‘엄마다.’
유정은 생각할 틈도 없이 알아차렸다.
은숙 이모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유정을 돌아보았다. 민선의 울음을 들은 유정의 얼굴을 확인하려는 눈빛이었다. 유정은 아무 표정도 짓지 못한 채 서 있었다. 그저 심장이 지나치게 크게 뛰고 있었다.
통로 끝에는 또 하나의 철문이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울음은 더 또렷해졌다. 숨소리까지 섞여 들릴 만큼.
‘저 문 너머에 있구나.’
은숙 이모는 철문 옆에서 한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게… 느이 엄마가 슈퍼에서 일이 좀 있었어. 매장에서 갑자기 울기 시작하는데, 아무리 달래도 안 되더라. 손님들 보이는 데서 그럴 수는 없어서, 창고로 잠깐 옮겨 둔 거야.”
말끝을 흐리며, 은숙 이모는 고개를 숙였다.
“이모도 계속 일해야 해서 옆에 붙어 있을 수만은 없고… 오래 알았지만, 느이 엄마 가족이라고 해봤자 내가 연락할 사람도 너 하나뿐이더라. 집에 데려가서 좀 쉬게 해라. 저러다 진짜 탈진한다.”
은숙 이모가 문을 열어주었지만, 유정은 잠시 망설였다. 문 너머에서 울음이 다시 터져 나왔다.
유정은 숨을 한 번 삼키고,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엄마는 재고 상자에 기대어 주저앉아 있었다.
몸에는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듯 축 늘어져 있었고, 울음은 이제 소리보다는 경련에 가까웠다. 유정이 다가가도 알아채지 못한 채, 시선은 허공 어딘가에 고정돼 있었다. 세상과 단절된 사람처럼.
땀과 눈물에 젖은 머리카락이 엉켜 광대 위에 붙어 있었고, 그 사이로 붉게 부어오른 뺨이 드러나 있었다. 누군가에게 맞은 것처럼 보일 만큼 선명한 자국이었다.
그 상처를 보는 순간, 유정의 몸 안에서 오래된 기억이 되살아났다.
어릴 적, 이유도 모른 채 맞고 난 뒤 얼굴이 얼얼하던 감각. 울음도 허락되지 않던 시간들. 이가 저절로 갈렸다. 분노가 가슴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올랐다.
자신을 수없이 때리던 사람이었는데도, 이렇게 맞은 얼굴을 마주하자 이상하리만치 보호하고 싶은 감정이 먼저 튀어나왔다. 원망과 연민이 뒤엉킨 감정이었다.
엄마는 늘 강한 사람이었다.
남들 눈 밖에 나더라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고, 아빠가 떠났을 때도, 가족에게 외면당했을 때도 끝내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세상과 맞서 싸우는 방식이 서툴 뿐, 약한 적은 없었다.
그런 엄마가 지금, 유정 앞에서 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유정은 이 광경을 만든 사람이 누구든, 반드시 되돌려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그리고 그 다짐은, 자신도 모르게 몸의 방향을 바꾸었다.
유정은 힘이 빠진 엄마의 몸을 끌어안았다.
엄마는 잠시 놀란 듯 움찔했지만, 곧 유정 쪽으로 무게를 기울였다. 가까스로 남은 울음을 토해내듯, 머리가 유정의 가슴에 기대어 왔다. 양팔 안에서 엄마의 몸이 서러움에 겨워 들썩였다.
그 순간, 유정은 깨달았다. 이 포옹이 위로가 아니라, 역할의 교대라는 것을.
유정의 기억이 닿는 한, 엄마와의 첫 포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