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by 김승예

그날 이후로 엄마는 좀처럼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문은 늘 닫혀 있었고, 안쪽에서는 하루의 구분 없이 시간이 흘렀다. 슈퍼 일은 그만두었고,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술을 마셨다. 공교롭게도 엄마가 무너져내린 시점은 집에 종석 아저씨의 발길이 끊긴 때와 겹쳐 있었다.
유정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서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고, 묻는다고 해서 알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다만 이유 없는 붕괴는 없다는 걸, 유정은 너무 일찍부터 배워버린 아이였다. 그래서 그 이별이 엄마를 이렇게 만든 건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해 보았지만, 어디까지나 혼자만의 추측일 뿐이었다. 출구 없는 미로 속을 맴도는 기분은 날이 갈수록 짙어졌다.


엄마가 식사를 거의 하지 않게 되자, 유정은 하루 세 번 밥을 차려 방 앞에 놓아두는 일을 일과처럼 반복했다.
학교에 가는 날이면 급식을 허겁지겁, 10분 만에 삼키듯 먹고 집으로 돌아와 엄마의 밥을 챙겼다. 다시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향하면서도, 문 앞에 놓인 밥상이 그대로 남아 있을까 봐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공들여 차린 밥상은 대개 몇 숟갈만 뜬 채 다시 문 앞에 놓여 있었다. 밥알은 말라붙어 있었고, 국물은 가장자리에 눌어붙은 채 식어갔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온 유정은 그 흔적들을 묵묵히 씻어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소주병을 모아 분리수거를 마치고 나서야, 하루가 끝났다는 실감이 났다.


엄마가 하루하루 말라가는 모습을 떠올리면, 유정은 현 앞에서도 마음 놓고 웃을 수 없었다.
검은 방 안에서 볕처럼 다가왔던 사람이었는데도, 그 앞에서조차 자신은 온전히 밝아질 수 없었다. 유정이 눈에 띄게 침울해졌다는 걸 느꼈는지, 현은 무슨 일이든 말해도 된다며 조심스레 다가왔다.
그럴 때마다 유정은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을 느꼈다. 자신의 변화로 인해 현이 걱정하는 얼굴을 하는 모습이, 마치 지금의 자신이 엄마를 바라보는 얼굴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고3이 되어 바쁜 사람을, 아무것도 모르는 채 생글생글 웃고 있는 그 무결한 얼굴을, 자신의 수렁 속으로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유정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현의 눈빛을 외면하는 일을 반복하며, 자신이 점점 더 투명해지고 있다는 감각만이 남았다.
지난 시간 동안 현에게서 받은 위로는 분명 많았지만, 돌고 돌아 유정의 손에 남은 것은 윤기마저 빠진 공허뿐인 것 같았다.


엄마가 일을 나가지 않은 지 한 달이 넘자, 유정은 집안 형편을 더는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수입 없이 빠져나가기만 하는 돈의 흐름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은숙 이모가 슈퍼에 불러 반찬을 챙겨 주고, 용돈도 쥐여주었기에 당장 굶을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대학에 간 아들을 뒷바라지하는 이모에게 언제까지 기대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엄마는 여전히 방 안에 틀어박힌 채, 밥 한 끼 제대로 먹는 일조차 버거워 보였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유정은 더 미룰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누군가는 움직여야 했다. 그 누군가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금요일 저녁, 은숙 이모에게서 슈퍼에 들러 반찬을 가져가라는 문자가 왔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슈퍼에 들어설 때마다 직원들의 시선이 유정의 발끝을 붙들었다. 엄마가 이곳에서 울고 소리치며 난동을 부렸다는 사실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었고, 유정이 그 여자의 딸이라는 것 또한 비밀이 아니었다. 무심한 척하는 눈빛 뒤에 깔린 연민과 뒷말이, 보이지 않는 화살처럼 살을 파고들었다.
그래도 유정은 고개를 들고 걸었다. 반찬을 받아야 했고, 그보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은숙 이모는 주류 코너에서 재고를 정리하다 말고 유정을 보자, 말없이 직원 휴게실로 데려갔다.
냉장고 문을 열며, 이모는 일부러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말투를 유지했다.

“머리 예쁘게 잘랐네, 딸래미. 이건 유정이 좋아하는 장조림이고, 이건 미나리 생채, 얘는 시금치 무침. 냉장고에 넣었다가 밥이랑 꼭 같이 먹어.”

세 개나 되는 반찬 통을 받아든 유정은 고개를 숙였다.
“이모, 매번 정말 감사합니다.”

은숙 이모는 손사래를 치면서도 얼굴에는 지워지지 않는 근심이 남아 있었다.
“느이 엄마 요즘 밥은 좀 먹니? 걱정돼서 잠도 잘 안 와.”

유정은 애써 웃었다. 이모의 마음이 더 무거워지지 않기를 바랐다.
“제가 하면 잘 안 드시는데요, 그래도 이모가 해 주신 건 잘 드세요. 맛있어서 그런가 봐요.”

사실은 거의 손도 대지 않았다. 하지만 유정은 은숙 이모의 마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 선의가 공중으로 흩어지는 걸 차마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다…”
은숙 이모는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도, 미간을 찌푸렸다.

“유정아, 엄마가 그럴수록 너라도 잘 먹고 건강해야 해. 알았지?”
“네.”
“내가 전화해도 통 받질 않아서… 얼굴이라도 한번 보러갈까 싶다가도, 또 말없이 갔다가 느이 엄마가 싫어할까 봐서. 성격 알잖아.”

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이모… 그날, 엄마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은숙 이모는 잠시 시선을 피했다. 대답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결국 말은 흐려졌다.
“그게… 어른들 얘기라, 유정이가 알면 안 좋아.”

그 한마디에, 유정의 속이 뒤집혔다.
어른들이라는 말 뒤로, 또다시 자신은 밀려났다. 가장 가까이서 상처를 감당하는 사람은 자신인데, 정작 알아야 할 권리만큼은 늘 배제되었다. 보호라는 이름의 침묵이 얼마나 잔인한지, 유정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은숙 이모는 급히 화제를 돌렸다.
“요새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지? 성공해서 엄마 호강시켜 줘야지. 모르는 거 있으면 이모 아들래미 과외 선생으로 붙여 줄게. 남자친구는 있니? 학교에서 인기 많을 것 같은데.”

유정은 이모의 의도를 모르는 척 받아들였다. 진실은 또다시 어른들의 담장 너머로 묻혔다.
그리고 유정은,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로 화제를 옮겼다.

“이모.”
잠깐 눈을 내리깔았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혹시… 슈퍼에 남는 일자리 있어요? 용돈 좀 벌어볼까 해서요.”

은숙 이모의 얼굴에 짧은 침묵이 스쳤다. 곧 안타까움이 묻어난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가, 왜. 이모가 용돈도 주잖아. 풍족하진 않아도… 많이 모자라니.”
말을 잇다 말고, 이모는 스스로 대답을 찾아버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엄마도 누워만 있고 너도 학생인데 모자라지. 어휴, 어쩌면 좋아. 공부하느라 바쁠 시긴데.”

유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변명도, 설명도 필요 없었다.
“알았어.” 은숙 이모가 말했다. “자리가 있나 한번 알아보고 문자 줄게. 근데 슈퍼에 사람을 더 안 구해서, 너무 기대는 하지 말고.”


그날 밤, 은숙 이모에게서 문자가 왔다.
슈퍼에는 당장 빈자리가 없고, 교회에서 아는 사람이 하는 분식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으니 한번 가 보라는 내용이었다.

유정은 휴대전화를 내려다본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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