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과 김밥
다음 날, 토요일 아침.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아침을 거른 유정은 눈을 뜨자마자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아직 덜 깬 머리로 부엌에 서서, 전날과 다를 바 없는 조촐한 밥상을 차렸다. 김이 빠진 밥과 국을 엄마의 방문 앞에 놓고 나서야, 유정은 숨을 한번 고른 뒤 신발을 신었다. 문 너머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오늘도 밥상은 그대로일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분식집은 유정이 다녔던 중학교 맞은편, 아파트 상가 1층에 자리해 있었다. 학교 앞이라는 위치답게 2층, 3층에는 학원 간판들이 층층이 붙어 있었고, 평소라면 하교 시간마다 학생들로 넘쳐났을 자리였다. 리모델링을 해서 내부는 말끔해졌지만, 한쪽 벽에 여전히 걸려 있는 십자가 액자와, 무엇보다도 변함없는 주인아줌마의 얼굴을 보는 순간 유정은 이곳이 예전 그 분식집임을 알아차렸다.
중학생이던 시절, 떡볶이 냄새에 발걸음을 멈추고 저금통에 넣어두려던 오백 원으로 컵 떡볶이를 사 먹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땐 가게가 지금보다 훨씬 좁았고, 서서 먹는 학생들로 늘 북적였다. 유정이 졸업한 사이 장사가 잘됐는지, 옆에 있던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까지 인수해 매장은 두 배로 넓어져 있었다.
유정은 면접 시간보다 십오 분이나 일찍 도착해 있었다. 토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가게는 아직 한산했고, 오히려 그 적막이 유정을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너무 일찍 들어가면 괜히 부담을 주지 않을까 싶어 상가 화장실로 몸을 피했다. 거울 앞에 서서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표정을 가다듬고, 어깨를 펴 보았다. 혹시라도 사장이 자신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을까, 떡볶이를 사 먹던 학생으로 남아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약속된 시간까지 오 분을 남기고, 유정은 화장실을 나와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빨간 두건을 단정히 두른 사장은, 딱딱하게 굳은 떡에 물을 붓고 양념장을 풀어 주걱으로 저으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유정이 조심스레 인사하자, 사장은 힐끗 돌아보며 난처한 얼굴을 지었다.
“우짜노… 음식 드실라카믄 열 시에 다시 오셔야 되겠는데예. 아직 준비가 덜 돼서요.”
“저… 알바 면접 보러 왔어요. 은숙 이모가 말씀드렸다고 하셔서…”
말을 멈추자 사장은 주걱을 내려놓고 유정을 다시 바라보았다. 잠시 후, 기억이 난 듯 손바닥을 마주치며 말했다.
“아, 맞다 맞다. 내가 정신이 없어가. 손님인 줄 알았다. 어여 들어와 앉아라.”
유정이 의자에 앉기도 전에 질문이 쏟아졌다.
“니 몇 살이라 캤더라? 은숙 언니가 말해줬는데 또 잊어뿟네.”
“고등학교 2학년, 열여덟 살이에요.”
유정은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했지만, 무릎 위에서 손가락이 바짝 굳어 있었다.
“알바 해본 적은 있나?”
“아직은 없어요. 그래도 일머리 좋아서 빨리 배울 자신은 있어요.”
조금 과장된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유정은 물러서지 않았다. 사장은 잠시 유정을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데 말도 야무지고, 눈빛이 참하네. 평일 저녁에도 나올 수 있나?”
“네. 야자 안 하기로 했어요. 월요일부터 바로 가능해요.”
그 말에 사장은 부모 된 사람 특유의 걱정이 묻어난 눈으로 유정을 바라보았다.
“공부해야 할 나이 아이가? 야자 빼가 일해도 되겠나. 나중에 갑자기 그만둔다 카면 곤란한데.”
유정은 잠시 숨을 삼켰다. 그리고 결심한 얼굴로 말했다.
“야자 안 해도 원하는 대학 갈 점수는 돼요. 중간에 그만둘 일 없어요.”
사장의 눈썹이 미묘하게 올라갔다. 다소 거만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유정은 물러서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건 진실보다 확신이었다.
잠시 침묵 끝에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라모 됐다. 월요일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나오면 된다. 이름이 뭐라 캤노?”
“이유정이에요.”
“학생은 원래 잘 안 쓰는데, 은숙 언니가 워낙 부탁을 해사서 말이다.”
사장은 스스로를 설득하듯 말을 덧붙이더니, 이내 웃으며 말했다.
“이모라 불러라. 아직 밥 안 묵었제?”
그 말에 유정은 손사래를 치다가도, 사장의 눈빛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김밥이나 괜찮아요.”
사장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김밥을 말기 시작했다. 김 위에 밥을 고루 펴 바르고, 단무지와 시금치, 햄을 차례로 얹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그때, 지하 목욕탕에서 막 올라온 듯한 젊은 여자가 가게로 들어섰다. 목욕 바구니를 식탁 위에 올려놓자마자, 익숙하다는 듯 말을 쏟아냈다.
“언니, 나는 왜 주말이 이렇게 싫을까. 오늘은 진짜 애들 밥 못 해 먹이겠다. 야채 김밥 다섯 줄만 싸줘.”
“얼씨구, 팔자 좋다. 나는 아침마다 장사 준비하느라 허리가 휜다.”
사장은 웃으며 받아쳤다.
그 여자의 한가로운 불평에도, 사장은 능숙하게 웃음을 얹어 응수했다. 이곳이 단순한 분식집이 아니라, 동네 여자들이 잠시 쉬어가는 사랑방이 된 이유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김밥을 다 싼 사장은 유정에게 다가왔다.
“유정이, 맛있게 묵어라. 반찬이랑 장국은 셀프다.”
“감사합니다, 이모.”
사장은 옆에 앉은 여자에게 유정을 소개하듯 말했다.
“알바 하나 뽑았다. 참하지?”
유정이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여자는 관심 없다는 듯 힐끗 보고는 말을 이었다.
“언니, 그 여자 알지? 상실 슈퍼에서 깽판 친 여자.”
그 순간, 유정의 손이 멈췄다.
그 여자가 가리키는 대상이 누구인지, 설명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무슨 일인데?”
사장은 대수롭지 않게 물으며 떡볶이를 저었다.
“아직도 몰라? 동네 사람들 다 아는데. 영주 언니 남편이랑 그 여자랑 바람났잖아. 그래서 영주 언니가 가서 난리 친 거지. 때리고, 물건 집어 던지고.”
말들이 칼날처럼 튀어나왔다.
유정은 목이 조여 오는 감각을 느꼈다. 울음이 올라오지도 않았는데, 숨이 막혔다. 남들은 다 알고 있는 일을, 자신만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가장 아프게 꽂혔다.
김밥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따뜻해야 할 맛은 아무런 감각도 남기지 않았다. 씹고, 삼키는 일만 기계처럼 반복했다.
“잘 먹었습니다.”
유정은 조용히 일어나 말했다.
“월요일에 뵐게요.”
사장은 끝내 아무것도 모른 채 손을 흔들었다.
“그래, 유저이. 월요일에 보제이.”
집에 들어서자, 엄마 방 앞에 밥상이 나와 있었다.
아침에 급히 차려두었던 그대로였다.
밥은 반쯤 퍼져 있었고, 국은 가장자리부터 얇게 막이 져 있었다. 반찬들도 손도 대지 않은 채, 어색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치 그 자리가 식탁이 아니라 제단이라도 되는 것처럼.
유정은 말없이 밥상을 끌어다 싱크대 옆에 두고, 숟가락으로 밥을 긁어 음식물 쓰레기통에 쏟아부었다.
밥알이 봉지 안으로 떨어질 때, 축축한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배 속 어딘가가 뒤틀렸다.
아직 소화되지도 못한 김밥이 갑자기 목 안쪽을 밀어 올렸다.
속이 아니라, 가슴 아래쪽에서부터 무언가가 거꾸로 솟구쳐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유정은 숨을 들이마칠 틈도 없이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변기 가장자리를 붙잡았다.
김밥이 쏟아져 나왔다.
김과 밥, 단무지 조각들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상태로 물 위에 흩어졌다.
위는 텅 비었는데도 구역질은 멈추지 않았고, 식은땀이 등과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렸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끝났다는 신호를 몇 번이나 보내도, 배 안쪽은 계속 경련처럼 수축했다.
유정은 변기 앞에 웅크린 채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숨이 가빠졌다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입안에는 쓴맛이 남았고, 눈앞이 잠시 어두워졌다.
그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저 복도 끝, 굳게 닫힌 방문 너머에 있는 엄마는, 이 소리를 듣고 있을까.
한때는 피해자였고, 지금은 가해자로 불리는 사람.
자신을 때리던 손으로, 누군가에게 맞고 돌아온 얼굴.
그 모든 이름들이 겹쳐진 채, 저 방 안에 누워 있는 사람.
이 구토 소리가, 딸의 몸이 스스로를 밀어내는 이 소리가 문틈을 비집고 들어가 엄마의 귀에 닿고 있다면,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할까.
미안하다고 생각할까. 역겹다고 느낄까.
아니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천장을 보고 있을까.
유정은 대답을 듣지 못할 질문을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그리고 변기 물을 내렸다.
물소리가 화장실을 가득 채우는 동안에도, 닫힌 방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