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과 저수지

엄마의 고백

by 김승예

유정은 알바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땀이 말라붙은 옷자락이 피부에 끈적하게 들러붙었고, 손끝까지 분식집의 기름 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대로 침대에 쓰러지듯 몸을 던지려던 순간, 익숙해야 할 풍경에 미세한 어긋남이 눈에 걸렸다. 굳게 닫혀 벽처럼 서 있어야 할 엄마의 방문이 어정쩡하게 열려 있었다. 방 안에는 아침에 놓아두었던 밥상이 그대로였다. 국그릇과 반찬 그릇은 제자리에 있었고, 숟가락 하나 옮겨진 흔적도 없었다. 식은 밥 위로는 말없는 시간이 내려앉아 있었다.


유정은 잠시 멈칫했다가 스스로를 다독였다. 밖에서 식사 약속이라도 잡혔나 보다. 근거 없는 추측이었지만, 그런 해석이 어깨에 얹힌 피로를 잠시 가볍게 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급히 덧댄 얇은 생각이었다.


침대에 몸을 던지려던 생각을 접고 욕실로 방향을 틀었다. 샤워기를 틀자 뜨거운 물이 하루의 땀과 냄새를 씻어내렸다. 물줄기 아래에서 눈을 감은 유정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엄마가, 이제는 정말 세상으로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깐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가, 배수구로 빠져나갔다.


드라이기의 온기를 빌릴 것도 없이 짧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어 말리고, 현이 빌려준 영화를 틀어놓은 채 침대에 누웠다. 막 야자가 끝났다는 문자가 도착했고, 둘은 익숙한 리듬으로 말을 주고받았다.

“알바 하느라 힘들었지?”
“네. 지금 완전 뻗었어요.”

짧은 답장에는 하루 치 피로가 무심하게 담겨 있었다. 곧 학원에 가야 한다는 현의 메시지를 뒤로한 채, 유정은 늦어지는 답장을 기다리다 스르르 잠들었다. 휴대전화 화면 위에서 흐르던 말들이 끊기고, 방 안은 영화의 잔잔한 대사 아래 조용히 가라앉았다. 안도에 가까운 고요였고, 동시에 너무 쉽게 깨질 것 같은 정적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실수하지 않으려는 손놀림처럼,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또렷이 울렸다. 삑— 짧은 실패음이 두어 번 이어진 뒤, 세 번째 시도에서 문이 열리고 조용히 닫혔다. 실패음 하나하나가 이 집에 들어오기 위해 치러야 하는 의식처럼 느리게 흘렀다. 유정은 잠긴 눈을 반쯤 떠,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벽시계의 야광 시침을 바라보았다. 새벽 세 시 반. 숫자를 되뇌기도 전에 다시 잠의 파도에 휩쓸렸다.

그러나 곧 거실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에 눈이 떠졌다. 문을 살짝 열자 어둠 속에 맺힌 거실의 풍경이 들어왔다. 그 순간 졸음도 짜증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깨어났다는 감각보다 먼저, 위험을 감지하는 본능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텅 빈 거실 한가운데서 엄마는 어둠 속의 얼룩처럼 속살을 하얗게 드러낸 채 서 있었다. 흠뻑 젖어 무게를 잔뜩 머금은 옷을 두 손에 들고 바닥에 내리쳤다. 젖은 천이 철썩 소리를 내며 바닥에 부딪혔다가 반동으로 허공에 떠올랐다. 그때마다 젖은 머리칼도 같은 리듬으로 흔들렸다. 무언가를 쫓는 듯했고, 달래는 듯도 했다. 응어리진 생을 토해내는 행위예술 같기도, 깊이 맺힌 상처를 씻어내려는 퇴마의식 같기도 했다. 거실은 제의의 한복판이 되어 있었다. 이 집의 시간과 기억들이 젖은 옷가지에 맞아 튀어 오르는 듯했다.


유정은 기괴하게 꺾이는 엄마의 신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팔꿈치와 어깨, 척추의 마디들이 인간의 것이 아닌 각도로 뒤틀렸다. 사람의 탈을 쓴 무언가가 억지로 인간의 동작을 흉내 내는 것 같았다. 자신이 저 몸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핏줄도 유대도 그 어떤 연결감도 거기엔 없었다. 닭살이 피부를 찢고 나올 듯 솟았고, 문을 닫으려 했지만 팔은 움직이지 않았다. 몸 전체가 낯선 악몽의 배경처럼 굳어 있었다. 도망치지 못하는 공포가 움직이지 못하는 몸보다 먼저 마음을 마비시켰다.


이건 현실이 아니야. 그냥 꿈이겠지. 스트레스 때문에 가위에 눌린 거야. 문틈에 선 채 눈을 질끈 감았지만, 감은 눈 너머로도 엄마의 움직임은 또렷했다. 바닥을 때리는 소리, 젖은 천의 파열음, 어둠에 흔들리는 윤곽이 잠 속까지 따라올 것처럼 짙게 남았다. 소리들은 이미 유정의 몸 안으로 들어와 잠과 현실의 경계를 지우고 있었다.


눈을 뜨자 검은 벽이 시야를 채웠다. 어느새 침대 위였다.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방 안으로 찬 공기가 스며들었다. 한기가 옷 안까지 파고들어 등줄기를 타고 내려왔다.

엄마였다. 어둠보다 어두워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 턱까지 내려앉은 축축한 머리칼. 말 한마디 없이 들어와 머리카락 끝에서 물방울을 뚝뚝 떨구며 유정을 내려다보았다. 바닥에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밤의 정적 속에서 기묘하게 크게 울렸다. 벽시계의 똑딱임과 그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유정은 숨을 죽였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이 공기 전체가 무너질 것만 같았다.


엄마는 이불 끝을 스치며 유정 맞은편 바닥에 천천히 앉았다. 젖은 맨살이 바닥에 닿자 살갗과 나무가 맞부딪히는 끈적한 소리가 울렸다. 오래된 천이 찢어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엄마가 입을 열자 눅눅한 물 냄새 사이로 술 냄새가 밀려들었다. 유정은 아무 말 없이 그 냄새를 들이마실 수밖에 없었다.

“죽고 싶었지… 죽고 싶었어. 널 낳고, 한순간도 죽음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어.

미워서 정을 주지 않으려 해도, 뭐가 그렇게 좋은지…
나만 보면 생글생글 웃는 네 얼굴.
그걸 볼 때마다… 짓이겨 죽여놓고, 나도 따라 죽고 싶었어.

그래서 새벽녘, 네가 그렇게 좋아하던 할머니 집에 간다고 말하면서
자던 너를 깨워 차에 태웠어.
라디오에선 내가 한때 좋아하던 오래된 팝송이 흘러나왔고,
나는… 춤을 췄지.

피치 못하게 주어진 삶이었지만, 그 끝이 이런 축제처럼 마무리된다면,
전체로 보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을 거라 생각했어.

처음엔 너를 먼저… 보내려 했어.
근데 밤이라 그런지, 새까맣게 죽어 있는 물이 무서웠는지
네가 내 근처에도 안 오더라.
그러면서 계속, 할머니 안 보러 가냐고… 안 가냐고…

그래서 내가 먼저 들어갔지.
물에 몸을 적시고, 장난도 치고, 물장구도 치면서…
괜찮다고. 괜찮다고 했어.
그러니까 너도 물로 내려오더라.
신이 나서, 웃으면서.


그때…
내 옆에 다가온 너의 두 팔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
다른 손으로…
너의 머리를 물에 눌렀어.

물속에서 그 조그만 게 사는 게 뭐라고, 그렇게 지겹게도 숨을 놓지 않더라.
이쯤이면 됐겠지 싶어도, 계속… 계속 숨방울이 올라오는 거야.


그때 생각했지.
얘는… 살아야겠구나.
죽어야 하는 건, 나 하나구나.

몸부림치다 기운이 다 빠진 널 들쳐서 업고 차에 데려다 놓고, 문을 잠갔어.
그리고 나 혼자, 다시 물에 들어갔지.

처음엔 발목, 그다음엔 무릎, 가슴까지 물이 차올랐어.
곧 모든 짐을 내려놓고, 무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그 순간만큼은… 황홀하더라.

발끝이 땅에 겨우 닿을 무렵, 나는 몸을 누였어.
물이 귓가에 차올랐고… 눈을 떴지.

그런데…
차 안에서, 문고리를 연신 잡아당기고
창문을 두드리며 울고 있는 네 얼굴이 보였어.
내 분신 같아서 그토록 밉던 네가…
그때는 마치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가득 안고 있던 어린 나 같았어.

그 애가, 어른이 된 나를 살리려고 고사리손으로 필사적으로 발광을 하고 있었어.


그 순간, 정신이 들었지.
그래서… 물 밖으로 나왔어.

어린 내가, 어른인 나를… 구해줬던 거야.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차를 안 보이는 데 세워두고 그냥 가버릴 걸 그랬어.
살다 보면 언젠간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때는 안 오더라.
그저 고통을 더 오래 지속했을 뿐이야.
지나가리라 믿었지만
그 고통은 늘 거기 있었어.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어.

근데 이젠 그만할래. 이젠 그만…”


유정의 몸 어딘가에서 자동차 모터의 미세한 진동이 전해졌다. 눈을 뜨자 다시 그날의 차 안이었다. 긴 터널 속을 미끄러지듯 달리는 차, 조명이 차창을 스칠 때마다 엄마의 얼굴이 번갈아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 라디오에서는 Moon River가 흘렀고, 엄마는 운전대를 잡지 않은 오른손을 들어 음악에 맞춰 어깨를 들썩였다. 유정도 덩달아 몸을 흔들었다. 세상에 둘만 있는 듯했다.


처음 보는 엄마의 춤사위를 유심히 보다가 앞좌석 등받이에 턱을 괴고 고개를 내밀었다. 엄마의 표정이 궁금했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렀다.

“엄마, 왜 울어?”

엄마는 시선을 앞에 고정한 채 말했다. “좋아하는 노래도 나오고, 유정이가 좋아하는 할머니 만나러 가니까… 기분이 좋아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너무 행복하면 눈물도 난다는 말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차가 밤을 뚫고 도착한 곳은 익숙한 골목도 따뜻한 현관도 아닌, 달빛이 비치는 저수지였다. 차에서 내리자 한기가 스며들고 낯선 물 냄새가 폐 깊숙이 들어왔다. “엄마, 여기 할머니 집 아니잖아.”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자, 엄마는 눈물에 얼룩진 얼굴로 말없이 웃었다. 그리고 차 앞에 우두커니 선 유정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할머니 댁 가기 전에… 우리 먼저 물놀이 하자.”


잠에서 깨어난 유정의 눈가에는 말라붙은 눈물이 소금기처럼 하얗게 들러붙어 있었다. 몽롱한 시야 너머 거실 한가운데에는 물기를 다 털지 못한 옷들이 축 늘어진 채 바닥을 덮고 있었다. 반쯤 열린 방문 틈 사이로 엄마가 벌거벗은 채 침대에 등을 뉘고 있었다. 오른쪽 팔과 다리가 침대 밖으로 무심히 삐져나와 있었다. 정오의 햇빛이 창을 타고 들어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엄마의 몸 위에 내려앉았다.

월, 금 연재
이전 27화갈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