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맞춤

by 김승예

유정은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뒤 침대 위에 몸을 웅크린 채 몇 번이고 뒤척였다.
양팔로 배를 감싸 안은 자세였다.

“아… 아파…”

끊어지듯 새어 나오는 낮은 신음이 방 안에 가라앉았다. 그 소리는 작았지만, 공기 전체를 무겁게 짓누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 일주일 동안 유정은 화장실을 갈 때마다 아래로 떨어지는 핏덩이들을 마주해야 했다. 욕조와 변기 위로 떨어지는 그 어두운 덩어리들은 눈을 피하려 해도 쉽게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유정에게 그것들은 단순한 핏덩이가 아니었다.
마치 이름도 붙이지 못한 아기 몸의 일부가 잘려 나간 것처럼, 메스에 의해 갈라진 어떤 잔해가 겹쳐 보였다.

화장실을 다녀올 때마다 퍼지는 비릿한 냄새는 유정을 냉정하게 현실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 냄새 앞에 설 때마다, 설명하기 어려운 죄책감이 목 안쪽에서 조용히 막혀 올라왔다.

통증은 낮보다 밤에 더 깊어졌다.

잠든 듯하다가도 식은땀에 젖은 채 갑자기 깨어났고, 깨어난 뒤에는 화장실로 가 조용히 울었다.

그 울음은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고, 스스로조차 꺼내 보고 싶지 않은 울음이었다.

그 곁을 지키던 현이 해 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장을 봐 와 미역국을 끓이고, 그릇을 식탁 위에 내려놓은 뒤 억지로라도 몇 숟갈 먹이려 애쓰는 것.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유정은 몇 숟갈 뜨다 말고 젓가락을 내려놓기 일쑤였다.

현은 말없이 그릇을 치우며 고개를 숙였다.
손에 남은 온기를 느끼면서도,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무력감을 조용히 삼켜야 했다.


유정이 혼자 있는 걸 두려워한다는 걸 눈치챈 뒤로, 현의 생활은 조금씩 바뀌었다.

강의 중에서도 출석만 확인하면 되는 대형 수업은 잠깐 얼굴만 비췄다. 그리고는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유정은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오빠, 나간 지 얼마 안 됐잖아요. 왜 벌써 와요?”

현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웃으며 말했다.

“응, 오늘 강의는 온라인으로 들어도 된대.”

익숙한 미소였다.

하지만 같은 일이 몇 번 반복되자, 그 말이 완전히 사실은 아니라는 걸 유정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현이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복부를 에는 통증과 마음속에 남은 빈자리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신록의 계절은 그렇게 짧은 낮잠 속에서 스쳐 간 꿈처럼 지나갔다. 여름이 다가오던 어느 밤, 유정은 다시 악몽에 휩싸였다.

온몸이 땀에 젖은 채 뒤척이며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윤 오빠… 윤 오빠…”

잠결에 들린 그 이름에 현의 심장이 순간 움찔했다. 현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미세하게 떨리는 유정의 몸을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낯선 체온에 유정이 눈을 떴다.

잠깐 당황한 듯 현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곧 숨을 고르듯 눈을 감으며 그의 품 안으로 몸을 말아 넣었다.


그날 이후로 두 사람은 같은 침대에서 잠들기 시작했다.

유정의 잠은 전보다 훨씬 편안해졌다. 악몽도 예전처럼 자주 찾아오지 않았다.

몸 상태가 조금씩 회복되자, 유정은 현이 학교에 간 사이 조용히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밥을 짓고, 빨래를 널고, 창문을 열어 방 안 공기를 바꾸었다.

그 모습을 본 현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유정아, 아직 회복도 덜 됐는데 벌써 이런 집안일 하면 어떡해. 그런 건 다 내가 할게. 넌 그냥 쉬어.”

유정은 잠깐 현을 바라보다가 부드럽게 웃었다.

“집에 혼자 있으면 너무 조용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천천히 말을 덧붙였다.

“제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강의가 없는 날이면 두 사람은 함께 마트에 갔다.

장바구니에 채소와 우유를 담고, 계산대를 지나 나와 학교 근처의 호수 공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물가에 늘어진 버들잎들이 바람에 천천히 흔들렸다. 잎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이 잔잔한 소리를 냈다.

그 버들잎이 드리운 그늘 아래서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꺼내 놓았다.

어쩐지 이대로 밤을 보내기 아쉬운 날이면, 둘은 역 앞 낡은 극장을 찾기도 했다. 관객이라곤 두 사람뿐인 상영관이었다.
심야 영화의 희미한 빛이 스크린에서 번져 나와 어둠 속 두 얼굴을 은은하게 비췄다. 한참 동안 조용히 영화를 보던 유정이 슬쩍 옆을 바라보았다.

구름 너머처럼 어쩐지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고등학생 시절, 누벨바그에서의 하루가 떠올랐다.아직 그날의 10대인 것만 같은 현의 손에 들려 있던 맥주캔이 눈에 들어왔다.

유정은 잠깐 화면을 보는 척하다가, 현이 영화에 집중한 틈을 타 재빨리 캔을 낚아챘다. 그리고 그대로 한 모금을 들이켰다.

차갑고 탄산이 섞인 액체가 목을 타고 내려갔다.

유정은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나도 한번 마셔 보고 싶었어요.”

현은 텅 빈 캔을 받아 들고 놀란 얼굴로 말했다.

“야, 너 아직 성인도 아니잖아.”


영화가 끝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유정은 이미 술기운에 조금 휘청이고 있었다. 침대에 눕히자 눈꺼풀이 반쯤 풀려 있었고, 붉어진 뺨이 조명 아래에서 또렷하게 보였다.

현은 옆에 조심스럽게 누워 말했다.

“유정아, 속 괜찮아? 아직 다 회복도 안 됐는데 그렇게 마시면 어떡해.”

그리고 덧붙였다.

“앞으로는 성인 되고 마셔. 그때는 내가 얼마든지 사 줄게.”

유정은 처음에는 순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듯했다.

하지만 곧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

고개를 휙 돌린 뒤 입꼬리를 올리며 속삭였다.

“쳇.”

그리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미성년자랑 한 침대도 쓰시면서, 뭐 그렇게 도덕적으로 굴어요?”

뜻밖의 말에 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무언가 변명하려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유정이 살짝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조용히, 아주 짧게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닿게 했다.

“여기까지.”

유정은 그렇게 말하고는 입술을 떼어내 바로 몸을 돌렸다. 벽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눈을 감았다. 곧 숨소리가 고르게 이어졌다.

현은 한동안 그대로 누워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들어 자신의 입술을 만져 보았다.

유정이 남기고 간 감촉이 아직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 입맞춤이 취기가 만든 장난이었을까, 아니면 조심스럽게 건넨 어떤 대답이었을까.

현은 밤이 깊도록 그 감정을 생각했다.

입술 끝에 남은 미묘한 온기를 손끝으로 몇 번이고 더듬었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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