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의 거울, 유정
유정과 민선이 사는 집은 작은 원룸이었다. 현관을 빠져나오면 곧장 부엌이고 침대이며 거실이 되는, 경계가 희미한 공간이었다.
문턱 하나를 건너는 것만으로 하루의 시작과 끝이 서로에게 드러났다.
누군가 화장실 불을 켜면 깜깜한 방 안에서 다른 사람의 눈꺼풀이 반짝이고, 씻으러 들어간 사람 때문에 누군가는 문 앞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숨을 죽이려 해도 생활의 모든 동선이 멈추지 않고 서로에게 닿았다.
유정은 민선에게 거울이나 다름 없었고, 민선은 그 앞에서 낡아갔다.
떠나간 사람을 붙잡으려 애쓰던 시간들이 그녀의 이마와 눈가에 골을 남겼다.
젊음을 잃은 얼굴은 매일 아침, 매일 저녁 자신을 마주했고, 떠나간 젊은 얼굴은 딸에게 상을 띠며 다시 드러났다.
화장실에서 몰래 숨죽여 울고 나면 붉어진 눈을 닦고 아무 일 없던 척 거실로 나오지만, 문을 열 때마다 유정의 눈빛은 걸려오는 낙뢰처럼 그녀를 꿰뚫었다.
유정의 표정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냉정했고, 그 시선 속에 민선은 떠나간 남편의 그림자와,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아들의 잔영을 겹쳐 보곤 했다. 그런 기억들이 한꺼번에 올라오면 가슴 속에서는 알 수 없는 울화가 밀려 올라와 목구멍을 채운다.
“너 때문에 내 인생은 망가졌어.” 민선은 소리를 내어 말하면 그것이 이미 오래 전부터 자기 안에 맺혀 있던 핵심이라고 믿었다. “네가 네 오빠를 죽였어. 탯줄로… 네가 조여서.” 목소리는 떨리고, 단어들은 액셀을 밟듯 쏟아져 나왔다. 그녀는 유정을 보며, 그 아이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평생 귀에 맴돌기를 바랐다. 스스로 겪은 모멸보다 더 큰 짐을 유정이 지길 원했다. 그렇게 해야야만,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이 조금이라도 덜 억울할 것이라고 믿었다.
민선은, 모순을 안고 있었다.
머리로는 유정에게 아무 잘못이 없음을 알고 있으나, 마음 한편에서는 그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남편이 떠난 것도, 아들이 죽은 것도 자신의 탓으로 받아들여지는 순간, 그 무게를 온전히 견디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탓해야 했고, 가장 가까운 사람이 언제나 그 표적이 되었다.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함께 남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유정은 모든 슬픔의 화살이 향하는 자리로 옮겨졌다.
그럴 때면 유정은 엄마를 피해, 혼자만의 복도로 숨어들곤 했다.
죽은 쌍둥이 오빠 윤은 그곳 어딘가에 있었다. 긴 복도의 구석에서 윤은 늘 장난스럽게 유정을 반겼다.
늘상 빈말처럼 툭 던지는 그의 성화에 유정은 웃음으로 답하곤 했다. “유정아, 친구도 좀 사귀어. 언제까지 이 오빠만 따라다닐 거야?” 그러면 유정은 아무렇지 않게, 그러나 진심으로 말한다. “친구고 뭐고 다 필요 없어. 난 오빠 하나면 충분해.”
윤은 그 말에 살짝 부끄러워하면서도, 결코 유정을 떠나지 않는 존재로 남는다.
그 대화들은 현실에서 도피가 아니라, 유정이 버티는 방식이었다.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윤의 존재는 그녀를 이상하게도 안정시켰다.
밖에서는 엄마의 비명과 아빠와 오빠의 부재가 산처럼 쌓여 있었지만, 그 복도에서의 말들—장난, 꾸짖음, 다정함—은 유정의 균형을 지탱해 주었다. 사람들은 종종 아이의 웃음과 장난을 ‘사소한 것’이라 치부하지만, 유정에게는 그것이 곧 삶의 기계였다.
어쩌면 그래서, 민선의 분노도 윤을 떠올리게 하는 상처의 말결로, 유정의 작은 세계를 더욱 옭아맬 뿐이었다.
집안의 공기는 늘 끈적했고, 방 한 구석에 쌓인 일상은 조금도 숨 쉴 틈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유정은 그 속에서 조용히 자랐다.
상처와 비난을 견디는 법을 배우고, 누군가의 사랑이 아닌, 누군가의 기억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 배움은 때로는 버티는 힘이 되었고, 때로는 더 깊은 외로움으로 자신을 탄탄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