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상담

유정의 세계

by 김승예

“어머님, 일단 바쁘실 텐데도 연락드린 당일에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드려요.”


“선생님께서 전화로는 도저히 하기 어려운 이야기라고 하셨잖아요. 그럼 제가 직접 오지 않고 무슨 수로 듣겠어요?”

민선의 목소리는 평정을 가장 했으나, 말끝마다 억눌린 날이 묻어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연락드린 날 바로 방문해 주시기란 쉽지 않죠. 유정이는 참 좋겠어요. 어머니께서 자식한테 관심이 많으셔서.”


민선은 차분함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눈길은 담임을 날카롭게 훑었다.

“그나저나, 빈 교실 하나 없는 건가요? 그렇게 민감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 주위 이목이 이 정도라면, 원래 학부모 상담이 다 이렇게 진행되나요?”


담임은 민선의 말에 움찔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부드럽게 더 낮은 목소리로 응수했다.

“그렇죠. 많이 불편하시죠. 저도 어머님께서 바쁘신 줄 알고, 원래는 날짜를 조율하려 했는데요. 다른 날 가능하신지 여쭈었을 때, 어머님께서 오늘 바로 보자고 하셔서... 저로썬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네요.”

담임의 입가엔 자기도 모르게 품에 안은 승리감이 내려앉았다.

학부모의 짜증과 신경질 속에서도 정제된 어조를 유지한 데 대한 자족감, 그 얄팍한 우월감이 은근한 미소의 형태로 번져 있었다.


“...그래서 부르신 이유는 대체 뭔가요?”

사과를 기대한 민선은 담임의 뻔뻔한 태도에 당혹스러워, 잠시 말을 잃었다가 겨우 말을 돌렸다.


“네... 사실은 유정이에게 조금 독특한 버릇이 있어서요.”

말을 꺼낸 담임은, 정작 그 말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고 다시 한번 머뭇거렸다.

그 말투엔 어떤 기대가 깃들어 있었다.

부모라면, 적어도 엄마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

그러니 굳이 말을 다 하지 않아도 될 거라는, 뒷말은 당신이 채워 넣으라는 식의 태도였다.


민선은 숨을 깊이 들이켰다.

마트에서 아침 입고 정리를 마치고, 매니저에게 연차를 쓴다는 핑계까지 대며 이 자리에 온 자신이, 이처럼 요령 없는 교사 앞에서 이야기의 핵심도 듣지 못한 채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게 다가왔다.

피로가, 몸이 아닌 곳에서부터 퍼졌다.

“그래서요. 그게 무어냐고 제가 묻잖아요.”


“아... 어머님께선 전혀 모르셨군요.”

담임이 어색하게 웃었다.

“유정이가... 사실 혼잣말 하는 습관이 있어요. 쉬는 시간에 자주 그러는 모양이에요. 때로는 눈을 뒤집기도 한다는 얘기도 있고요. 저야 직접 본 건 아니지만, 학생 중에 그런 걸 봤다는 학생들이 한둘이 아니여서...”


담임과 엄마가 주고받는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유정의 얼굴에 잿빛이 스쳤다.
머릿속이 하얘지며, 이마에서 목덜미로 뜨거운 기운이 훅 치솟았다.
맞잡은 두 손바닥엔 진득한 땀이 배어 있었고, 손등 위로는 평소엔 보이지 않던 푸른 핏줄이 불거져 올랐다.
유정은 무너져 내리는 의식을 간신히 붙잡은 채, 차가운 의자 위에 자신을 겨우 지탱하고 있었다.

담임의 말이 이어질수록, 유정은 알아버렸다.
그 ‘혼잣말’이, 그 ‘눈을 뒤집는다’는 말이, 다름 아닌 자신이 윤과 대화를 나눌 때의 모습이라는 걸.
오직 윤과 함께 있을 때만 허락되던,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작고 고요한 세계.
그 속에서 유정은 편안했고, 느슨했고, 무엇보다 자유로웠다.
그러나 지금, 그 세계가 누군가의 입을 통해 낯선 단어로 번역되고 있었다.
‘기이하다’, ‘불편하다’, ‘문제다’—
누군가의 말로 오염된 그 단어들이, 유정의 내면을 하나씩 침범했다.

그제야 유정은 떠올렸다.
교실 한구석, 창가에 앉아 있던 자신.
창밖을 보며 웃었을지도 모를 눈빛, 윤에게 무언가를 속삭이듯 입만 움직이던 장면, 흥분한 나머지 눈을 감거나 치켜떴던 짧은 찰나들.
그 모든 순간이 지금, 타인의 입을 거쳐 낯설고 불길한 장면으로 재구성되고 있었다.

유정은 얼굴이 아니라, 존재 전체가 벗겨지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건 단순한 창피함이 아니었다.
윤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이 방 안에서 아무런 이의 없이 합의되고 있다는 사실이, 숨을 막혔다.
자신이 가장 진실했던 시간들이, 타인의 언어 속에서 ‘이상한 버릇’이라는 이름으로 재단되고 있었다.
그때 유정은 처음으로 깨달았다.
진실이 반드시 이해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어떤 세계는,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부정당한다는 것을.



유정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 안엔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상담을 마치고 다시 마트로 출근한 듯했다.

창틀에 덧댄 십자형 프레임 너머로 오후의 햇살이 나른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노랗기도 하고 붉기도 한 그 빛은 유정의 무의식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정체를 알 수 없는 향수를 자극하며 일렁였다.

밤새 고요 속에 가라앉아 있던 먼지들이 빛을 받아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공중에서 조용히 춤을 추었다.

유정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자, 입자들은 놀란 듯 흩어져 허공에서 몸을 뒤틀다가 시야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 흐릿한 사라짐을 말없이 지켜보던 유정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엄마의 화장대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두었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동영상 녹화 버튼을 눌렀다.

카메라가 텅 빈 방을 담기 시작하자, 유정은 곧장 윤을 만나러 나섰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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