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nducter, 차별과 편견은 대체 누가 만드는가?
*본 리뷰는 내용과 결말을 가능한 언급을 피했지만 스포일러가 포함 될 수 있습니다.
결말이 보일 듯한 영화 '더 컨덕터'. 차별, 편견 그리고 어려움을 극복해 자신의 꿈을 성취해가는 단순한 이야기로만 전개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감독의 연출과 전개상 여러 상징을 곳곳에 신경쓴 흔적이 보입니다.
최초의 마에스트라(여성 지휘자)를 꿈꾸는 주인공은 1920년대 편견을 이겨내기 위한 고군분투합니다. 그녀의 노력을 그리는 과정이 생각보다 단순하고 누군가에게 지나치게 저돌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주변을 배려하지 않고 깔보는 오만함도 살짝 보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그녀의 의지를 꺾으려는 주변인과 맞서는 그녀의 성격을 표현하기 위한 설정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본 영화를 보면서 두 가지가 생각났습니다. 첫번째, 어느 혹자가 말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사회적 지위를 위해 2배 노력하고도 1/2배만큼 인정받는다'. 두 번째, '사회적 꿈과 가정, 사랑은 결코 조화를 이룰 수 없는 것인가?'.
생각해보면, 모든 시대와 사회를 막론하고, 남성은 기득권에 준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남성들은 여성을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여성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률이 존재했던 것은 분명하고, 심지어 투표의 자유도 최근에 보장 받았습니다. 법에 따라 평등을 이루었어도 사회적인 편견은 항상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여성의 위치는 밑부분이 어울린다'는 말은 이 시대상을 반영한 대사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한 인물을 통해 여성들이 자신의 사회적인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보여줍니다. 험난한 노력을 통해 어렵게 획득한 지회자 자리는 사회의 편견에 또 부딪히고, 남성 지휘자에 비해 박한 대우를 받습니다.
이는 비단 여성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면서도 막상 장애인-비장애인, 혼혈인-비혼혈인, 지방-수도권 등 어떻게든 편견을 가지고 있고 기를 쓰고 차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능력중심의 사회'를 주장하고도 행동하지 않은 모순적인 존재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여성도 능력있으면 승진할 수 있다'고 하면서 '애는 누가 돌보니?'라고 면접이나 사석에서 묻습니다. 남성들이 육아휴직, 아이 돌보려 일찍 들어간다고 할 때 '아내는 뭐하는데?'라고 묻습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여성이 일을하면 소는 누가 돌보나?', '남자가 설거지 하면 xx 떨어진다'고 말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온라인 댓글이나 익명 블로그에서는 사회적으로 권위 있는 남성이 여성을 성희롱/성폭행하면 '그럴 수도 있지'고 말하는 주변인의 사례와 남성이 부당한 조치를 당하면 '세상은 원래 그래, 참아야지'라고 말하는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본인이 남에게 차별과 편견의 잣대를 들이될 때, 거꾸로 본인이 차별과 편견을 당하면 부당하다고 호소합니다.
영화 중에서 주인공들은 깨닫습니다. 주인공이 사랑과 가정을 선택하면 자연스럽게 그녀의 꿈은 멀어집니다. 슬픈 것은 이 현실이 지금도 우리 사회에 적용됩니다. 현재는 여성들이 그 어느 때보다 잘 교육받은 세대이고, 앞으로 매 세대의 여성들은 지난 세대보다 교육면에서 앞설 것입니다. 하지만, 육아라는 현실을 보면 (어찌 보면 당연히) 남성보다 여성이 앞섭니다. 자녀의 교육과 생존을 위해 자연스럽게 육아를 선택한 순간 더 이상 사회에서 발전할 수 없습니다. 자녀를 키우는 것은 한 개인을 20년-30년 동안 건강, 교육, 사회화 과정을 무보수로 책임지는 일입니다. 이러한 헌신을 우리가 '김여사'로 표현하고 '여자는 집에나 있어야지'고 남성들이 말합니다. 본인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그렇게 말을 못하면서 남에게는 잘도 말하는 것일까요? 여성이 사랑과 가정을 택하면 자연스럽게 사회적인 꿈에서 멀어지는 것이 사실이 근 100년간 바뀐 것이 없습니다 (1920년~2020년).
우리 스스로 자신의 편견을 직접 깨부수어야 할 때가 온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여성 사회인에 대한 편견만큼, 남성에 대한 각종 편견 (가령 남성 보육교사)에 대한 편견을 언제 부술 수 있을까요?
참조: “남자가 큰 꿈을 꿔야지... 무슨 애 보는 일을 하냐” 편견에 우는 보육교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4220882791384)
한편으로 필자는 여성의 사회적 지휘가 앞으로 향상될 수 밖에 없음을 어렴풋이 상상됩니다. 필자의 체험에서 여성이 육아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사회적 성과와 자녀 양육, 가정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책임 질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듭니다. 남성은, 한 가지의 일에만 몰두할 줄 압니다. 필자 또한 똑같습니다. 비교우위인 여성이 결국 자녀 양육을 맡게 되는데, 남성들은 아무렇지 않듯이 여성에게 책임이 전가합니다. 지금까지 남성들은 자신의 무능함을 잘 숨겨왔습니다. 하지만 미래의 사회는 단순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래의 경우는 더 복잡한 사회적 이해관계를 중재하고 조화를 이루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기술융합이 이루어지듯, 다양한 이해관계와 조직들이 서로 융합할 수 있어야하는데, 여러 이해관계자를 골고루 살필줄 아는 멀티 태스킹 (multi-tasking)은 여성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끄러운 가운데 자녀의 울음 목소리를 분간하고, 청소-빨래-설겆이-등하교-학원/과외 일정-회삿일을 동시에 챙길 수 있는 일은 여성만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필자의 경험으로, 여성은 상황을 듣고 판단을 내리는 반면, 남성들은 정리해서 갖고오라고 할 줄만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 힘 세고 오래 일할 수 있는 남성들이 있었기에 조직의 일이 돌아갔는데, 이는 거꾸로 남성들은 훌륭한 '부품'임을 의미합니다. 사고하고 융합하는 능력이 필요한 사회에서 여성은 압도적인 능력을 펼칠 수 있을 것인데, 그런 사회에서 남성들이 설자리가 있을까요? 남성들은 그 동안 만든 '자기만의 사회'에 잘 버텨왔는데, 스스로 진화하지 않으면 여성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내줘야 합니다. 그 과정에 외치는 몇몇 남성들의 '성차별' 발언은 필자에겐 발버둥으로 보여집니다.
사회는 한번에 바뀔 수 없습니다. 준비운동 없이 갑자기 수영장에 들어가면 심장마비가 올 수 있습니다. 갑자기 모든 법과 제도를 바꾸어도 사회적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만 부릅니다. 1900년대에 비해 분명 2000-2020년대는 여성 인권에 작은 발전이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각종 차별이 없는 사회를 위해서 모두의 작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본 영화를 통해 필자는 다음과 같은 주제를 생각해봅니다. 차별이 없는 사회가 올 때 비로소 자유로운 사회가 온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상 설하남의 감상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