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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Jul 06. 2016

일본인에게 '만약에'란

Shanghai #74_히로코를 홀린 만약에와 냐냐냐

일본인 히로코에겐 한국인 친구들이 많다.

한국 음식도 잘 먹고, 한국 문화와 한국 사람들 특징도 잘 안다.
베이징, 상하이에서 8년을 사는 동안 한국인 유학생과 직장인까지 다양한 친구들이 생겼다고 했다.
환경이 그러하니 한국어를 들을 일이 많았다. 그러다가 한국어를 배우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물론 ‘왔다 장보리’와 ‘상속자들’이 큰 계기가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일요일 수업시간.

그녀가 일본에서 직접 사들고 온 '한국어 교재'는 훌륭했다. 이 곳의 흔한 한국어 교재는 (숨 막히게 진지한) 궁서체가 대부분으로, 90년 대적 예문과 생활상이 나온 것들이다. 하지만 그 책은 윤고딕 350 정도 되는 반듯하고 힘 있는 서체로 세련미를 갖추었다. 가르쳐주는 맛이 났다.


가갸거겨를 모르는 그녀지만, 알고 있는 한국어가 몇 개 있었다.
자기야~, 안녕!, 오빠~, 맞아 맞아! 같은 단어다.
드라마에서도, 그녀의 한국인 친구들도 많이 썼을법한 거니까.

그런데 뜬금없이 알고 있는 단어 하나가 있었다.


"만약에"

너네 한글 중에 ‘만약에’라는 단어 있잖아?
어 있지. 그걸 아네?
그게, 그 발음이 너무 웃겨 크크크크

(그녀는 입을 막고 웃을 정도로 빵터졌다)
왜??
(그녀에게 들리는 ‘만약에’의 발음은 [마냐게] 였을것이다)
그게... ‘~냐’는 고양이 말이고, ‘게’는 사무라이 헤어 스타일을 말하는 거거든.

그 두 개가 쌩뚱맞게도 합쳐진 소리 같아.

드라마에서 되게 로맨틱한 상황인데, 그 말이 나와서 혼자 웃었어. 크크크

그녀는 마냐게 마냐게를 서너 번 소리 내어 말하면서 크크크크를 연발했다.


만약에.가 그렇게 웃긴 단어였다니. 순간 복면가왕 클레오파트라의 ‘만약에 말야’를 들려주고 싶었다. 그 슬픈 노래를 들으며 히로코는 고양이 소리를 내는 사무라이를 상상하겠지.


그러고 보니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글이 있었다.

‘내 일본인 친구가 한국어 냐냐냐 말투를 매우 귀엽게 생각한다’는.

어디냐. 일어났냐. 밥 먹었냐. 왔냐. 자냐. 재밌냐. 웃기냐. 뭐하냐. 이런 말들.

“너네 남자들끼리 왜케 귀엽게 말해” 하며 일본인 친구들이 웃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가 생각나 히로코에게 물었다.
너도 '냐냐냐'가 그래?

라고 묻자마자 히로코는 다시 빵 터졌다.
어머 그 말들 너무 귀엽잖아!

한국 남자들끼리 그렇게 말해?


역시 냐냐냐는'모든 일본인들에게 통하는 귀여움'이었나 보다.

한국 남자들끼리 '남자답게' 하는 말투는

현해탄을 넘어 '고양이 말투'로 바뀌어

귀엽고 애교 넘치는 소리가 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함께 탄 지하철에서 헤어지며 히로코에게 말했다.

수업 재밌었냐

또 언제보냐

집에가냐

잘가냐


대답 없는 질문만 가득 날렸지만

나는 그날 '매우 귀여운 사람'이 되었다.


히로코가 상하이 타지 생활에 힘들고 지칠 때

앞으로 이런 문장을 주로 써 줘야겠다.

'괜찮냐? 만약에 시간 되면 나랑 커피 한잔 어떠냐. 좋냐 싫냐"

그런데 계속 질문만 해야는게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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