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nghai #84
이상하게도 버스가 일찍 왔다.
동네 버스 정류장에(만) 도착시간을 알려주는 시스템이 없어 늘 막연하게 기다리는데.
일진이 좋을 예정인지 버스가 바로 딱 왔고.
매번 실버피플이 가득 찬 버스에 마침 빈자리가 많았고.
택시보다 빠른 속도로 버스는 달렸고.
가려던 카페에 좋은 자리가 턱 있었고.
그 카페엔 자리마다 콘센트도 착착 있고.
심지어 인테리어 이뻤고.
기분이 좋아 커피에 쿠키까지 미리 주문하고
노트북 세팅을 했다.
앗. 그런데 노트북 케이블이 콘센트에 안맞네?
왜지.
3분간 쪼그리고 앉아 콘센트와 씨름을 하니
종업원이 달려온다.
아. 종종 꼭다리가 안 맞는 게 있어요.
애플껀 다 맞는데, 삼성껀 왜죠.
라고 나한테 물으면 내가 어찌 아나요.
충전 없이 노트북이 버티는 건 두 시간.
나는 하루 종일 작업할 곳을 원했다고요.라고 외쳐봐도
오늘의 운은 버스 빈 좌석에서 다 닳았나 보다.
두 시간 남짓 후,
노트북이 죽기 직전 다른 카페로 이동해야 했다.
그 건물에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카페,
어둡고 침침하고, 습하고 음진
지하 2층 코스타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 데나 꽂아도 충전이 되는 콘센트에
아무도 내게 신경 쓰지 않는
대기업 카페 시스템이 있으니 오늘만.
뚱한 기분으로 녹차 한잔을 주문하려는데,
귀엽게 생긴 종업원 둘이서 내기를 했는지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는다.
한국인인데요.
어맛. 너무 반가워요. 얘 한국어 공부해요. 하며
훈남이 훈녀를 나한테 떠민다.
그 훈녀는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후
여전히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한국에 공부하러 다시 떠난다는 귀여운 알바생.
심지어 광고 디자이너. 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집도 가깝네.
이런 인연이라니.
우리는 당장 연락처를 주고받았고
다음날 바로 만날 약속을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반가운 존재.
요즘 나에게 중국인 친구가,
그녀에게 한국인 친구가 정말 필요했다.
그렇게 하루의 운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해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오늘,
그녀의 집 근처이자 내가 좋아하는 카페
[Black Bird]에서 우리는 만났다.
잠시 후, 그녀의 남친까지 도착했다.
코스타에서 만났고,
카페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건실한 남친.
만난 지 두 달 됐다니 얼마나 좋을 때인가.
외국에서 외국인과 친구가 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이렇게 쉬운 일이다.
하지만 '운 좋게 만난 친구'가 진정한 친구가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십 대의 그녀는 알까.
오늘 카페로 오면서
한때 한 회사에서 서로의 아픔과 고통을 나누던 친구와
오랜만에 원거리 카톡대화를 했다.
일 년에 한 번도 보기 힘든 친구지만
여전히 서로를 잘 알고
여전히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
그 사이 CD가 되었네.
일이 잘 풀릴 때도, 잘 안 풀릴 때도
네가 가끔 생각나. 아쉬워.
라고 말해주어서 고마웠다.
오늘같이 '새로운' 좋은 친구를 만나도
'오래된' 좋은 친구는
늘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