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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Mar 19. 2016

내 집은 어디인가

Shanghai #42

너는 어디가 집이라고 생각해? 

언젠가 Y에게 물었었다. 한국에서나고 자랐지만, 미국에서 10년 살다가, 뉴질랜드 국적의 남편을 만나, 지금은 중국에서 살고 있는 그녀였다.. 한국일까, 미국일까, 중국일까, 언젠가는 뉴질랜드가 될까, 궁금했다. 그녀의 대답은 간단했다. "내 짐이 있는 곳이 내 집이지." 그런가. 하고 잊고 있었는데, 때때로 그녀의 대답이 떠오르곤 했다. 

정말 그런건가.


나는 제주도에서 태어났지만, 언젠가는 부산사투리를 쓰며 초등학교를 다녔고, 다시 제주도로 내려가 제주도 사투리를 쓰는 청소년이 되었으며, 다 크고 나서는 서울말을 쓰는 성인으로살다가, 작년 이맘때쯤부터 중국어를 쓰고 산다.

그곳의 말을 쓰면, 그곳이 집인걸까. 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추석에 한국에 잠시 돌아가보니나는 서울에서도, 강화에서도, 평촌에서도, 제주에서도 그냥 '서울말을 쓰는 게 편해진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웃기게도 이제 서울에는 물리적인 '내 집'이 없다. 동생 집이 없었다면 ‘에어비앤비’로 '서울의 집'을 얻어야 할 판이다.


다국적인 그녀와는 스케일이 다르지만, 나도 오랜 시간 '이방인'으로살았다. 서울에서 20년을 살면서도 가끔씩, 언제나, '내 집은 어디인가'를 질문해왔다. 정확한 정의를 만들지는 아직까지 못했지만. 평생 이런 기분으로 살아온 기분이다. 아무도 눈치채지는 못하지만, 사실은, 어디에서도, '발이 땅에 찰싹 붙어있지 않고, 1센티쯤 붕떠서 사는 사람' 어디에도 정착되어지지 않는 인간. 


엊그제,십 수일 만에 상하이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었다. 내 슬리퍼가, 내 늘어진 티셔츠가, 내 수건이,그릇이, 책상이, 필통이, 책들이 묵묵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내 집이구나. 중국말을 단기기억상실증처럼 다 까먹었어도 내 짐이있는 내 집에 돌아오니 좋다. 내 집에 돌아와 하룻밤을 잤을 뿐인데 십 수일간 징그럽게 괴롭혔던 헤르페스도, 알레르기성 피부염도, 무거웠던 피로감도 약물 없이 급 호전을보였다. 


'내 집 효과'인가보다. 처음으로, 내 집은 어디인가.에대한 정의를 찾았다기 보다, 

그 질문에서 해방된 기분이 들었다.



이방인이면 어때

유목민이면 어때

뭐면 어때

어디면 어때. 내 짐을 갖다 놓으면 내 집이지.


나는 이제 어디에도 집이 없고 

어디에서도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나보다.


201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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