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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Mar 19. 2016

부부로 산다는 것

Shanghai #43

이사를 하는 날이었다. 

결혼이라는 어색한 일을 치르고 혼자 살던 집에서 '둘이 사는 집'으로 가는 날. 낯선 집에 내 물건이 어지럽게 흩어져있었고 거실 중간 처음 보는 소파에 ‘남친에서 막 남편이 된 사람’이 앉아 있었다. 4년 가까이 사귄 '낯익은 남자'가 한없이 낯선 공간에 앉아있는 장면을, 나는 하릴없이쳐다보았다. 그 낯선 광경이 너무도 낯설어서 낯익은 남자마저도 낯선 사람처럼 보였다. 


갑자기 이 공간에서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낯선 공간에서 저기앉아있는 '남자'랑 계속 살아야 하는 건가? 우울한 표정을 들키기 싫어서 갑자기 친구들을만나러 나갔다. 가장 낯익고 오래된, 고향친구들로.


친구들 앞에서, 나는 조금 울었다. 슬퍼서도, 두려워서도, 아니었다. 새로운 공간에서, 한남자와 평생 살아야 한다는 인생의 명제가 너무 어색했다. 십수년 된 고향친구들을 만나고 와서야 마음이 조금 안정되었다. 나는 돌아와 웃는 표정을 장착하고 짐을정리했다. 남편은 몰랐던 그날이 이야기. 

2008년 9월 27일 경의 감정.


그리고 만 7년이 지났다. 우리는 추석맞이 한국방문 중이었고, 정신 없는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9월 27일이 하루 지난 9월 28일, 우리의 결혼기념일이 이미 지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남편도 나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결혼기념일을 까먹은 남편에게 여느 와이프가 그렇듯 분노의 엉덩이 킥을 날리고 괜찮은 겨울 패딩 하나를 선물 받기로 약속하는 게, 우리의 지난결혼기념일 행사가 되었다.


이제 그렇게 되는 건가. 남자와 한 공간에 사는 게 눈물 날 정도로 낯설었던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결혼기념일을 잊고 사는 사람이 된 건가. 그게 자연스러운 건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동생 부부가 늦은 결혼 기념일 파티를 열어주었다. 특별히 감격적이지도, 특별히 서운하지도 않았다. 케이크가 맛있었고, 동생 남편이 내려준 커피는 더 맛있었고. 다만7이라는 숫자가 신기했다.

                              

 추석 후 상하이로 돌아오면서, 우리는 특별할 것 없는 친숙한 일상으로 동시에 복귀했다. 거실 한쪽에 남편이 아무렇게나 앉아있어도 더 이상 낯설거나 어색하지 않게 된8년째 부부의 일상으로. 가령 이런 장면들.


“뭐하냐.손님 오셨는데 차라도 내오라고. 엉덩이 들어올려야 일어날래..”


얼마 전에 상하이를 방문한 동생이 찍었다. 

이 장면이 매우 자연스러웠다고 했다.


부부로 산다는 건, 결국 그런 거겠지.


201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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