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Studio29 #32
늦은 점심에 도착했는데 작업실이 비어있었다.
K는 오지 않는 날.
Y는 볼일을 보고 오느라 늦는다 했고,
작업실 지킴이 J는 약속이 있어 나갔다.
출근해보니 라벤더가 밖에 나와있네.
겨울이라 내내 작업실 안쪽 창문 곁에서
창문 너머를 바라보고만 있었는데
꽃의 엄마 J가 그들을 탈출시켜 주었나보다.
라벤더 꽃송이들이 해를 향해 고개를 뻗고
햇살을 만끽하고 있었다.
어제까지 꽃다발에 파묻혀있던 꽃송이들이
하나둘 선발되어 디퓨저 병에 꽂혔다.
무리 속에 묻혀있어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하나 하나 고운 것들이었다.
디퓨저 꽃병은 현관 신발장 위에 놓여
친절한 새댁처럼 출근자들를 맞이했다.
작업실로 들어서니 새로온 목련들이 손짓을 한다.
어서와. 이리와. 나를봐.
목련 봉오리에 홀려 성큼 걸어가니
그들에게 빨려들어갈것만 같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
우아하다 못해 숭고한 꽃
죽을때마저도 바람에 흩어지지 않고
바닥에 제 시신을 툭 떨어뜨리는 꽃.
하늘하늘 여리지 않아 좋은 꽃.
꽃이 아니라 나무라서 더 좋은 꽃.
목련을 이렇게 가지째로 살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내집 마당에 목련나무 심는게 인생 꿈인
플로리스트 J와 내 꿈이 같아서 좋다.
덕분에 목련이 피는 광경을
작업실 책상에서 목격할 수 있게 됐다.
오전 꽃시장에서 데려올때까지 봉오리였던 아이가
J가 외출한 사이 스스로 껍질을 깨고
봉오리를 터뜨렸다.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오는 자.는
그게 어떤 존재이든
모두 아름다운 법인가보다.
눈이 내린것도 같고 먼지가 쌓이것도 같은
쑥갓같이 생겼으나 분명 쑥갓은 아닐,
이것이 궁금해서 J에게 물었다.
이름은 백묘국.
백: 하얀
묘: 기묘한
국: 국화
정식 이름은 그렇지만
설국(눈의 국화), 영어로는 더스티(먼지묻은) 밀러.
역시 동양의 이름은
어딘가 좀 더 낭만적이다.
Y는 미모사를 곁에두고 일을 했다.
회사 책상 모니터 앞에 전자파 방지용
다육이 선인장이나 두고 일하던 때와는
확실히 다른 시절에 있다.
우리는.
플로리스트이자 공식 우렁각시인 J가 돌아와
떡볶이 간식을 제안했다.
무엇이든 제안하면 십수분 내로 뚝딱.
딱 하면 딱.
말만 하면 딱.
심지어 맛나게 딱.
J의 떡볶이는 와우. 언제나 그랬듯이
딱. 좋았다.
매콤한 떡볶이가 너무 맛있어서
남은 양념을 버리기 아깝다 했더니
그녀는 뚝딱 국수를 삶았다.
J와 Y는 배가 불러서 젓가락을 내려놓았지만
나는 오히려 숟가락을 꺼내어
국수면을 다 먹고 남은
바닥 양념까지 긁어먹었다.
J는 내 '최근 몸무게의 부정적 변화'에 대한
가장 유력한 용의자다.
우리는 요즘
꽃에 대한 지식을 배우고
맛에 대해 눈을 뜨며
뇌와 신체를 동시에 살찌우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작업실에서 J가 연출하는
꽃향기보다
매콤한 양념 떡볶이 향이
더 매력적이다.
2월 23일.studio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