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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Mar 29. 2017

together29_함께 모여 일한다는 것

The story of Studio29 #40

말하자면 정기회담이다.

하나의 공간에서 시간을 나눠 쓰는 이들이

가끔씩 한 자리에 모여 그간의 이야기들을 나눈다.

오늘 이 밤처럼.


사실 여러 사람들과 작업실을 함께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친구'가 아닌 사람들과는 함께 작업실을 얻기 두렵고,

친구와 함께 작업실을 시작하면

서로가 관계 변화에 대한 갈등을 겪어내야만 한다.


'누군가와 작업실을 공유한다는 것'은

더 이상 사적 관계만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런 뜻이었다. 우리도 몰랐지만.


많은 어려움들이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나름 마음의 준비들도 있었다.

우리의 원칙은 하나였다.

'앞으로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여러 충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을 슬기롭게 해결하자는 의지만 있다면

솔루션은 분명히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상황을 슬기롭게 해결하자는 각자의 의지'인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십수 년 직장에서 '팀 생활'을 해왔던 나는

팀 회의 때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런 의지가 없는지 목격해왔다.


'상황을 보는 이'는 솔루션을 찾을 수 있지만

'자신의 이해에 갇혀있는 이'는

솔루션이 아니라 자기주장의 명분을 찾기 마련이다.


그래서 대화의 스킬이 중요하다.

'이해하기 어려운 남의 사정' 이야기를 듣고도

한 템포 쉬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런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서로를 더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많은 실수를 하게 된다.


친구가 작업실 멤버가 된다는 것은

이미 사적관계에서 공적관계로 넘어갔다는 것이고,

많은 갈등을 겪은 후에야 그것을 깨닫게 된다.


작업실 오픈 세 달째,

몇몇의 소소한 갈등을 겪은 우리에게

'슬기롭게 해결하려는 의지'에 대한

내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늘 좋기만 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우리 꽤 잘 해내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우리는 서로 더 용기를 얻는다.


그렇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작업실을 오픈하고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꽤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각자가 갈등과 문제를 인식하고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가질 수 있다면

함께 작업실을 운영해보는 것만큼

재미있는 경험이 또 없다.

가끔은 학교 잔디밭에 앉아서

볕을 쬐며 수다를 떨던 시간만큼

좋을 때도 많다.


우리에게는

'무엇이든 말해보세요'의 셰프가 있고

'무엇이든 예쁘게 해 줄게요' 장인이 있고

'언제든 도와줄게요' 상하이 현지인이 있고

'그럼 제가 한번 해볼게요' 도전자가 있고

'어떻게든 해결해보자'는 상담사가 있다.


어쩌면 우리 일생에 이런 다이나믹한 경험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갈등도 즐거움도

매 순간이 소중하다.


그런 우리들이

봄이 시작되는 어느 저녁에 한데 모여

'매운 오징어 볶음'을 먹으며

회담을 가졌다.

K가 내온 오징어볶음은 솔직히 말해

우리 엄마의 솜씨보다 좋았다.

엄마들은 '너무 맵지 않게, 짜지 않게 강박증'이 있어서

때로 맛을 놓치고야 마는데

이건 철저히 고객 취향 저격의 오징어 볶음이다.

식사가 끝나고 어김없이 시작되는 커피 내리는 타임.

그라인더에 코를 묻어버리고 싶은

향 좋은 커피를 내리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무알콜 사과 샴페인'을 따면

우리의 대화는 잘 익은 한라봉처럼 달다.


각자의 상황도 이해도

잔금처럼 남아있는 긴장도

이 밤처럼 술술 넘어간다.



3월 24일 @studio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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