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of Studio29 #39
J는 꽃의 이름을 새로 배운다.
베테랑 플로리스트지만
그녀가 아는 건 꽃의 한국식 이름이다.
상하이 꽃시장에 가면 중국어로 꽃을 산다.
그녀는 낯익은 꽃의, 낯설은 새 이름을
꽃가게 사장님에게 묻는다.
그분의 입모양에 집중한다.
입모양은 관찰할 수 있지만
중국인의 성조는 그녀에게 접수되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인들에게
결코 정착될 수 없는 언어의 멜로디)
사장님에게 꽃 이름을 써줄것을 부탁한다.
그러나 그의 필체는 어지럽다.
입모양에서 터져나오는 성조보다 더 어렵다.
두번씩 물어보고는 결국 귀로 기억해둔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서
그 야속한 단어는 그녀가 손에든 꽃잎처럼
아련하게 흩날리다 사라지고 만다.
그래도 그녀는 다시 시장에 가서
다시 사장님을 만나고
다시 그의 입모양을 관찰하며
다시 그의 소리를 귀로 기억한다.
그렇게 다시,를 반복하여
그녀는 여러개의 꽃 이름을 중국어로 알아두었다.
J는 여기서 그렇게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한다.
상하이에서는 오래된 고객님도, 단골 수강생도,
믿을만한 꽃가게 사장님도 없다.
다만 꽃을,
생긴 그대로의 그것을 알고, 느끼고, 다루는
그녀 손끝의 감각만이 유일하게 남아있다.
그것이 살아있는 한
그녀는 이 낯선 도시에서
다시, 모든 것들을 하나씩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오늘도 시장에 다녀왔다.
파란 비닐봉다리 안에
온갖 봄꽃들을 가득 담아왔다.
'라이스 플라워'의 중국 이름은
끝내 기억해내지 못했지만.
꽃정리를 하는 그녀의 손은 빠르고 날카롭다.
입을 앙 다물고 '아오야마 꽃가게 가위'를 쥔 그녀는
일사분란하게 꽃들을 단장시킨다.
숏커트처럼 줄기잎을 잘라낸 꽃들은
시원한 미모를 그제서야 드러낸다.
나는 러블리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파란 비닐봉다리 안에서
덥수룩한 초록 줄기를 달고도
볼이 발갛게 달아오는 봉오리들을
러블리.말고도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친구의 늦은 생일파티가 예정돼있었다.
J에게 그녀를 위한 꽃다발을 주문했다.
촌스러운 파란 비닐봉지에 담겨왔던 그 꽃들이
우아한 외투를 걸치고 생일자의 품에 안겼다.
J의 꽃다발은 친구의 환한 웃음에 어울리는
화사한 선물이 되었다.
꽃은 결국 그것을 받는 주인의 모습을 닮는다.
작업실의 또 다른 멤버 V에게 전해진 꽃은
그녀와 어울리게 시크하다.
나는 이 사진을 찍고
(퇴근 후 자신의 식탁에 놓아둘 꽃을 무심하게 산)
프랑스 싱글 커리어 우먼처럼 보인다고 했다.
꽃이 누군가에게로 가서
어떤 의미가 된다는 것.
어쩌면 J는 꽃의 아름다움을 넘어
그것에 매료된 것일까.
J가 그의 (중국어)이름을 불러주지 못해도
꽃들은 누군가들에게 가서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기를 바란다.
3월 18일 @studio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