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필소녀 Mar 31. 2017

meeting29_어서와 이런 작업실은 처음이지?

The story of Studio29 #42

작업실 또 하나의 즐거움은 미팅이다.

그 옛날 꽃단장하고 나갔던 3:3 미팅 같은 건 아니지만

일적인 미팅에도 설렘이 있다.


카페에서 하는 회의는 사람을 보는 일이지만

작업실에서 하는 회의는 우리의 공간까지

보여주는 일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이야기는,

작업실의 분위기와 느낌으로 증명된다. 

이 공간에 좋은 느낌을 받는 이들은

우리의 일에도 좋은 느낌을 받는다.

가장 좋은 건 이 곳에서의 시간은 온전히 

우리에게 집중된다는 것이다.

물론 회의가 끝난 후 누군가의 음식 솜씨를

맛볼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월요일 점심, P와의 미팅이 예정돼 있었다.

내가 아는 한, 상하이의 지인 중

가장 감각 있고 재능 있는 사람.

서로의 비즈니스에 대한 조언을 듣는 회의였다.

일에 대한 그의 의견도 소중했지만

작업실을 처음으로 보여준다는 생각에

나는 조금 들떴다.

"회의 전에 점심 떡볶이를 준비할게요."

J의 소식에 미팅의 기대감은 증폭되었다.


한 시간쯤 일찍 작업실로 가는 길,

유난히 해가 경쾌하다.

상하이의 명물 '야외 빨래 널기'를 구경하기 좋은 날. 


작업실이 있는 아파트로 들어서자

어김없이 동네 빨래들이 모두 볕을 쬐러 나왔다.

본의 아니게 작업실 이웃집의 침실 취향을 목격.

집 앞마당에서 '고수'를 곱게 키우시는 

웃음 많은 할아버지는 의외로 '된장남'이었나 보다.

P가 점심 볕을 닮은 환한 얼굴로 들어설 즈음

J의 떡볶이와 볶음밥도 완성되었다. 


부드럽고 촉촉한 새우볶음밥에

영혼까지 깨우는 극강의 매운 떡볶이까지.

우리는 눈물 콧물을 훔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P는 마케터이자 컨설턴트, 기획자다.

그런데 책상머리 일에 만족하지 못했던 그는

케이터링을 배웠고, 캔들을 만들며 꽃을 다룬다.

알고 보니 그는 커피까지 배워서 내리는 사람이었다.

그가 내린 커피는 유난히 맛있었다.

원래 남이 타주는 커피가 더 맛있는 법이다.

긴 회의를 마치고 P가 돌아가자

작업실 앞마당에서 티타임도 가졌다.

며칠 전 손뜨개 장인 리 여사님이 떠준 컵받침이 함께했다.

날은 여전히 좋았다.

정원에 나온 김에 좋아하는 나무 캔들의 사진을 찍었다.

이런 내 모습을 늘 재밌어하는 J가 

창문 너머로 나를 찍었다.

죽은 나뭇가지들이, 살아있는 나무 앞에서

새로운 존재로 서 있다. 

무엇이든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남은 시간은 촛불을 켜고 일했다.

길고 긴 직장 생활을 했지만 

단 한 번도 캔들을 켜고 일한 적은 없었다.

나의 일도, 그때의 마음도

그렇게 느긋하지 않았다.

긴 세월, 24시간 '꺼지지 않는' 형광등 불빛 아래서 

나는 눈썹을 휘날리며 일했다.


지금은 캔들의 흔들거리는 불빛 아래서 일한다.

이 불꽃은 한순간도 같은 모습이지 않다.


바람이 불어 한순간 꺼질지도 모르고

내가 스스로 후 불어 꺼버릴 수도 있다.

나의 움직임대로 이 불빛은 요동친다.

형광등 불빛은 한결같은 안정감을 주었지만

캔들의 불빛은 늘 불안하다. 


그런데. 

그 시절의 회사 형광등 스위치와는 달리 

작업실의 캔들은 자꾸만 켜고 싶다. 

가만가만 흔들리면서도 

의연하게 빛을 내는 저 모습을 

계속 보고 싶다.


낯선 나라에서 낯선 일을 한다는 것.

언젠나 꺼질 수도, 스스로 꺼버릴 수도 있는

흔들리는 일들이지만


때론 캔들의 불빛 하나가 

이 시절의 모든 시간들을 따뜻하게 다독인다.




3월 27일 @Studio2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