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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Mar 26. 2018

길 위의 무지개, 상하이 공유 자전거

#이번 생, 또 하나의 로망 

자전거를 이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배웠다. 고향 친구 J와 함께 군산의 선유도에 여행을 갔을 때였다. 조그만 선유도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섬을 구경하는 게 맛이라고 했는데 나는 자전거를 타본 적이 없었다. J는 동네 가게에서 자전거 두 개를 빌렸다. 그리고는 선유도의 작은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데려가 30분 속성으로 내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쳤다. 내가 제법 운동장 몇 바퀴를 돌자, 이제 됐네! 하며 섬을 구경하자고 했다. 학교를 나서자 자전거 선생님은 돌변했다. ‘자신감을 갖고 바퀴를 계속 돌려. 나를 따라와!’를 남기고 그녀는 섬의 해안가를 따라 내달렸다. ‘나는 그녀를 신나게 따라갔다’ 면 좋았겠지만 그럴 리 없다. 수십 킬로미터가 넘는 몸뚱이가 얇은 바퀴 위에 올라갔다고 생각할 때마다 자전거는 신들린 것처럼 비틀거렸다. 일자로 달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섬의 길은 평평한 운동장과는 너무도 달랐다. 앞선 친구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로부터 소외되지 않기 위해 나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페달을 밟았다. 어느 순간 선유도의 높은 지대에서 흔들 다리가 나타났다. 여기서 ‘얇은 바퀴 위에 오른 몸’이라는 자각을 다시 한다면 공황 상태가 될 것이었다. 저 멀리 앞을 바라보며 다문 입술에 힘을 더 주고 페달을 내리밟았다. 그때 흔들 다리를 통과하며 나는 자전거의 초급을 마스터했다. 혼자도 꽤 잘하네? 자전거는 원래 그렇게 배워야 돼. 저 멀리서 나를 기다리던 친구가 눈동자가 풀리고 땀에 흠뻑 젖은 나를 보며 말했다. 야속했지만 맞는 말이다. 그녀는 나를 강하게 가르쳤다. 그렇지만 무엇이든 몸으로 하는 것은 어릴 때 배우는 것이 낫다. 자전거는 배웠지만 그날의 선유도 풍경을, 나는 본 기억이 없다.

상하이 쓰난공관(思南公馆)앞 푸싱종루(复兴中路/south fuxing road)

내가 서서히 풍경을 보기 시작한 것은, 한강에서였다. 자전거 선생님 J와 주말 한강을 찾았다. 녹이 슬고 기어도 없는 자전거를 빌렸다. 그녀는 선유도에서와 마찬가지로 ‘자 이제 달리자!’라는 말을 남긴 채 저 멀리로 사라졌다. 역시 좋은 선생님이다. 처음에는 이어폰도 꽂지 못했다. 주변의 환경들을 살펴야 했고 무엇보다도 나의 어설픈 평형감각에 집중해야 했다. 실력은 조금씩 나아졌다. 이어폰을 꽂아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되었고, 강변의 바람이 머리칼을 스칠 때의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조금 더 지나자 고개를 오른쪽, 왼쪽으로도 돌릴 수 있었다. 생각 같은 것은 집어치우고 이어폰으로 재즈 명곡을 들으며 강변의 바람을 통과하면서 한강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 그때 처음으로 행복의 또 다른 정의를 발견한 것 같았다. 선생님 J가 자전거를 잘 가르쳐준 덕분에 주말 한강의 라이더 흉내를 조금 내볼 수 있었다. 매일매일이 경쟁 피티였고, 키보드를 정신없이 두드리다가 날 새는,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 시절의, 가장 큰 낙이었다.

상하이 신천지(新天地) 황피난루(黄陂南路/south huangpi road)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아침부터 다리가 몹시 저리고 힘이 빠졌다. 오후가 지나고 저녁이 되자 다리 통증은 극심해졌다. 119를 부르고 싶었지만 혼자 있는 터라 그것도 무서웠다. 통증 때문에 정신이 나갔다. 밤새 손톱으로 벽지를 긁었다. 다리가 곧 죽어버릴 것 같았다. 어서 아침이 되어 회사로 가고 싶었다. 회사에 가면 도움을 청할 사람이 있을 테니까. 울면서 택시를 탔다. 곧 회사 절친 G가 도착했다. 그는 큰 병원으로 나를 실어 날랐다.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의사 선생님께 빌었다. 다리가 너무 아파요. 어떻게 좀 해주세요. 척추 디스크였다. 흔히들 생긴다는 4번과 5번 척추 뼈 사이의 추간판 탈출증.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고 했다. 매일 야근하는 직업 때문일 수도 있고, 내 자세 습관 때문일 수도 있고, 유전적으로 척추뼈가 약할 수도 있고, 자전거를 타다가 몇 번 넘어진 것 때문일 수도 있다고. 진통제로 겨우 정신을 차린 내게 선생님은 선고했다. 앞으로 스키, 보드, 오토바이, 자전거 모두 안 타는 게 좋아요. 네? 자전거 못 타나요? 타도 됩니다. 그런데 넘어져서 오시면 수술이에요. 안 넘어질 자신 있으면 타세요.

상하이 프랑스 조계지 쓰난루(思南路/south sinan road)

그때 나는 내 다리로 다시 걸을 수 있다는 것에 오직 감사했기 때문에, 자전거를 못 타는 것에 슬퍼하지 않았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씩 산책하며 다리를 본다. 걷는다는 것을 느낀다. 내 다리로 걷는다는 것이 여전히, 말할 수 없이 감사하다. 벽지를 긁던 고통의 밤은 내게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사실을 각인시켜 주었다. 내 의지대로 내 몸을 쓸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그렇게 자전거 타는 낙은, 탐낼 수 없는 남의 떡을 포기한 심정으로 서서히 잊히는 듯했다.


문제는 상하이에 탐나는 남의 떡이 너무 많다는 데 있다. 중국의 13억 인구 모두가 자전거로 일상을 영유하는데 나만 뚜벅이라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지하철이 매우 편리하게 되어있는 도시지만, 모든 집이 지하철역과 가깝지는 않으니까 여기 사는 많은 친구들은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역까지 나온다. 자전거·전동차 전용 도로도 잘 갖춰져 있고, 상하이는 평지의 도시이므로 타고 달리기도 편하다. 심지어 자전거도 너무 싸! 많은 친구들이 내게 자전거를 권유했지만 나는 여전히 넘어지지 않을 자신이 없으므로 용기를 내지 않는다. 다만 자전거로 달리는 이들을 바라보며 지난 어느 시절 한강변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곱씹어본다. 괜찮아, 어차피 사놓으면 다 짐이야. 타기 귀찮아도 꼭 가지러 가야 하고. 누가 또 훔쳐 가면 어떡해. 그것은 내게 여우의 신 포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상하이 쓰난공관(思南公馆)앞 푸싱종루(复兴中路/south fuxing road)

그래 그것은 분명 신 포도였는데. 작년 어느 날부터 노란색, 오렌지색 예쁜 자전거가 돌아다니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것들은 심지어 단 포도로 변신하여 길거리에 등장했다. 공썅단처(共享单车:공유 자전거)라는 이름으로. 처음 본 노란색 공유 자전거의 이름은 ‘ofo.’ 베이징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의 아이디어였다. 넓은 학교의 수많은 건물들을 돌아다녀야 했던 그는 소유에 대한 모든 단점들을 제거하고 다디단 포도, 공유 자전거 비즈니스를 창업했다. 중국은 이미 ‘공유 경제’ 시장이 꽤 발전한 나라다. 회원 가입 후 일정 보증금을 내고 주변의 오포 자전거를 찾아 잠금장치의 비밀번호를 휴대폰으로 전송받으면 끝. 한 시간에 약 170원. 껌 값의 십 분의 일도 안 되는 가격이다.

오포는 성공적으로 중국 시장에 정착했고, 이후 공유 자전거의 브랜드들이 속속 출현하게 된다. 오포의 뒤를 이어 등장한 오렌지색 자전거의 이름은 ‘Mobike.’ 오포와 비슷한 시스템이지만, 더 가볍고 더 저렴한 ‘Mobike Lite’를 재빨리 내놓으면서 오포의 유력한 경쟁자가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아무 곳에서나, 휴대폰만 있으면 언제든 자전거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정말로 남의 떡이 먹고 싶은 지경이 되었다. 한 번만 타볼게. 자신 없이 조르는 나를 멀더는 언제나 한마디로 제압한다. ‘외국에서 디스크 재발하면 답 없다.’

상하이 신천지(新天地) 후빈루(湖滨路/hubin road)

노란색, 오렌지색 자전거가 도로를 내달리자, 이내 무지개를 완성해야겠다는 듯 하늘색, 초록색 공유 자전거들이 속속 색을 맞추며 뒤를 이었다. 덕분에 시내 도로의 컬러가 무척 밝아졌다. 사람들이 소유하는 자전거는 대부분 막 써도 괜찮은 검정색이니까. 무지개 색 자전거들은 걸어 다니기만 하는 나를 매일 홀리며 저만치 달려간다. 대체 내게 넘어지지 않을 자신감은 언제 생기는 것인가. 자꾸 넘어져 봐야 넘어지지 않는 것 아닌가. 무지개 자전거 타는 맛은 과연 한 번이라도 보게 되는 것일까. 유명한 영국의 자전거 ‘브룩스’를 가진 친구 Y는 그것을 아파트 1층에 묵혀두고 매일 무지개 자전거를 이용한다. 작업실 멤버 중 유일한 자전거 능력자 그녀는 작업실로 출퇴근할 때, 작업실에서 필요한 물건을 급하게 사 와야 할 때, 걷기는 귀찮고 택시로는 아까운 거리를 이동할 때마다 무지개 자전거를 탄다. 그녀에게 물었다. 상하이에서 자전거를 탈 때 언제가 제일 좋아?

상하이 프랑스 조계지 난창루(南昌路/nan chang road)

“음… 언젠가 외국 친구들이랑 저녁 파티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택시가 잡히질 않는 거야. 그때 마침 길가에 공유 자전거가 많아서 모두가 자전거를 탔지. 프랑스 조계지 어느 길이었는데, 조용한 밤이었고, 도로가 텅텅 비어있어서 우리만 달렸거든. 선선하게 바람이 부니까 기분이 너무 좋았어. 그런데 같이 달리던 친구가 갑자기 그러더라고. ‘It’s perfect.’ 정말 그렇게 느꼈어 우리 모두. 그 순간이 나는 정말로 완벽하다고 느껴지더라.”

상하이 프랑스 조계지 우캉루(武康路/wukang road)

나는 잠시 그 고요한 밤의 길을 상상했다. 살면서 종종 꺼내어 곱씹어도 영원히 단물이 빠지지 않을 인생의 한 장면이다. 그 완벽함을 나는 이해할 수 있지만, 영원히 경험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저절로 생길 리 없는 ‘넘어지지 않을 자신감’을 가질 방법이 아직 없다. Y에게 부탁했다. 조만간 공유 자전거를 빌려 학교 운동장 같은 데서 같이 한 번만 타 주면 안 될까. 그래 그러자, 하고 약속을 받아놓으니 신이 났다. 한강변의 풍경도, 완벽했던 그들의 밤 같은 도로도 아닐 테지만 나는 십 년 만에 자전거로 상하이의 어느 길을 달려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오렌지색 라이트(Lite) 자전거를 점찍어 두었다. 

상하이 징안스(静安寺/jing an temple) 앞 안이루(安义路/an yi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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