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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Mar 19. 2018

그는 문을 열어 두었다

혼자만의 방, 혼자가 아닌 방


상하이의 우리 집은 작다. 그렇다고 서울 집이 대단히 컸던 것도 아니어서, 서울보다 렌트비가 두배는 비싼 상하이에 어렵지 않게 적응했다. 다행히 단출한 2인 가족이라 살림이 많지는 않다. 다만 두 명의 구성원도 각자의 공간은 필요하다. 침실 하나, 거실 하나, 욕실과 작은 주방이 있는 ‘원 베드룸’의 작은 집에 살면서, 우리는 나름 현명하게 진화했다. 초등학교 때 오전반/오후반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언젠가부터 거실을 두 타임으로 나눠서 쓴다. 각자의 생체리듬에 맞게 늦은 밤 시간을 좋아하는 나는 새벽반, 아침형 인간인 남편은 아침반이 되었다.   


크지 않은 거실에는 각자의 시간을 즐기기에 필요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 서로의 취향에 맞는 책장과 식탁 겸 작업 테이블, TV와 마주 보는 소파, 주인을 알아보는 AI 스피커, 기타와 요가 매트까지 우리 집의 ‘엔터테인먼트’를 담당하는 모든 것이 그 안에 있다. 거실을 함께 즐기는 시간도 물론 좋지만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 있어서, 우리 부부는 여전히 평화롭게 상생한다고 생각한다. 


11시 신데렐라인 남편이 슬리퍼를 흘리며 침실로 뛰어들어가면 그때부터 거실은 내 차지. 침실의 문을 조용히 닫고, 욕실이 있는 작은 복도를 지나 거실과 연결된 중간문을 하나 더 닫으면 거실은 완벽히 독립된다. 내가 거실에서 소리 내어 책을 읽든, 엉망진창 기타 연습을 하든, 지구를 파괴하는 액션 히어로 무비를 보든 남편의 수면은 평화로울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남편이 혹여 기관차처럼 코를 곤다 해도 거실은 시험기간의 도서관처럼 적막하다. 상하이 생활 3년 내내 매일 밤 새벽 3시까지의 시간을 오롯이 가진 덕에 나는 많은 것을 읽고, 듣고, 보고, 쓸 수 있었다.  


새벽반 또 하나의 장점은, 혼자 편안하게 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함께 사는 이가 내 눈물을 목격하여 밤잠을 설치게 하지 않을 수 있고, 침대에서 몰래 울며 쓸데없이 베개를 적시지 않을 수 있다. 코를 크게 풀 수도 있고, 눈과 코가 벌게진 채 웃기는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 놓고 깔깔대면 순식간에 평정을 찾을 수도 있다. 때로는 누군가의 위로가 슬픔의 강도를 더 부풀리기도 하고, 때로는 곁에 누군가가 있어 슬픔을 바닥까지 긁어 퍼내지 못하기도 하니까. 새벽반의 울음이 필요할 때면, 침실과 거실 사이 두 개의 문이 꼭 닫혀 혼자가 될 때까지 나는 숨을 가만히 참는다.  


겨울이 한창이던 얼마 전, 겨울바람처럼 혹독한 일이 내게 찾아왔다. 오랜 시간 정성과 마음을 쏟은 일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무너지고 있었다. 일 뿐만 아니라 나까지도 무너져가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동안의 시간과 마음이 아까워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 했다. 목구멍이 막히고 잠들지 못하는 밤들이 길어졌지만 어두운 터널에 갇힌 것처럼 허우적거렸다. 그리고 간신히 정신을 차려 불빛을 찾았을 때, 지금껏 들여온 시간과 마음을 내 쪽에서 거두어야 할 때임을 깨달았다. 그런 결정을 어렵게 내린 날이었다. 


집에 돌아와 거실에 앉았다. 옷을 갈아입고 싶지도, 불을 켜고 싶지도, 음악이나 TV를 켜고 싶지도, 말하고 싶지도, 울고 싶지도 않았다. 울음 같은 것으로 들어낼 수 있는 허망함도 아니었다. 가만히 앉아만 있는 나의 상태를 남편은 금세 알아챘다. 나, 그렇게 결정했어.라고 짧게 말하자 그는 잘했어.라고 담담하게 받아주었다. 더 이상 묻지 않아서 고마웠다. 따뜻한 물로 긴 시간 샤워를 했지만 복잡한 감정들은 씻기지 않았다. 오히려 물에 불은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소파에 누워 그대로, 소파가 되고 싶었다. 아무 생각도, 아무 감정도 없는 인간이 되고 싶었다. 오늘은 여기 그냥 누워있을게. 가면서 거실 불 좀 꺼줘. 11시에 침실에 함께 들어가 잠자리를 봐주고 문을 닫아주는 게 매일 밤의 루틴이었지만, 그런 것을 할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남편은 조용히 불을 끄고 침실로 들어갔다. 소파는 이내 바닷속 심연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다. 내 기분을 읽은 것 같은 노래 한 곡을 반복 재생해서 틀었다.  


새벽 두 시쯤이었나, 화장실에 가려고 몸을 일으켰다. 어두운 거실을 지나 복도로 들어서려는데… 어, 중간 문이 열려 있네. 의아해하며 욕실의 불을 켰다. 그런데, 작은 복도와 연결된 침실의 문도 1/3 정도 열려 있었다. 왜 문을 열어 놓았지. 하며 문고리를 잡은 순간, 불 꺼진 침실로부터 먹먹함이 몰려왔다. 일부러 열어 두었구나. 새벽반, 혼자만의 거실에서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내게 오늘만은 혼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구나. 밤새 내가 틀어 놓은 무거운 노래를, 너도 무겁게 들으며 잠들었겠구나. 

 

두 개의 문을 닫고 다시 거실로 돌아오자, 급체한 것처럼 답답게 막혀있던 가슴에서 토하듯 눈물이 쏟아졌다. 최근 내게 벌어진 일들이 때문인지, 어둠 속에서 열려있던 그 문 때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가 옆에서 토닥거려주었다면 차마 토해내지 못했을 서러운 것들이 시원하게 터져 나왔다. 혼자만의 밤이지만 혼자가 아니었던 밤. 열어놓은 문으로 그렇게 말해주었던 밤. 눈이 퉁퉁 부어서 눈알에 피로가 몰려올 때쯤, 오랫동안 떠나 있던 잠이 함께 쏟아졌다. 간만에 긴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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