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의 기억은 어린이때 쌓인다
치엔치엔은 이십 대의 중국어 선생이다. 나는 그녀와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나 함께 운동을 한다. 우리는 바벨이나 스피닝 바이크 수업을 주로 듣기 때문에 운동이 끝나고 나면 늘 허기가 진다. 몸 다이어트에는 관심이 많지만 음식 다이어트에는 관심이 없는 우리는 수업이 끝난 후 자주 헬스장이 있는 쇼핑몰의 푸드코트에 들른다. 우리의 국적이 가장 명백히 드러나는 곳. 그녀와 밥을 먹을 때, 나는 늘 두 나라의 문화 차이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탕을 먹을게. 응 그럼 나는 볶음면을 시킬게. 그렇게 두 개의 메뉴가 테이블 위에 올려지고 난 후에야, 그녀가 주문한 ‘돼지 내장 탕면’(생긴 것으로 보아 그런 듯하다)은 내가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는 걸 알게 된다. 당면과 함께 곱창과 돼지 간 같은 것들이 붉은 기름이 떠 있는 탕 안에 굵직굵직하게 박혀있다. 김이 모락모락 떠오르는 탕의 수면 위에는 거칠게 자른 고수도 담뿍 뿌려져 있다. 저들 재료 중에서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은 탕의 국물을 모두 씻어낸 당면 정도일 것이다. 반면 볶음면은 한결같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거부감이 드는 재료가 하나도 없는 음식. 짭조름한 갈색 양념이 배인 오동통한 면과 단 채소들이 뒤엉켜 입 안으로 호로록 빨려 들어가는 맛.
우리 같이 먹자, 탕도 먹어봐 맛있어! 치엔치엔이 행복한 표정으로 돼지 간과 곱창을 빨간 국물과 함께 떠먹을 때, 나는 말했다. 너는 참 어른 입맛이구나. 나는 아직도 초등학생 입맛인데. 치엔치엔, 사실 나 곱창이나 간을 못 먹어. 고수도 그렇고… 생각해보니 그녀는 늘 어른 입맛이었다. 곱창, 간, 허파, 껍데기, 사골국물, 오리 혓바닥도 잘 먹는다. 아… 그랬구나! 나를 가련히 바라보던 그녀가 물었다. “그런데 어른 입맛이 뭐야?”
아. 어른 입맛이란 건, 어른들이 즐겨먹는 음식을 좋아한다는 거야. 어린이들은 보통 먹지 않는 음식들 말이야. “그런데 어른들이 즐겨먹는 음식이 따로 있어?”라고 그녀가 묻자 대답을 생각하다가 순간 그 말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이 즐겨먹는 음식을 왜 어릴 때는 먹지 않는가. 우리가 어른 입맛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어린이들은 먹어서는 안 되는 것들인가. 하는 의문이 그제야 들었다. 돼지 내장이나 간 같은 걸 왜 어른들만 즐겨먹어? 치엔치엔이 또다시 물었을 때, 나는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해 오히려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다.
아… 우리는, 어릴 때 먹지 못하는 음식이 많은데, 어른이 되고 술도 마실 수 있게 되면서 ‘어른 음식’을 먹게 되는 것 같아. 내가 어릴 때는 돼지나 소의 내장이나 닭발, 오리 혓바닥 같은 것은 먹을 기회도 없었고, 엄마가 그런 걸 만들어준 적도 없었거든. 어른이 되어서 갑자기 그런 음식을 먹으려고 하니까 입에 맞지 않더라고. 술을 잘 못 마시니까 안주로 먹을 기회도 없고 말이야. 뭐든지 어릴 때부터 먹어야 어른이 되어서 까지 잘 먹을 수 있는 것 같아.
치엔치엔은 그렇구나.라고 말하면서도, 왜 자신이 즐겨먹는 음식이 ‘어른의 음식’인지는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에게 돼지 내장탕은 나에게는 만둣국 같은 평범한 음식일 뿐인데. 그럼 너는 어릴 때부터 곱창, 간 같은 걸 다 먹었어?라고 내가 묻자, 응. 하고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누군가 나에게 ‘너는 설마 어릴 때부터 치킨을 먹었어?’라고 물으면 내가 지었을 표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상하이의 다른 친구 베로니카도, 샤오밍도, 메리도 제시도 모두 ‘어른 입맛’이었고, 사실 그것은 내 기준에서만 어른 입맛이었다. 그들 모두는 어릴 때부터 그 모든 음식을 먹기 시작했을 것이다.
‘어른 입맛’이라는 말, 참 재밌다. 고 치엔치엔이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내심 억울하기도 하다. 식재료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는 어릴 적부터 돼지 곱창 같은 것을 한입 먹여주고 이건 맛있는 거야.라고 모두가 이야기해주었더라면, 혹시 나는 곱창의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어릴 때부터 닭발을 쪽쪽 빨면서 자랐다면 지금쯤 그녀와 셀 수도 없이 많은 종류의 중국 음식을 감탄하면서 함께 먹을 수 있었을까.
언젠가 TV 프로그램에서 ‘곤충이 미래의 식량이 될 수 있는가’라는 화두가 나왔을 때, 황교익 님이 했던 대답이 기억났다. 우리 세대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기억 속에 곤충은 식재료로써 자리잡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부터 엄마들이 자신의 어린아이에게 곤충으로 만든 음식을 먹여주고 ‘이건 맛있는 거야’라고 말해주면 지금의 어린 세대들은 가능할 것이다. 라던 말. ‘맛있다’라는 개념은 세뇌 같은 것이다. 어떤 맛을 어릴 때부터 ‘맛있다’로 입력해 놓으면 그것은 어른이 되어서 까지 맛있는 음식이 된다. 내게는 어릴 적 ‘어른 음식’에 대한 어떤 기억도 없으니 이제 와서 그것들이 느닷없이 맛있어질 리는 없다.
나는 여전히 치엔치엔이나 내 외국인 친구들이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아이 입맛’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이 다양한 식재료의 음식을 먹을 때마다 경이로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어쩌면 나보다 인생의 더 많은 즐거움을 맛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음식으로 더 많은 세계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태어난 조카 생각이 났다. ‘나는 이미 늦었지만 너는 입맛의 경계 없는 인생을 살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부지런히, 더 많은 식재료에 ‘맛있다’를 배우기를 바란다. 행복한 맛의 기억이 겹겹이 쌓이길 바란다’. 내 앞에 앉아 돼지 간을 맛있게 먹는 치엔치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