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필소녀 Jul 03. 2018

송중기도 자신의 이름을 모른다

중국어와 한국어의 고유명사 표기에 대하여

처음으로 중국어 강좌 팟캐스트를 들었다. 중국인인 듯한 선생님이 서툰 한국어로 인사를 하며 시작되었다. 사실 처음 상하이에 와서 지금까지는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중국인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다. 그들은 '니하오'를 배우는 초급과정은 영어로 가르쳐주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설명마저도 중국어로 바꿨다. 내 얄팍한 중국어 실력으로 문법 설명을 듣고 있자니 귀가 답답해져서, 가끔은 누가 시원하게 한국말로 해주면 좋겠다고 상상하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팟캐스트 수업은 귀가 뻥 뚫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수업은 ‘너는 어떤 영화를 좋아하니?’ 같은 초급 회화였다. 예문이 등장했다. 선생님이 ‘저는 송강호 주연의 「변호인」을 좋아합니다.’를 중국어로 말하는데, 갑자기 송강호의 이름이 ‘쏭캉하오’로 바뀐다. 송강호의 중국 병음 표기식 발음이다. 나는 언제부턴가 이 문제에 대해서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왜 송강호를 송강호라 부르지 않고 쏭캉하오라고 부를까. 이름이란 '고유 명사'인데 고유하게 불려야 할 자신의 이름이 왜 본인도 알아듣지 못할 소리로 바뀌는가. 같은 한자를 쓴다는 이유만으로 송강호는 왜 순식간에 쏭캉하오가 되어야 하는가. 나는 왜 이곳에서 수연이 아닌 '쑈옌'으로 불려야 하는가 말이다.


언젠가 중국어 수업 시간이었다. 한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중국인 선생님은 요즘 완전히 꽂힌 배우가 있다고 했다. “저는 ‘쏭쫑지’랑 ‘쏭회이치아오’가 너무 좋아요!” “네?! 누구라고요?” 나는 전혀 모르는 이름이었다. “쏭쫑지요! 한국 사람인데 몰라요?” 그가 인터넷 인물 검색 사진으로 보여준 두 배우는 ‘송중기’와 ‘송혜교’, 「태양의 후예」가 중국을 휘몰아치고 선생님은 그들의 팬이 되었다. 하지만 선생님과 내가 아는 이름은 서로 달랐다. 그리고 그녀가 좋아한다던 한국의 K-POP 아이돌도, 다른 드라마의 배우들도 우리는 모두 사진을 찾아보아야만 알 수 있었다. 한국인이 알 수 없는 한국인들의 이름,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도 뒤돌아보지 못할 이름이었다.



태양의 후예가 중국을 강타하던 해에,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는 송중기, 송혜교 커플이 인기상을 받았다. 이날 시상자로 중국 ‘스타센추리’ 관계자가 무대에 올랐다. 중국인 관계자는 송중기와 송혜교의 이름을 나란히 호명했다. 하지만 시상자가 부른 이름은 중국어 선생님이 발음하던 그 이름 ‘쏭쫑지’와 ‘쏭회이치아오’였다. 순간 송중기는 자신의 이름을 알아듣지 못했다. 잠시 후 시상식 무대에 오른 송중기는 소감을 발표하기 전, “제가 호명된 것이 맞나요?”라고 물었다. 그는 자신의 중국 이름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혹여 내 인생에 어떤 기적이 일어나, 중국에서 상을 받는 기회가 생긴다면 ‘단번에 나인 줄 알아채기 위해’ 내 이름의 중국어 발음을 잘 외워둬야 할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이 사랑하는 한국 배우들의 이름을 간신히 접수하자, 문득 내게도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었다. “참, 저도 좋아하는 중국 배우 있어요!”, “어머 반가워라, 누구예요?” 선생님이 눈을 반짝였지만, 순간 깨달았다. ‘아… 양조위라고 말하면 그녀가 알 수 없구나…’ 빠르게 양조위의 한자를 찾아 선생님께 내밀었다. “아, 량차오웨이!”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가슴에 품고 좋아했던 그 님의 이름, ‘양조위’는 그 자신도 모르는 이름이었다니. 문득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중국과 한국은 같은 한자를 쓴다는 이유만으로 고유 명사라는 절대 고유한 이름마저도 자기식대로 바꿔 쓰고 있었다. 여기에는 심지어 일관성조차 없다. 모택동은 한국식 한자 발음으로 부르지만, 시진핑은 중국 병음식으로 부른다. 시진핑의 한국 한자 발음은 ‘습근평’이다. 우리는 아무도 그를 ‘습근평’이라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청롱’은 성룡이라 부르고, ‘장궈롱’은 장국영이라 부른다. 참으로 이상하다. 갑자기 주윤발, 장국영, 유덕화, 장만옥… 님들의 진짜 이름이 궁금해졌다. 그리고는 이내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여태껏 너무 우리식으로만 불러드렸군요. 그리고 이제부터 이렇게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는 제 이름도 ‘쑈옌’이 아니라 ‘수연’이라고 불러주세요.


나는 이후로 어느 곳에 가든, 내 이름을 한자로 알려주지 않는다. 내가 ‘金受姸’이라고 쓰면, 중국 사람들은 모두 “진쑈옌씨 반갑습니다!”라고 하기 때문이다. 수연이라고 불러주세요, 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연’은 너무도 어려운 발음이고, 그들에게 내 이름 한자는 너무도 당연한 ‘쑈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내 이름의 가장 쉬운 부분 ‘SU’만을 내민다. ‘수’로 부르셔도 돼요. 아주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보다는, 그래도 내 이름 안의 어떤 발음으로 불리는 게 낫다. 나 또한 그들의 이름을 한국 한자 발음으로 바꿔서 부르지 않는다. 너무도 당연하다. 그것이 이름이라는 고유명사에 대한 예의고 그들에 대한 매너라고 생각한다. 「냉장고를 부탁해」의 ‘미카엘’이 미국에 놀러 가서, 똑같은 스펠링이라는 이유로 ‘마이클’이라고 불려서는 안 될 일이다.



중국어 고유 명사에 대한 내 입장은 도시 이름에도 이어진다. ‘青岛칭다오’를 ‘청도’라 부르고, ‘成都청두’라는 도시를 ‘성도’로, ‘深圳션전’을 ‘심천’으로 부르는 한국식 발음은 중국인 누구도 알아듣지 못한다. 그들에게 중국의 도시들은 칭다오, 청두, 션전, 샹하이, 베이징일 뿐이다. 나는 상하이에 산 지 1년이 넘어서야 ‘션젼’과 ‘심천’이 같은 도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마 전, 상하이 주재원으로 있는 한국인 친구가 제주도로 회사 워크숍을 다녀왔다. 중국인과 한국인이 섞인 팀에서 그녀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일정을 짰다. 하지만 워크숍 중, “다음 가실 곳은 ‘서귀포’입니다.”라고 중국어로 말해도 중국인 직원들은 그 장소를 알지 못했다. 그들에게 서귀포는 西浦 ‘씨꿰이푸’였기 때문이다. 이후로도 제주도의 모든 장소를 한자로 찾아 보여주거나 중국식 이름으로 알려줘야 했다. 중국과 한국은 이런 면에서 서로에게 조금 무례하다는 생각이 든다 (혹은 이런 문제를 단 한 번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거나). 중국 사람들에게 베이징은 북경이 아니라 베이징이고, 내 고향 서귀포는 그저 ‘서귀포’로 불러졌으면 좋겠다. 그것이 고유 명사의 ‘고유’에 적합한 대우다.


상하이에 와서 둘도 없이 친해진 친구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공원치엔'(). 이탈리아 회사에 다니는 그녀는 회사 안에서 공식적인 이름 '베로니카'를 쓴다. 나는 그녀를 '공원치엔'이라고 부를 수도, 베로니카라고 부를 수도 있다. 하지만 절대 '공문청'()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녀가 알고 있던 자신의 고유명사도 아니고, 그녀가 알고 있던 제 이름의 '소리'도 아니니까. 나도 어느 나라에서든 내 이름을 '수연'이라고 불러주기를 바란다. 누군가 내 이름을 그 익숙한 소리로 불렀을 때, 반가운 마음으로 뒤돌아볼 수 있게. 설령 그 발음이 지금 듣는 팟캐스트 속 중국인 선생님처럼 서툴러도 좋다. 더 귀여워 보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스'가 없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