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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Sep 14. 2018

‘달밤에 체조’를 배우고 싶습니다

누구도 예외 없는 상하이 운동일상

서울의 직장인이었을 때 ‘운동 좀 해라’라는 말을 들으면 제일 많이 했던 말이 있었다. ‘한가한 소리 하네’. 사실상 내 주위 친구들도 비슷했다. 술 마실 시간은 있어도 운동할 시간은 없고, 이미 직장 생활만으로도 인생이 너무 피곤해서 더 이상 몸을 고단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혹여 시간이 있는 저녁이면 운동 대신 소파에 누워 가벼운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뇌를 비워야 했다. 운동을 같이 할 사람도 없었고, 혼자 할 의지도 없었고, 내 몸이 어떻게 늙어갈지 준비할 겨를이 없었다.

산책하기 좋은 거리 쓰난루思南路

직장을 떠나 상하이로 이사 왔을 때, 산책이라는 것을 처음 시작했다. 그것도 운동이라고 처음 며칠은 내내 피곤했다. 그런데 산책을 하며 거리를 걷다 보니 눈에 띄는 낯선 풍경들이 보였다. 상하이 시내에는 곳곳마다 공원이 있고, 그 안에는 늘 춤을 추는 이들이 있었다.

매일 포크댄스가 펼쳐지는 무대, 썅양공원襄阳公园의 메인 길

각이 잘 잡힌 포크 댄스였다. 커플인지 댄스 파트너인지 모를 이들이 자신들의 키를 최대치로 키우고선 어깨를 바르게 펴고 섰다. 반듯하게 들어 올린 팔을 맞잡고 음악에 맞춰 흐트러짐 없이 스텝을 밟는다. 허공을 향하지만 또렷한 눈빛, 웃음기 없는 진지한 표정은 포크 댄스에 대한 작은 경외심까지 불러일으켰다.


족히 스무 명은 되는 포크댄스 그룹은 주위의 시선들로부터 자유로워 보였다. 나와 같은 이방인들이 오래도록 서서 구경을 하든, 신기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든, 그들의 틈에 껴 어설픈 동작으로 흉내를 내며 즐기든, 그들은 그저 각자의 예술혼을 불태울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공원의 포크댄스는 이어졌다.


다른 한 켠에는 태극권에 심취한 노인이 손끝으로 아름다운 선을 그리고 있었다. 아마 인간의 팔이 그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원’ 일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운동의 어떤 경지에도 이르지 못했지만, 노인의 움직임은 분명 어떤 곳에 이르렀다는 느낌이 들었다. 강하고 부드럽다는 것은 아마 저런 것을 말하는 것일 테다.

매일 밤 쉬자회이徐家汇 공원에서 펼쳐지는 그룹 체조

저녁 즈음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자주 집 근처 공원 길로 걷는다. 10차선 큰 도로의 한쪽 길에는 공원으로 들어서는 산책로가 있고, 그 안에는 복잡한 도심의 소리와는 무관한 평화로운 연못이 펼쳐진다. 연못 옆에선 언제나 열명 정도의 중년 그룹이 흥겨운 음악에 맞춰 체조를 한다. 유니폼을 입은 그룹 리더의 절도 있는 동작을, 뒤의 그룹이 꽤 능숙한 모습으로 따라 한다. 하루 이틀 배운 몸태가 아니다. 매일같이 리듬에 몸을 맡기는 이들의 움직임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도 매일 아침, 체조나 태극권을 함께 하는 그룹을 볼 수 있다.)

매일 아침 태극권과 체조 그룹이 운동하는 아파트 단지의 한 켠
徐家汇공원에서 광창우를 즐기는 중년 그룹

공원을 좀 더 걷다 보면 단체복을 맞춘 이들이 등장한다. ‘광창우’(广场舞광장무)를 하는 중장년층 그룹이다. 이들은 보다 전문적이다. ‘광장에서 춤을 춘다’고 하여 광장무(광창우)인데, 중국의 계획경제 시절 누구나 손쉽게 즐길 수 있는 운동이자 여가생활이었던 것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광창우는 그저 리듬에 흥을 타는 춤이 아니라, 개개인의 절도 있는 동작 속에서도 전체의 흐름이 있는 춤이다. 언젠가부터는 광창우의 안무를 가르치는 어플리케이션까지 등장했고, 전국 대회를 열어 상금도 준다. 요즘은 광창우가 거대 조직이 되어 음악 소리도 크고 자리도 크게 차지해서 민원이 종종 발생한다고 하지만, 서로 조금만 배려를 한다면 이보다 좋은 문화가 또 없을 것 같다.


문득 엄마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딸 넷을 키워 세상으로 내보내고는 엄마는 줄곧 혼자 산다. 나이가 들어 몸이 아프면 자식이 고생이다는 생각으로 엄마는 매일 운동을 한다. 엄마는 최근에 ‘마른 비만’이라는 판정을 받고 걷기 운동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경고를 들었다. 그러나 제주도 한적한 동네에서 노년의 여자가 걷는 것 이외의 운동을 찾기란 쉽지 않다. 엄마가 동네 아줌마들과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광창우를 즐기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하얀 유니폼을 입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단체 춤을 추는 엄마는 10년쯤 젊어지지 않을까.

나와 친구들이 이용하는 상하이의 다양한 운동 공간들

상하이에서는 중년의 이들만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메리는 매일 요가를 하고, 치엔치엔은 일주일에 세 번씩 스피닝 바이크 수업을 듣고 출퇴근은 자전거로 한다. 샤오밍은 축구와 테니스를 하고, 줄리는 매일 오전 힙합 댄스를 배운다. 일단 헬스장 비용이 저렴하다. 나는 운 좋게 특별 프로모션을 받아 홍콩 브랜드인 헬스장을 4년에 55만 원 정도의 비용으로 등록했다. 헬스장에는 요가, 필라테스, 바벨, 스피닝, 힙합 댄스 같은 무료 수업이 매일 밤 열 시까지 진행된다. 게다가 야근이 없는 문화. 환경이 이러하니 상하이에선 운동을 하지 않는 친구를 본 적이 없다. 헬스장이 아니라 길가에 널린 ‘공유 자전거’를 이용하더라도 이들은 매일 걷고, 달리고, 움직인다.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 가능한 상하이의 공유 자전거

무엇보다도 운동에 대한 개념이 다르다. 이곳에서의 운동이란 어떠한 방식으로든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남는 시간에나’ 하는 것이 아니다. 사는 게 바빠서 ‘언젠가는 해야겠지만 지금은 아닌 것’도 아니다. 밥을 먹고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하는 것. 돈을 들여도, 들이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 혼자도 여럿이서도 재미있는 것이다. 이곳의 친구들이, 이곳의 풍경이 매일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스피닝 바이크를 일주일에 두 번씩 한다. 가끔씩 바벨 수업을 듣기도 하고, 배드민턴에 관심이 생겨 커뮤니티도 알아보고도 있다. 혹여 상하이에 계속 살게 된다면 언젠가는 공원의 포크 댄스를 배우고 싶다. 저녁에는 달빛 아래서 아주머니들과 각 맞춰 체조도 해보고 싶다. 운동 에너지는 분명 마음의 에너지로 이어질 것이다. 체력이야말로 일상의 최고 동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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