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달콤한 도시, 상하이
편식인생으로 산지 꽤 되었다. 한국에서 30년을 넘게 그렇게 살았는데 외국에 산다고 해서 외국 음식을 잘 먹을 리는 없다. 다행인 건 흰밥에 계란, 간장만 비벼도 잘 먹으니, 편식을 하거나 요리를 못해도 어디서든 생존은 가능했다. 다만 상하이에 살면서 요리 대국의 진 면모를 느껴보지 못하고 사는 게 조금 촌스럽달까. 이토록 다양하고 신선한 식재료가 널린 곳에서 세계인들이 감탄하는 음식을 만나게 돼도, 나는 오직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못 먹는 음식’ 두 가지로 구별할 뿐이니 말이다.
상하이에서 살게 되었을 때, 서울에서는 그리 멀리하던 ‘맥도날드’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는 야근 메뉴. 바쁘고 정신없지만 끼니는 때워야 할 때 먹는 최소한의 식량, 햄버거를 물고 키보드를 치면서 이것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몰랐던 음식이다. 야근을 하며 맥도날드 버거를 먹을 때마다 나는 ‘상하이 스파이스 버거’를 먹었다. 스트레스가 쌓이는 시간, 매운 음식이 필요한 순간이니까. 그런데 이곳에 와서 맥도날드 버거를 찾게 될 줄이야. 낯선 나라의 낯선 음식 앞에 서자 그나마 내게 익숙한 것, ‘야근 음식’이라도 좋으니 아는 맛이 간절해졌다.
중국어 수업을 마친 어느 날의 점심시간, 난감한 심정으로 식당 주변을 배회하다 맥도날드를 발견했다. 그래 아는 걸 먹자. 당당하게 걸어가 메뉴판을 보았다. 그런데 앗. 상하이 스파이스 버거가 없다. 깨알같이 많은 버거들 속에서 그 이름 만은 보이지 않았다.
저기, 상하이 스파이스 버거는 없나요?
네? 무슨 버거요? 그런 이름은 없어요.
내 발음이 이상한가. 상하이? 샹하이? 스파이스? 스빠이스?
없어요.
당황하며 뒤로 주춤. 빠르게 다시 한번 수많은 메뉴를 스캔했지만 정말로 없었다. 내가 지금 서 있는 도시가 상하이인데, 상하이 스파이스 버거가 없다고? 그럼 왜 한국에는 상하이 스파이스 버거가 있는 거지?
중국인 친구에게 물은 결과, 상하이 맥도날드에 ‘상하이 스파이스 버거’라는 건 정말로 없었다. 하지만 메뉴의 맛과 재료를 설명하자 그녀는 곧 알아들었다. 그것의 이름은 ‘经典麦辣鸡腿汉堡’(클래식 매운 닭다리 버거). 맛이 비슷하니 아마도 이 메뉴가 한국에서 파는 ‘상하이 스파이스 버거’인 듯했다. 이후로 맥도날드에 가서 당당하게 그것을 주문하고 종종 ‘아는 맛’을 즐겼다. 그런데 왜 상하이 버거는 상하이에서 팔지 않고 한국에서 파는 것일까. 사실 그것보다 더 이상한 것은 따로 있다.
상하이는 중국에서 매운맛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도시다. 중국에는 지역마다 그곳을 대표하는 맛이 있다. 중국 사람들은 흔히 ‘南甜北咸,东辣西酸’라고 표현한다. ‘남쪽은 달고 북쪽은 짜고, 동쪽은 맵고 서쪽은 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중국의 지역적 음식 특성을 잘 말해준다. 북쪽의 음식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중국집’의 맛으로, 간이 세고 짠咸맛이 강하다. 스촨四川이 있는 동쪽 지역은 마라의 매운辣맛이 유명하고, 같은 동쪽의 후난湖南지역은 빨간 고추의 매운맛으로 알려져 있다. 서쪽은 예전부터 식초의 고장으로 불리며 신酸맛이 강하고, 상하이가 있는 남쪽 지방의 음식은 대체적으로 달다甜.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광동 지역 요리는 담백清淡하여 우리 입맛에 잘 맞다.
중요한 사실은, 상하이 음식의 특징은 ‘단맛’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다른 지역에서 온 친구들과 음식 이야기를 할 때는 늘 ‘상하이 음식은 너무 달아’라는 말이 나온다. 그래서 내가 중국어 선생님에게 ‘상하이 스파이스 버거’를 이야기할 때 그녀는 의아해했다. 상하이 음식은 단 게 특징인데 왜 한국에서는 매운 버거의 이름에 왜 ‘상하이’가 들어가 있죠?? 선생님, 그것은 김상중님 보다도 제가 더 알고 싶네요.
초록색 창에 ‘상하이 버거는 이름에 왜 상하이가 들어있나요’ 같은 질문을 해보았다. 이 버거가 중국에서 히트를 쳐서 그 이름을 썼다는 답변이 여러 번 나오지만 믿을 수 없는 대답이다. 중국에는 애초에 그런 이름의 버거가 없으니까. 굳이 매운맛의 도시명을 붙이려고 했다면 이 버거는 ‘쓰촨 스파이스 버거, 혹은 후난 스파이스 버거’가 됐어야 했다. 혹은 상하이를 붙이려거든 단맛의 도시답게 ‘상하이 스위트 버거’가 더 어울렸을 것이다.
결국 공식적인 자료나 그럴듯한 대답은 찾지 못했다. 분명한 건 상하이에는 ‘상하이 스파이스 버거’가 없다는 것이고, 다만 우리가 아는 그 맛을 찾는다면 ‘매운 닭다리 버거’를 주문하면 된다. 버거 이름 때문인지 아닌 상하이가 향신료의 맛이 강한 도시처럼 인식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상하이는 대표적인 ‘단맛’의 도시다. 어느 도시보다도 달달한 요리가 많고, 어느 지방보다도 달달하고 맛있는 디저트들이 있다.
상하이를 찾는 여행자라면 ‘매운맛’이 아니라 이곳의 '달콤한 맛'에 빠져보기를 권한다. 달달한 것은 상하이의 요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거리 곳곳에 숨어있다. 달콤한 볼거리도, 이야기도 많다. 초가을의 상하이, 플라타너스가 우거진 프랑스 조계지의 어느 길에서 스윗한 애프터눈 티를 즐기다 와이탄의 야경을 보러 가도 좋다. '상하이 스파이스 버거'는 어느새 잊고, '달콤한 상하이'를 맛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