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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Oct 23. 2018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 덕분에

한반도에도, 내 마음에도 평화가 오기를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서 미사 참석을 한 적이 있다. 이탈리아 여행을 가서 바티칸 투어 중이었는데 카톨릭 신자여서 그런지 남다른 감동을 받고 있었다. 사실 직장 생활이 바쁘고 지쳐서 주말 미사 같은 건 뒷전인지 오래였지만. 감동보다는 반성과 후회의 감정이랄까. 잊고 있던 신에 대한 경외심이랄까.


위대한 종교건축이 인간의 신앙심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같은 논리적인 생각은 천장의 돔에서 쏟아지는 빛줄기에 홀려 의미 없이 쓸려내려 갔다. '나는 그저 작고 어리석은 한 인간'임을 새삼 반성하며 그 공간을 넋 놓고 걸었다. 원래 관광객은 미사 참석을 할 수 없도록 관람 동선이 따로 분류되어 있어서, 투어를 하는 팀과 함께 멀리서 미사가 시작되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문득 저 미사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는 느낌이 오기도 했다. 투어팀에서 빠져나와 중앙 제단 쪽으로 향했다. 키가 2미터쯤 되는 건장한 가드님에게, 나는 한국에서 온 카톨릭 신자이고, 복장도 미사에 적합하며, 사진도 찍지 않을 것이고, 조용히 미사만 참여할 것.이라고 온 영혼을 다해 이야기했더니 통과시켜주었다.


미사가 끝나고 나와, 밖에서 한 시간이나 나를 기다린 친구들에게 욕을 한 바가지 먹고 젤라또를 사주며 용서를 빌었다. 성당에 평소에나 가라. 고 이후로도 그를 만날 때마다 수년간 욕을 먹었다. 때마다 미안하고 멋쩍게 웃었다. 그래도 나에겐 그날의 미사가 일생에 두 번 올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그날 바티칸을 함께 가고, 지금까지도 그날의 욕을 하는 그 친구가  며칠 전 밤에 갑자기 연락이 왔다.

지금 바티칸에서 하는 한국어 미사 보고 있어? 유튜브로 생중계 하고 있는데!

뭐라고 한국어 미사? 바티칸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하고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이 미사를 집전하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였다. 수년 전 내가 비루한 모습으로 내 마음의 평화나 빌고 있고 있었던 그 자리에 한국의 신부님, 수녀님, 성가대, 정치인들이 모여 우리 모두의 평화를 신께 빌고 있었다.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이 집전하는 미사는 매우 드물다
미사 시작부터 수차례 한국어가 울려퍼졌다
한국의 신부님, 수녀님, 이탈리아에서 성악을 전공하는 한국인들이 초청되었다
성 베드로 성당 중앙 돔
성 베드로 성당의 중앙 제단 전경
한국어를 꽤 많이 연습하신 것 같은 추기경님
카톨릭 신자로 알려진 문재인 대통령
이렇게 많은 신부님들이 함께 하는 미사는 처음 보았다
미사가 끝나고 추기경님과 인사
미사를 마친 후 추기경님의 퇴장
미사 후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
대통령 연설 후 추기경과의 인사

'한반도의 평화를 빕니다'라고 추기경님이 서툰 한국어로 말할때, 왠지 느껴지는 울림이 달랐다. 일생을 기도로 사는 이들이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평화를 기도하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내 마음의 평화만을 기도하기도 바빴는데. 그래서인지 그 밤, 중계방송이 끝나고도 미사의 여운은 오래 남았다.   




며칠전에는 엄마와 이모들이 상하이로 여행을 오셨다. 모두가 카톨릭 신자인 자매들에게 상하이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성당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쉬자회이徐家汇에 있는 '성 이그나시우스 성당'으로 향했다. '극동 제일 대성당'으로 불리기도 하며 지어진지 100년이 넘은 곳으로, 지난 몇년 동안 개보수 공사를 마치고 작년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카톨릭 신자라면 언제든 입장이 가능하고, 관광객이라면 입구를 돌아 작은 소개 리플렛을 받은 후 입장이 가능하다
프랑스 고딕 양식으로 지어져 하늘에 보다 더 가까이 솟아있다

상하이에 와서는 한번도 성당에 간 적이 없었다. 간절하게 무엇을 빌 때나 신을 찾는 간사한 인간으로 꽤 오래 살았다. 하지만 막상 성당 안에 들어와 앉아보니, 나에게 이런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요히 들리는 오르간 소리에 우리 모두는 잠시 눈을 감았다. 오로지 자신에게 몰두하는 침묵과 명상의 시간. 일주일에 단 하루만이라도 이런 시간을 갖는다면, 한반도의 평화는 아닐지라도 내 마음의 평화는 조금씩 다가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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